뉴욕 옵서버는 미국 뉴욕 맨해튼 지역을 중심으로 발행되는 주회 89센트짜리 주간지이다. 시사 문화주간지이지만 전문적인 잡지이기보다는 잡지명처럼 지역문화의 관찰자(옵서버)역할을 하는 시사 문화 평가단 같은 잡지이다. 색깔은 다르지만 자유롭게 이빨까는 '표현의 자유'면에서만은 우리의 '딴지일보'와 비슷하다. 문제의 글은 한 영화평론 기고가가 영화'올드보이'를 혹평하며 "생마늘과 배추를 섞어 썩을 때까지 땅에 묻어두었다가 ‘무덤에서 파낸 김치를 먹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무엇을 기대하겠는가."라고 표현했다가 삭제됐다.
영화 <올드보이>는 혹평과 호평을 받았다. 혹평보다는 호평이 절대적으로 많다. 국내 모언론이 옮긴 호평을 한 시카고 선타임스의 평론가 라져 이버트는 '액션,심지어 폭력이 이야기 를 하는 영화를 만나는 것 자체가 충격이라고' 한 것은 잘라먹은 말까지 보탠다면'우리는 오락용 스릴러에 길들여져있는대 액션,심지어 폭력에서조차 어떤 행위의진술과 목적을 가진 영화를 발견하는 것은 충격이였다.'라고 했다. 이어 <올드보이>가 대단한 영화인 이유란 표현의 소재보다 발가 벗겨진 인간심연에 깃든 깊이를 표현해서라고 호평했다.이 점은 호평을 하는 여러 평론가의 공통적인 견해이다. 반면에 뉴욕타임스처럼 혹평을 하는 이들의 견해는 호평의 이유와 이와 반대다. 잘 짜여진 통속적인 복수스릴러이지만 모호한 복수의 동기와 잔인 한 폭력등이 불분명한 서브텍스트라고 본다.
원래 시카고 선타임스의 라져 이버트는 칭찬을 잘한다. 국내 언론이 혹평을 했다고 하는 뉴욕타임스의 평론가 마노홀라 다그리스는 신랄한 객관성이 그니의 매력이며 알고보면 정작 호평을 한 이는 그이다. 그는 장르영화로 본다면 올드보이는 나름대로 괜찮은 영화이며 박찬욱감독은 어느면에서 분명 대가라는 것을 부정할 수없다는 극찬을 했다. 그가 말한 바는 '공동경비구역'때에 선전했던 박찬욱감독이 A급영화를 갖고 타란티노와 데이비드 핀치식의 할리우드 비급영화로 내리 깍았다는 점이다. 폭력성과 선전성의 오락물을 만들었으며 그 것이 현재 미국영화가 파졸리나 셈페킨파감독과는 거리가 멀어진 것과 다르지않다고 아쉬움을 말한다. 영화를 제껴두고라도 혹평을 하는 이들의 견해는 실상 뉴욕옵저버의 렉스 리드와 별 다를바 없다. 나라마다 문화는 다르다는 문화의 상대성을 무시하고 영화를 평가 하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삼는다. 이러한 삐딱이 견해는 제대로 한국영화를 본 적이 드물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이다. 단적으로 선타임스의 평론가 라져 이버트도 최근에 본 한국영화라곤 비디오 'YMCA'야구단'이고, 혹평을 했다는 뉴욕타임즈의 평론가 마노홀라 다기스의 경우가 '공동경비구역','춘향뎐'등 한국영화를 그나마 찾아보는 걸로 안다.
영화가 오락과 흥행의 도구이전에 대중에게 뜻을 전달하고,문화적인 정립을 하고 독자적인 제작을 통해 사회적,정치적의식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50년대 이후 제 3 세계 영화라고 명명된것은 개발도상국들의 영화란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첫번째 영화'인 할리우드 영화들과 '두번째 영화'인 개인적인 표현으로의 예술주의 영화와 달리 관습적인 할리우드나 서구영화의 내러티브 신텍스를 거부하며 사회정치적인 리얼리티를 통해 다르게 개인과 세상을 보는 눈을 제공하므로 '세번 째 영화'라는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뉴욕타임즈의 평론가가 지적한 것은 할리우드 영화로본다면 썩 잘 만들었지만 제 3세계인 '한국영화'만이 가진 시각과 독특한 관점이 모호했다는 아쉬움이다. 그 아쉬움에는 동감이지만 원작이 일본만화이며 애초에 영화 올드보이는 그런 관점을 의도하지도 않았다. 해외 평론가들이 영화가 일본만화 원작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나라만의 시각을 요구하는 것은 한국영화라고 타이틀이 달리면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화,가치관,역사까지 덤으로 서구관객에게 먼저 다가선다. 이미 편견을 갖고있기 때문이다. 그 편견을 깨는 노력은 결국 우리에게 달린 것이다.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오래 팔리고 기억되는 것은 '세번째 영화'들이다. 해외관객과 평론가들이 제 3세계 영화에 대해 갖는 기대와 관심은 뻔한 할리우드영화와 예술주의영화가 오락이나 예술성에서 식상하기때문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다. 국내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를 내다 팔려면 일본 스릴러영화, 중국 쿵후영화처럼 한국영화만의 차별적인 장르영화가 만들어져야하고 우리만이 만들수있는 시선과 영상이 들어가야한다. 왜 그런가는 영화를 만드는 입장과 보고싶어하고 사고 싶어하는 입장의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상을 받는 한국영화보다 한국관객이 더 자랑스럽다. 할리우드 영화가 꼼짝을 못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아니던가. 영화시장에 비해 자국영화 점유율이 우리처럼 낮은 나라도 전세계 유일할 것이다. 우리가 발딛은 이 복잡하고 치열한 이 사회의 현실과 역사가 반영된 우리식 영화들이 해외로 나갈때는 편견을 깨기위해 마땅한 설득력을 가져야한다. 영화속에서와 안에서 말이다. 낙지를 먹고 머리를 내리친다고 해서 충격적인게 아니라 이유없이 목적없이 죽여버릴때 인간들은 충격을 받는다.
렉스 리드의 글은 한 나라 전체를 조롱한 글로 삭제된 것이 당연하다. 문의전화도 거부하는 뉴욕옵저버의 싸가지행태는 필히 반성을 해야된다. 그런데 말이다. 어디 구석에 있는 영화평을 들쳐내고 원글의 말을 잘라먹고 침소봉대에 와전까지 시키는 국내 언론을 보면 씁스름하다. 구지 그렇게 까지 해서 않그래도 살기힘든 사람들을 열불나게 해야했나. 자꾸만 볶아대면 사람들은<올드보이>의 유지태마냥 중얼거리고 머리에 총을 겨누게 된다.
'이젠 무슨 낙으로 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