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도쿄대학은 입시를 중지했다. 비틀스는 《화이트》, 《옐로 서브마린》, 《애비 로드》를 발표했고, 롤링 스톤스는 최고의 싱글 <홍키 통키 우먼>을 히트시켰으며, 머리칼을 마구 기른 히피들이 사랑과 평화를 부르짖고 있었다. 파리의 드골은 정권에서 물러났다. 베트남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여학생들은 생리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969년은 그런 해였다.」
위와 같은 심플한 문체속에 무라카미 류 특유의 시니컬함이 유쾌한 필치로 녹아있는 소설 『69』. 1969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무라카미 류는 「등장인물이 거의 다 실제 인물뿐이지만, 당시 즐겁게 살았던 사람들은 좋게, 즐겁게 살지 않았던 사람들(선생, 형사, 그 외의 어른들, 그리고 말 잘 듣는 학생들)에 대해선 철저히 나쁘게 썼다」는 고백을 전하는 소설이다.
재일교포3세인 이상일 감독은 한없이 가벼운듯 나풀거리지만, 곳곳에 날카로운 비수를 꽂아놓은 이 만만치않은 소설을, 자신만의 감각있는 스타일로 영화화했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시대를 담아내야 했기에, 젊은 감독의 부담감이 영화에 은근하게 묻어나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이 영화는 의외로(?) 거침없이, 아니 그 통통거리는 리듬감은 소설보다 더 강하게, 흘러간다. 여기엔 <고>, <핑퐁> 등을 쓴 시나리오 작가이자 연기자, 쿠도 칸구로의 해석과 솜씨가 원천적으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
그것이 개운하지않은 ‘표피성’으로 다가오든, 원작과는 또다른 상큼한 청춘학원물로 다가서든 아무렴 어떠랴. 소설과 영화가 각각 자기만의 고유한 사유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어쩔 수 없이 공유하는 부분 속엔 우리들이 정말로 느끼고 싶어하는 청춘 본연의 실체가 어쩌면 올곧이 걸러져 있는게 아닐까.
그렇다면 주인공 ‘켄’과 ‘아다마’ 역을 맡은 츠마부키 사토시와 안도 마사노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일본 최고의 꽃미남들이자 탁월한 연기력을 보여주는 그들 두 사람의 진솔한 얘기들을 통해 영화 <69 식스티 나인>의 싱싱한 활기를 미리 만나보자.
● 츠마부키 사토시
원작을 읽었습니까?
아뇨. 안 읽었습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연기할 때는 기본적으로 읽지 않으려고 합니다. 각본을 보고 느낀 대로 연기하고 싶거든요.
쿠도씨의 각본을 처음 읽었을 때 인상은 어땠습니까?
무조건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대본을 읽으면서 웃은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겁니다.(웃음) 재미있었어요. 대본 읽으면서 웃는 일은 별로 없잖아요.
<이케부쿠로 웨스트게이트파크> <키사라즈 캐츠아이> 등 TV드라마에서 같이 작업하셨는데, 츠마부키씨가 본 쿠도씨의 인상은?
처음 만난 게 4,5년 전쯤이지요. <이케부쿠로~>를 하기 바로 전에 TBS 심야프로에서 쿠도씨가 각본을 쓴 드라마를 찍었는데, 그 때 처음 만난 것 같아요. 쿠도씨도 연기자로 출연하며 호흡을 맞췄는데 그 때 모니터체크를 하면서 자기 연기를 보면서 계속 폭소를 터뜨리는 거예요.(웃음) 재미있는 사람이구나. 자기가 각본을 쓰고 자기가 연기를 하고 이렇게 웃을 수 있다니 정말 행복한 일이구나 했어요.(웃음) 그 후에 <이케부쿠로~>에서 만났을 때도 여전하더군요. 항상 겸허한 느낌이에요.(웃음) 그런 면은 언제 만나도 변함이 없어요. 극단 오토나케이카쿠의 <기레이>라는 무대를 보고 난 후로 오토나케이카쿠의 무대가 너무 좋아서 자주 보고 가고, 그런 걸 보더라도 제가 쿠도씨의 책을 좋아하나 봐요. 물론 마츠오 스즈키씨의 책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웃음을 만드는 방식이나… 미타니 고키씨의 책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것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어요. 뭐랄까 가끔 너무 대단해서 무슨 뜻인지 모를 때도 있지만,(웃음) 정말 재미있어요.
켄은 어떤 인물인가요?
의외로 아무것도 생각 안 해요.(웃음) 상당히 충동적으로 행동부터 하는 스타일이지요. 그러니까 행동력이 있는 인물인 것 같습니다. ‘굽히지 않는 무언가를 가졌다’는 것은 많이 느꼈어요. 언뜻 경솔해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심지가 굳은 것 같아요.
역할에는 자연스럽게 적응되었나요?
네. 책을 쓰면서 (쿠도씨가) 웃는 모습이 상상이 되요(웃음). 정말 자연스럽게 빠져들었어요. 무라카미 류씨도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시대에 얽매이지 않은 각본이 재미있었다고. 지금 젊은이의 감각으로 쓰인 그 시절… 어떤 의미에서 우리들이 만들고 있는 1969년의 세계가 재미있었다고요. 사실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지만,(웃음) 그것이 우리들다운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젊음이나 ‘감정’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들다운 1969년을 그려 낼 수 있었다”
이 영화 나름대로의 1969년을 그리고 있다는 뜻입니까?
시작하기 전부터 1969년이라는 년도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바리케이드를 친다거나 옷차림, 헤어스타일 같은 것은 1969년이지만, 사람의 ‘감정’은 다 똑같기 때문에 자기가 살고 있는 의미를 남기고 싶었다든가, 즐기고 싶었다든가… 행동방식은 다르더라도 그런 마음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죠. 젊음이 시대가 바뀌었다고 변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생각으로 찍었습니다.
그러면 츠마부키씨의 고등학교시절 중 켄과 공통되는 부분은?
물론 바리케이드는 친 적 없어요(웃음). 축제는 3년 내내 했어요. 밴드를 아주 좋아했으니까. 베이스와 보컬을 했었는데 고등학생 때는 밴드만 했어요. 그리고 엉뚱한 짓도 했었고. 나중에 생각해 보면 밴드를 더 하고 싶었던 같기도 하고, (밴드가) 내 나름대로의 자기표현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켄의 행동도 그런 자기표현이었을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지요. 그렇지만 아무튼 다시 한 번 그 시절로 돌아간다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 “이상일 감독은 신념을 관철시키는 굉장히 에너지 넘치는 사람”
이상일 감독과 일하기는 어땠습니까?
감독님과의 추억은… 불고기지요. 감독님은 시간만 나면 갈비를 드세요.(웃음) 갈비 좋아하는 걸로는 아무한테도 지지 않을 걸요. 우리들도 어쩌다 보니까 촬영이 일찍 끝나면 “불고기 먹지?” 이렇게 되더라구요.(웃음) 안도씨와 “감독님도 부르자” 그런 식이었어요.
사세보에서요?
네. 호텔에서 나와서 2분 정도 가면 있는 가게에요. 큰 단골이었죠.(웃음)
이감독의 연출 중에서 인상 깊은 것은?
감독님은 같이 생각을 해주시죠. 일단 제 의견도 들어 주고, 의문이 나는 점은 같이 고민해 주세요. 실례되는 말이지만… 29살이면 정말 젊은 감독이잖아요. 감독님의 <청>도 <보더 라인>도 그렇지만 화면에 찍혀 나오는 ‘공기’가 굉장히 좋았어요.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화면이었어요. 지금까지 작품이 그랬으니까, 이번 작품은 엄청 코미디, 코미디라고는 표현하기 싫지만 코믹한 영화잖아요. 그래서 감독님이 어떻게 찍으실까 궁금했죠. 굉장히 기대를 많이 했는데 생각한 것 이상으로 여러 가지가 머리 속에 있구나 하고 느꼈어요. 다 찍고 나서 더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촬영하고 있을 때는 엄청난 양을 찍었으니까요. 시간도 없고 결단을 해야 할 때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관철시키는 것은 역시 대단한 파워라고 생각해요. 딱 보기에는 에너지틱해 보이지는 않지만(웃음).
▶ “안도씨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감각적으로 ‘잘 맞네’ 했어요”
켄의 단짝 아다마 역할을 한 안도 마사노부씨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번에 처음으로 같이 연기하는 건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 사람하고는 잘 맞네’라는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내가 상상한 이상으로 친해졌어요. 기본적으로 항상 같이 있고 호텔에 돌아가도 자연스럽게 안도씨의 방에 놀러가기도 했죠. 그야말로 진짜 켄과 아다마 정도로 친해졌어요.(웃음) 그렇기 때문에 표현할 수 있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 같은 것이 잘 표현된 것 같아요.
배우로서 평가한다면?
글쎄요.. 몰입하는 스타일 같습니다.
츠마부키씨 본인은?
음… 반반이죠. 연구를 많이 할 때도 있고… 저는 항상 혼자서 고민하다가 현장에서 백지로 돌리는 패턴이 많아요. 안도씨는 자연스럽게 몰입을 하는 것 같아요. 사실은 엄청나게 고민하고 나서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웃음)
독특한 사세보 사투리 대사표현은 처음이시죠?
그렇죠. 그래도 고생은 안 했어요. 원래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큐슈에 살았기 때문에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들었고. 사세보 사투리는 무뚝뚝하지 않아서 정감이 있어요. 현장에서는 안도씨를 비롯해서 다 같이 자연스럽게 사투리로 얘기했었어요. 재미있어 하면서 사용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사투리인지는 잘 모르겠네요.(웃음) 아직도 감독님하고 가끔 만나면 사세보 사투리가 나온다니까요.(웃음)
촬영장소인 사세보의 인상은?
여러 가지 다양한 것이 꽉 차있는 곳인 것 같아요. 크게 보면 나가사키이지만 나가사키 안에 사세보가 있는 거니까… 그렇게 넓은 곳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항구도시다 보니까 다양한 것들을 흡수해서 굉장히 작은 곳에 많은 것들이 꽉 들어차 있지요. 재미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많아요. 이번에는 별로 돌아다니지는 못했지만.
같이 연기한 배우들과 지내는 현장은 어떤 분위기였습니까?
기본적으로는 영화 속이랑 똑같아요.(웃음) 모두 (맡은 역할과) 별로 다르지 않아요. 아, (이와세 역할을 한) 가나이는 좀 다르네요.(웃음) 오오타 리나씨요? 오오타는.. 고등학생이었어요.(웃음) 진짜 15살이구나 하는 느낌이에요. 그런데 제가 오오타보다 상당히 나이가 많은데… 괜찮을까요(웃음)? 이가와씨는 완전히 섹시 그 자체였어요. 압도당했어요. 저 혼자서요.(웃음)
▶“제 밴드 얘기도 영화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볼 정도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공감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워터 보이즈>를 필두로 고등학생 역할을 계속하고 있으신데, 그 이유는 역시 츠마부키 씨 안에 관객들이 ‘고등학생’이나 ‘젊음’을 투영시키게 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당시에 했던 밴드 활동이 아마 지금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3년 내내 밴드만 했으니까요. 신나게 삶을 즐기면서 살아 왔기 때문에 그런 것이 스며나오나 보죠. <워터 보이즈>도 <69 식스티나인>도 젊음에 관한 영화잖아요? ‘이렇게 살면 재미있겠다’라는 소망 같은 거요. 나도 밴드활동을 하면서 즐거웠고 그것을 영화로 만들어도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니까요.(웃음) 그랬기 때문에 저에게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고 그런 것을 관객들도 느껴주시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갖춰진 시대니까, 무엇이든 쉽게 놀 수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것들을 손쉽게 시작해볼 수 있고, 질리면 금방 그만둬 버리죠. 그런 시대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넓은 세계를 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한 가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낼 수 있는가가 중요해요. 무엇인가를 해 보는 것은 좋은 일이죠. 요즘에는 아예 시작을 못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으니까요. 편하게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그 이외에도 뭔가 몰두하는 즐거움, 나 밖에 못하는 일. 그런 것이 있을 겁니다. 그러다가 힘든 시간을 겪더라도 그것이 나중에는 틀림없이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될 겁니다. 뭔가 하나에 열중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는데… 어렵지요.
▶ ‘노는 게 남는 것’이란 말에 100퍼센트 동의. 사실은 더 잘 놀 수 있었을 텐데, 그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작품
그럼 완성된 영화를 보신 소감과 감상 포인트를 말씀해 주시죠.
제가 몰랐던 부분도 꽤 있었어요. 오프닝 타이틀의 애니메이션 같은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되는 거구나! 하고 감동까지 했어요. 제일 많이 느낀 건 ‘이렇게까지 편집을 잘 했구나’라는 거였죠.(웃음) 주위에서 재미있다고들 하던데요. 그래도 전 사람들의 평가를 안 믿는 편이라서, ‘나한테 직접 얘기하는 걸 보면 별로 재미없었던 거 아닐까…’ 아니면 그냥 인사말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타입이에요. 이렇게 비관적인 사고방식도 갖고 있어요.(웃음) 왜냐하면 본인은 객관적으로 볼 수 없거든요. 책 내용도 알고있는 데다 어떤 식으로 편집되었는지를 보게 되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여러 번 보면 감상을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감상 포인트는… 어렵네요. 조금 실패를 해도 괜찮으니까 즐겁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노는 게 남는 거다’. 정말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이 자기 인생을 즐겁게 만들어라. 즐겁게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 안도 마사노부
우선 각본을 읽은 소감은?
작년이죠, 그 전까지 전혀 일을 안 하고 빈둥거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제 주위에도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그것도 많이요.(웃음) 들려오는 뉴스들도 어둡고 들어오는 시나리오마다 어두운 것뿐이고.(웃음) 그래서 어둠 속에서 빠져 나오고 싶어졌어요. 재작년도 좀 처져있는 시기였어요. 이제 처지는 것도 싫증이 나던 시점에서 마침 이 영화 얘기가 나왔습니다. 우울한 면이 전혀 없는 내용이고 오히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기분을 밝게 하는 스토리였어요. 그런데 하필 고등학생 역할이라(웃음) 누가 출연하는지 물어봤더니, 츠마부키의 출연이 정해져 있고, 그 이외에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20대 배우도 쓸지 모른다고 하기에 한 번 해볼 생각을 했습니다.
읽고 보니 재미있던가요?
네. 우울하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쿠도씨를 직접 만나셨습니까?
저도 얼마전에 들었는데, <키즈 리턴> 때 쿠도씨가 출연을 해서, 저하고 가네코 겐이 공갈협박하는 씬에서 학생 역할로 나왔던 모양이에요.(웃음) 전 전혀 몰랐고 이 작품에서도 쫑파티 때 한 번 본 정도입니다. 츠마부키가 소개해 주겠다고 했지만, 제가 낯을 가리는 편이라 됐다고 했습니다.(웃음) 그 상태로 끝이 나서 말을 못해 봤어요.
아다마에 대한 인상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하고 ‘아다마가 맘에 든다’ ‘여기서 이렇게 말하는 아다마의 인간성이 좋다’ 등등 여러 가지 말을 했었는데 지금은 별로 기억이 안 나네요.(웃음) 그 후에 (영화) 두 편을 더 하다 보니 작년의 일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아마 (아다마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서 했을 겁니다.(웃음)
▶ “이상일 감독이 역할 설정을 위해 ‘섹스를 하지 말라’고 했다”
감독님은 상당히 직선적으로 연출을 한다고 할까, 별로 요령이 없으세요.(웃음) 그래서 연출할 때 감독님의 생각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신다고 느끼기도 했어요. 어차피 츠마부키나 저나 감독님 셋 다 근본적으로 요령이 부족한 사람들입니다.(웃음)
감독님과의 추억이라면?
특별히 없는데, 역할 설정을 위해서 ‘하지마!’ 정도인 것 같은데.(웃음)
아다마로서는 ‘참으라’라는 말인가요?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전혀 기억에 없는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모두가 맹렬히 발산하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저도 뭔가를 분출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자제를 할 수 있었어요. 이제 생각이 나네요. 그것 때문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촬영현장이었어요.(웃음)
그 스트레스가 아다마를 만들어 냈다는 말씀인가요.(웃음)
그렇죠. 나는 하라는 일은 제대로 하는 스타일입니다. 몰래 뒤에서 약속을 어기지는 않지요. 감독님하고 저 사이에 “안 했지?” “안 했어요!”가 무슨 암호처럼 됐어요.(웃음) <쇼와가요대전집> 무대인사 때문에 도쿄에 갔다가 돌아왔을 때도 그랬죠. “안 했지?” “안 했다니까요!” (웃음)
남자들만 있는 촬영장 분위기가 느껴지네요.(웃음) 이가와 하루카씨가 촬영현장에 투입됐을 때는 상당히 분위기 업됐다던데요.
마침 촬영장에서 호텔로 돌아왔는데… 로비에 있었어요. 정말 남자들만 있다 보니까 이가와씨를 보고 “와! 여자다!”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오더군요.(웃음) 제가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를 떠올려 보면 ‘여자’한테 이상하게 예민하게 반응을 했었어요. 그 때는 저도 ‘여자’한테서 격리된 상태였기 때문에 여자를 보면 과잉 반응이 나타나서… 완전히 극중 상황과 똑같았죠. 촬영 후 모두 함께 이가와씨와 나가사키 짬뽕을 먹으러 갔었는데 긴장해서 목으로 넘어가지를 않더라구요.(웃음)
촬영현장이 그대로 캐릭터 설정으로 연결된 셈이군요.
제 경우에는 항상 환경이 그대로 연기에 드러납니다. 그것 때문에 힘들 때도 있어요.
본인의 고등학교 시절이나 지금보다 어렸을 때와 공통되는 부분은 있었습니까?
글쎄요. 어떤 시대나 여자에게 관심을 갖거나 선생님한테 반항을 하는 건 마찬가지고, 그런 일들을 경험하는 단계를 거치면서 어른이 되는 거죠. 그래도 저는 여전히 그런 단계를 거쳐도 거짓말을 하는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른이 되면 점점 요령이 생겨서 거짓말을 하게 되는 부분도 많아지지만, 저는 그래도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도 그랬을 겁니다.
멋지게 ‘고등학생’ 역할을 해냈는데
지금까지 여러 편 그런 역할을 해본 경험 덕분인 것 같습니다. 그런 경험 없이 이 나이에 아다마를 연기할 수 있었을까 반문해 보지만 불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나이보다는 경험일 겁니다. 같이 연기를 한 츠마부키가 굉장히 좋은 친구라, 제 감정이 잘 잡힌 덕분이기도 합니다. 저는 상대역에 많이 좌우되는 타입입니다. 항상 그런데 상대역이 안 좋으면 감정이입이 잘 안 되거든요. 아무래도 연기로도 커버 못하는 부분이 있지요.
그런 츠마부키씨에 대한 인상은?
글쎄요… 첫날에는 별로 안 좋았어요.(웃음) 2~3일째 정도부터 ‘좀 괜찮네’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큐슈에 간 첫 날에 파티가 있었는데, 그 후 방에서 둘이 술을 마시며 얘기를 하면서 ‘이 친구하고는 진짜 잘 맞는데’라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 같고, 그렇게 많이 둘이 같이 있는데 서로가 맞지 않으면 상당히 힘이 들었을 거예요. 사이가 안 좋죠.(웃음)
▶ “츠마부키는 상당히 요령이 없다, 그 점에 공감을 할 수 있었고 나도 역시 요령 있게 살 수 없으니까”
안도씨가 보기에 연기자로서는 어떤가요?
굉장히 요령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지요. 츠마부키는 본인이 이해가 안 가면 연기를 중지하기도 하죠. 이 친구도 마음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란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요령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그런 식으로 솔직한 연기를 하는 츠마부키를 보고 ‘정말 맘에 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요령이 없으니까요. 그렇게 살지를 못해요.(웃음)
두 사람의 씬 중에서 좋아하는 씬은?
감정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인지 경찰서에서 켄이 배신당하는 씬 같은 경우에는 저는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데도 울어버렸죠. 정말 마음이 아파서. 그리고 시마다 규사쿠(嶋田久作, 아이하라 선생 역할)한테 맞는 씬은 교무실에 가서 울음이 터져나올 것 같더군요. 제가 안 나오는 장면에서도 감정이 많이 들어가서 그렇게 되어 버리죠. 제게는 그게 인상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감독님 말씀이, 강가를 둘이서 쫄딱 젖어서 걷는 씬에서 안도씨가 웃는 것을 굉장히 쑥스러워 했다고 하던데.
아뇨, 그건 쑥스러워 하는 것처럼 연기를 한 겁니다. 켄과 함께 웃기보다는 웃으라고 해도 아마다라면 틀림없이 쑥스럽게 웃을 거고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는 연기였어요. 그래서 애드리브로 ‘쑥스럽군’이란 대사를 한 거죠. 그 씬을 좋아합니다.
전편에 좋은 씬이 가득한데….
촬영하는 매일 매일이 중요한 고비였어요.(웃음) 정말 힘이 들어요. 왜 이렇게 매일 힘들게 찍어야 하나. 보통 잠깐씩은 숨을 돌릴 씬이 있기 마련인데, 전부 소모가 많은 씬뿐이니까 무지 피곤하던데요.(웃음) 더구나 달리는 씬도 많았어요. 아무튼 스케줄이 빡빡했었으니까. <배틀 로얄> 같은 작품도 했었지만, 이번에 펑펑 울 정도로 정말 힘들었습니다. 24시간 촬영할 때도 많았었으니까요.
▶ “힘든 촬영이었지만 완성된 작품이 좋으니까, 오프닝이 너무 맘에 든다”
맨 처음에 담장을 기어오르는 씬이 있은 후에 타이틀백으로 들어가잖아요? 그 부분이 굉장히 좋았어요. 저는 제일 많이 끌렸어요. 멋있잖아요. 오프닝이 너무 좋습니다. 전 제 작품을 별로 안 보니까, 쑥스러워서 볼 수가 없어요. 시사도 꼼지락거리면서 불안해하면서 보고. 네? 왜냐구요? 쑥스럽잖아요 (단호하게!) 쑥스럽더라고요, 특히 수박 먹는 씬 같은 거요.(웃음) 역할에 몰입하고 촬영할 때는 괜찮아요. 그런데 제 작품은 정말 쑥스러워서 안 되겠더군요. 정말 못 보겠어요.(웃음)
그 시대를 살았던 고등학생이었다면 바리케이드 봉쇄 같은 거 했을 것 같습니까?
어린 친구들은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죠. 지금 같으면 그 에너지를 해소할 곳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죽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쇠락한 곳(사세보)이었기 때문에 그런 일밖에 할 게 없었겠죠. 그래도 사세보는 아주 마음에 들어요. 기분이 좋았죠. 그 때는 오히려 무대인사를 하러 하루 도쿄에 갔을 때에는 오히려 도쿄에 적응이 안 되고 경치나 사람들 때문에 정신이 없었어요. 긴장이 많이 됐어요. 제가 정말 무대인사에 약합니다.(웃음) 너무 긴장해서 무대의 끝에서 맥주 마시다가 야단을 맞았죠. 그래도 긴장이 되잖아요! 남들 앞에 나서는 거 잘 못해요. 연기 이외에 남 앞에서 말하는 것도 자신이 없고… 정말 쑥스러워서 안돼요.(웃음)
▶ “영화에서 느껴지는 ‘만족감’을 모두가 맛보기 바란다.”
영화가 그려내려고 한 것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정치적인 이유로 바리케이드 봉쇄를 하는 것을 그린 것이 아니라 젊은 시기의 에너지를 어떻게 발산했는가를 표현한 것입니다. 우정이며 연애 등 그 에너지를 어떻게 썼으며 그 만족감에 대해서 그렸어요.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자신들이 만들어 나가며 성공시킨 페스티벌을 그렸죠.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항상 그렇게 살고 싶고 지금도 역시 그렇습니다. 저는 그 에너지를 계속 가지고 작품 하나하나에 에너지를 발산하는데, 그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 작품에 들어가서 캐릭터를 만들고 그 캐릭터를 좋아하게 되고 상대배우와도 감정을 공유하며 몇 개월쯤 같이 연기를 하고 끝이 나면 엄청난 만족감을 느낍니다. 그것은 페스티벌을 마쳤을 때와 마찬가지죠. 그래서 계속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때가 좋았지’ 가 아니라 ‘지금도 즐겁다’는 마음으로 살고 싶어요. 그런 만족감을 많이 봐 주셨으면 합니다.
안도씨가 전하실 메시지가 있으시다면
제 자신 역시 ‘어둠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다’고 생각했었고, 또 지금은 어두운 것을 기피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시고 자기 나름대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을 찾으셨으면 합니다. ‘만족감’을 느끼는 순간을 많이 맛보시길 바랍니다. 만족감을 느끼면 즐거워지니까요. 요즘은 없는 게 없고 그래서 뭐든 쉽게 시작할 수 있으니까 사소한 일이라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을 나름대로 찾으시길 바랍니다. 남자분들 여자분들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자료제공: 스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