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뚱맞은 언행을 일삼지만 귀여워 할 수밖에 없는 오드리 토투를 환상적인 이미지와 함께 선보이며 전 세계인에게 상큼한 웃음을 안겨줬던 <아멜리에>의 장 삐에르 쥬네가 돌아왔다. 것두, 오드리 토투와 함께.
한데, <델리카트슨 사람들>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에이리언4> 등 낯선 상상력을 능수능란하게 형상화시켜는 장기를 앞세워 필모그라피를 채워왔던 그가 이번에는 ‘전쟁 대서사 로망’이라는, 왠지 삼천포적 무비로 와 닿을 거 같은 의구심을 발동시키는데 모자람이 없는 영화 <인게이지먼트>를 들고 왔다. 이쯤에서 뭔 생각으로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당연지사다.
아니나 다를까 나름 사연이 있었으니.......
1991년 <델리카트슨 사람들>의 촬영을 마친 후 세바스티엔 자프리소의 원작 소설을 읽은 쥬네는 감동이 넘실대는 여주인공 마틸드의 모습과 로맨스에 완전 매료돼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갓 입봉한 감독이 무슨 돈이 있고, 어느 누구 이 새내기를 믿고 투자하겠는가? 결국, 허명이 아닌 실력으로 명불허전의 자리에 오른 그는 십수 년 동안 가슴 속에 새겨둔 그 프로젝트를 이제야 펼친 것이다. 프랑스 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물경 600억 원의 제작비까지 투자 받았으니 그로서는 필생의 역작을 만들겠다는 다부진 각오 아래 작업에 임했음이 섣부른 추측만은 아닐 게다.
여튼, 영화화의 동기야 어떻든 <인게이지먼트>는 전쟁통에 사랑하는 남친 마네끄(가스파 울리엘)와 생이별하게 된 마틸드(오드리 토투)의 지고지순한 로맨스를 다룬다. 형식적으로 전작과 한참 벗어나 있는 이 영화를 쥬네는 전쟁의 참혹함은 사실적으로, 남자 친구를 찾고자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은 순수하고 아련한 떨림이 느껴지는 판타지한 화면으로 가득 채운다.
그러니까 영화를 관장하는 그만의 손놀림은 <인게이지먼트>에서도 여전히 과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확연하게 갈리는 두 가지 작법 속에서 기왕의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미스터리 구조를 얹히고 마틸디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그녀의 의식에 따라 등장하는 여러 에피소드와 과거의 플래시백 장면. 또 “일곱을 셀 때까지 검표원이 안 오면 마네끄는 죽은 거야”와 같은 대사와 등대 지붕에서 그들이 벌이는 발랄한 애정 행각은 영락없는 쥬네 감독의 그것이다.
전장의 포화 속에서도 사그라지지 않는 사랑을 애절하게 그린 <여명의 눈동자>를 비롯 수많은 전쟁로맨스가 내재하고 있는 진부함과 차별화를 꾀하고자 여러 모로 신경을 쓴 흔적이 이 영화에는 역력하다. 때문에 관객은 잔잔한 감동과 미소, 웃음. 전쟁의 참담함을 <인게이지먼트>의 압도적인 이미지를 통해 느낄 수 있다. 다만,
그 시각적 이미지가 너무도 판이하게 나뉘고, 그것을 매개할 만한 장치 역시 튼실하지 않기에 영화의 다양한 표정은 보는 이와 마주하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인다.
또한, 깜짝 출연한 조디 포스터의 흔적이 아주 짧은 분량이었음에 불구하고 장 피에르 쥬네와 오드리 토투에 못지않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는 사실은 그녀의 스타성을 감안하더라도 <인게이지먼트>가 놓친 부분을 반증한다.
기구한 조디 포스터의 인생여정을 효과적으로 압축해 펼쳐 보이는 것과 달리 긴 러닝 타임 동안 당 영화는 대서사극의 플롯이 갖춰야할 드라마틱한 기승전결의 흐름을 짜임새 있게 보여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