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사랑’의 반대말로 의미를 이룰 때가 많다. 두 단어 사이에는 ‘만남’이라는 관계의 고리가 존재하지만 사랑은 분명 ‘이별’을 예고한다. 마이크 니콜스 감독이 만들어 낸 네 남녀의 사랑이야기, <클로저>는 비단 이것이 한 개인의 진실과 거짓으로 인해 관계가 ‘성립’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운명에 관한 날카로운 비수가 있고 사랑에 대한 냉소가 있기에, 자신의 모습은 쉽사리 감정이입해서 발견할 수 있지만, 결코 긍정하기 싫은 ‘불편함’도 영화는 내포하고 있다.
신문의 부고기사를 쓰는 댄(주드 로)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본, 알리스(나탈리 포트만)에게 첫눈에 반한다. 둘은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겠지만 영화 속에는 그 시간을 스크린에 담지 않는다. 대신 훌쩍 뛰어 넘은 시간 속에 새로운 사랑을 심어 놓는다. 알리스의 이야기를 가지고 소설을 출간하게 된 댄은 사진사 안나(줄리아 로버츠)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직감한다. 거기에 바람둥이 피부과 전문의 래리(클라이브 오웬)가 끼어들면서 이들의 사랑 방정식은 미지수의 답을 찾지 못하는데.......
마이클 니콜스 감독의 <클로저>를 많은 사람들이 평하기를 사랑의 진실과 거짓 그리고 관계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담아냈다는 찬사를 쏟아 냈다. 필자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졸업>, <워킹걸>등, 다수의 작품에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간 군상들의 사회적 관계를 샘플링 하듯 담아낸 노장 감독의 솜씨가 녹슬지 않았다는 평가에도 또한, 고개가 절로 끄덕거린다. 허나, 말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던 이 ‘불편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사랑에 솔직한 앨리스가 안나의 카메라 앞에서 눈물 흘리던 그 순간이 사랑의 진실이라고 순진하게 믿고 이야기를 이해하는 동안 감독은 그것마저도 사랑의 ‘거짓’이라고 매듭 짖어 버린다. 댄은 모든지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겠다면서 안나에게 ‘진실’만을 요구한다.
‘강요’하는 진실, 그것이 서로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마이클 니콜스 감독은 비참하고도 담담하게, 그래서 마치 스릴러 영화의 반전 같이 느껴지는 쾌감으로 그 둘에게, ‘이별’을 선고한다. 감독의 의도가 이런 관계를 그려낸 것이 아니라, 연극이 스크린으로 옮겨지면서 내밀하게 관계의 역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끊임없이 우리를 타인으로 만드는 스크린의 성격 상, 이들의 모습은 우리의 자화상이자 거짓이라고 우기고 싶은 거울이 된다.
진실과 거짓을 표정과 대사들로 쏟아내도 4명 각자가 알고 싶은 건, 섹스다. <클로저>에 대해 아무리 우아하게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이들이 확인하고, 하고 싶은 건 오직 ‘섹스’ 뿐이다. 관계를 결정 짓는 건 앨리스와 래리가 섹스를 했는가? 안 했는가? 에 달렸고, 댄이 안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섹스의 진실이다. 감독은 이들이 불협화음으로 각자의 사랑이 진실이라고 주장하고 행동해도, 그 모든 진실이 남녀가 엮어내는 ‘성 정치학’에 결코 벗어나지 않음을 냉소하고 있는 것이다. 차가운 냉소 앞에서 사랑에 대해, 관계에 관한 우리의 진실도 불투명해진다.
낯선 사람이 내게 와서 말을 건다. 그 순간부터 낯선 사람은 타인이 아니다. 결국 우리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진실과 거짓을 섞어 말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설령 서로에게 ‘낯선 사람’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라도 말이다. 때문에 4명의 관계를 엮어내는 앨리스의 ‘매혹’이 댄의 눈에 띄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개그 프로의 유행어처럼 사랑의 관계는 오직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거죠”. 이 말이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위로’의 말임을, 수긍할 때가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