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영어까지 써제끼며 작성한 아래 글과 사진을 마주하자면, 마치 지가 지를 소개하는 민망스런 사태성의 글 같다는 느낌이 역력할 것이다. 물론, “3인청 객관적 시점을 유지하고자....우짜고저짜고”와 같은 나름의 변을 정씨는 피력했지만, 그닥 설득력이 없다고 판단, 알아서 생략했다. 그러니 문체에 있어 오바적 측면이 다소나마 있더라도 정씨의 눈물나는 노동을 치하하는 차원에서 이해하고 봐주시길 부탁드린다.
여기서부터가 그의 글이다.
<아비정전> 때문에 몇 날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고민하셨다는 정해용 씨. <아비정전> 무삭제판 상영을 위해 밤을 새어가며 마신 커피의 cc와 그가 이 일을 위해 흘린 코피의 양은 동일하다. 그에게서 들어보는, <아비정전> 때문에 그가 아비규환을 겪어야 했던 모든 스토리를 밀착 취재... 음... 그냥 공개한다. 하루 하루가 ‘Days of Being Wild' 였던 그때의 회고록.
| 행복한 고생의 시작 |
상황은 이렇다. 제 1회 종로영화제는 세계최초로 왕가위 사랑 3부작 <아비정전> <화양연화> <2046>을 심야상영하기로 결정한다. 좋았다. 왕가위 작품 중 저 3작품은 따로 또 같이, 동전의 양면 같은, 어쩌면 도플갱어.... 뭐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런 작품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왕가위 팬들에게는 설렐만한 사건이 분명하다. 정해용 씨는 왕가위가 발톱의 때 좀 빼달라고 하면 빼줄 정도로 그의 이미지에 혼절하신 인간. 어쨌건 그는 광분하기 시작한다. 아.. 왕가위.. 왕가위.. 아참.. 그는 한가위가 끝난 직후, 부산국제영화제로 날아가서 왕가위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무척이나 치밀한 계획까지 세워놓은 전적도 있다. 결과는? 성공이셈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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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구슬과도 같은 외모를 지닌, 부산영화제 아시아영화담당 코디네이터 옥미나 씨에게 정해용 군은 SOS를 타전한다. 그녀에게 돌아온 대답.
“어쩌면 영상자료원에 있을지도 모를텐데...”.
주저함 없이 영상자료원에 전화를 땡기신 해용 씨. 필름은? 있/었/다. 아싸 가오리~! 이 기쁜 소식을 아무 주저함 없이 종로영화제 주최측에 냉큼 고한 해용 씨는 그 이후 잘 되리라 생각하며 종로영화제의 포스터와 팜플렛 등등을 만들기 위해 고생하신다.
| 쫄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
그렇게 열심히 염통이 쫄깃해질 정도로 긴장하며 일을 하던 해용 씨.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종로영화제에서도 상영되는 <클린>의 시사회로 발길을 향하던 중, 뺄렐레 개굴개굴 전화벨이 신나게 울린다. 받았다. 김서희 양이다.
“해용아! 어뜩해!!! <아비정전>!!!”
흠.. 광분하는 것을 보니 사태가 대략 심각한 듯. <클린>이고 뭐고 머리에서 클린시켜주시고 바로 사무실로 뛰쳐 갔다. 정리해보니 이렇다. 영상자료원 측과 이야기가 잘 안됐다. 총 3번의 상영 중에서,1회 밖에 프린트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상자료원 규정이란다. 아... 뭐 됐다. 나의 미남계로 영상자료원 측의 마음을 돌려놓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으나,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것 같았다. 홍콩의 배급사 측으로부터 받은 총 3회 상영을 허가한다는 팩스를 넣어보기도 했으나,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아흑흑.. 이미 홍콩 측에는 상영판권료를 홀라당 지불해버렸는데, 미치고 팔라당 뛰쳐나가 죽어 주셈? 아, 이즈음에서 비화 하나. 흥미로운 이야기다. 어서 깔끔하게 눈을 씻고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 BoA 주시라.
애초에 홍콩의 배급사 측에서 제시한 가격은 3000불. 그러나 영상자료원에 있다는 것을 통보 받은 배급사 측에서는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오홍.. 그거 프린트가 한국에 있다니... 판권도 끝나고 불법인데 말이징 --+. 그래도 당신들의 노력이 가상해서, 네 그럼 그걸로 트셈. 가격은 딱~! 반 깎아서 1500불 내셈”.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 일줄 알았건만, 매너 있어주신다. 원츄~!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예전 왕가위 영화제작비의 일부를 투자했던 모인그룹에서 발견된 왕가위의 초기작들의 포스터는 거기서 500불을 더 깎아 내리는 호기로 작용했다. 왕가위, 이 사람, 참 대단하다. 미련이 없는 건가? 미련한 건가. 자신의 작품의 자료 정도는 챙겨놓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모인그룹에서 자신의 초기작 포스터를 보고 광분땡겨주시던 왕가위님께서 그걸 자기에게 달라고 하셨다.
상큼하게 건네주신 모인그룹 측에게 진심으로 감사. 가위님... 제발 부탁인데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감독님의 프린트는 3벌 정도 이상은 남겨두셔야죠. T.T 아... 정말 내가 돈만 있다면 그의 작품의 모든 프린트를 다 거두어 들이고 싶은 심정이다.로또여~! 내게 오라~! 숫자의 여신이여~! 불쌍한 해용에게 1에서 45 사이의 수 중, 6개를 하달하소서!! 그래서 결론은 한국에 있는 <아비정전>의 프린트를 총 3번 상영하는 데에 들인 판권료는 100만원이 조금 넘는 가격이라는 것. 음... 별로 재미없었나? 그럼 저에게 돌을 던져주세요. 퍽~~!! (이미 눈 한쪽 시퍼렇게 멍든 정해용 씨)
| 불안은 항문을 잠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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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용. 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아비정전> 기억나? 그게 일본 프린트야. 거기 연락한번 해봐. 프린트는 아직 있대. 연락처 여기~ 빠이룽~”
아아아... 정녕 감동했다. 이 지면을 빌어 옥미나 양에게 진심으로 감사에 또 감사를 드린다. 그녀에게 건네 받은 ‘Prenom H’의 대표자 연락처가 그렇게 귀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머리털 나고 국제전화 해보기는 처음인 해용 씨. 떨리는 마음으로 일본 국제번호 ‘81’로 시작되는 그 길고도 험난한 번호를 침착하게 꾹꾹 눌러간다. 띨릴릴리~~ 철커덕~! “모시모시?~!”
허거덕! 아, 일본이었구나. -.-; 처절한 해용 씨, 안 되는 영어와 일어를 구사하며 열심히 상황설명 중. 앞에만 있어도 얼추 몸으로 땡겨주셈~ 아힝~ 전 세계의 공통언어 바디랭귀지는 먼 일본에 있는 사람에게는 전달될 수 없었다. 결국 이메일로 내용을 전달하기로 하고, 험난한 공문작성에 들어갔다.
총 3차례에 걸쳐서 행해진 이메일 보내기 작업 역시 산 넘어 산이기는 마찬가지. 종로영화제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아비정전>을 꼭 상영하고 싶습니다!’ 하는 절절한 내용을 지극히 사무적인 톤으로 영문 작성한 해용 씨. 거기에 일문으로 번역한 종로영화제의 보도자료를 첨부파일링하여 일본 측 회사로 휘리릭 발송! 아, 또 한 명의 지인에게 감사를.. 일문번역을 해준 한임철 군, 아이시떼루~!
답 메일은 그 다음날 9시에 정확하게 내 이메일을 휘황찬란 장식하고 있었다. 긴장 100만 배 해용 씨. 순간 셰익스피어는 속삭였다. ‘성공이냐~! 실패냐~! 그것이 문제로다’. 떨리는 마음을 추스르며 편지확인의 아이콘을 똥~ 때린 결과, 결과는? 성공 -.-V 프린트를 발송할 명확한 주소와 어떻게 서울로 발송하게 되는 것인가에 관한 기타 제반사항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이메일을 보내달라는 답장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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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시 이야기 시작. 신속히 일본에서 발송하려면 전용송장번호가 있어야 한다는데, 그런 것도 지금껏 모르고 무턱대고 살아왔던 해용 씨는 다시 한번 한숨 푸욱~. 배송업체 측에서는 아무리 빨라도 그 다음 날이나 되어야 전용송장번호가 나온단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블라블라블라들을 몽창 정리하고 이메일 말미에 최대한 신속히 전용송장번호를 따와서 보내겠다고 일본측에 다시 메일을 보낸 해용 씨. ‘모든 것은 잘 될 것이야’를 무한루프 하면서도 불안하고 노심초사한 감정은 숨길 수 없었다.
다음 날, 배송업체에서는 송장번호가 날아들었고 일본에서도 메일이 왔다. 열어본 결과, 경악할 수밖에 없던 해용 씨. 메일의 첫줄은 이러했다. ‘오늘 아침 프린트를 긴급 주문하여, 오늘 저녁 배송업체를 통해서 발송하도록 준비해두었다’. 아.... 감격 T.T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해용 완전 쌩쇼 한 것 같아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긴급히 전용송장번호를 따내기 위해 사용한 핸드폰 비용과 시간들이 아까워서 광년이가 될 뻔했으나, 어쨌거나 결과가 매우 흡족함으로 행복한 광년이로 타락.
게다가 ‘해용 씨가 하도 급하다고 난리 브루스를 하셔서 일단은 우리 쪽에서 발송료를 지불하고 보내버렸다’라는 문장에서는 완전 행복한 좌절~! 어쨌거나, 또 다시 심기일전한 해용 씨는 이번에는 일본에서 다이렉트로 인천공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 시간이 언제인지 관련배송업체에 문의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알아보고 최종 이메일을 작성하는 해용 씨. 이미 만성변비에 걸려버렸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인천국제공항에 필름이 도착했다는 쾌소식을 관세사 측에서 건네 들은 해용 씨는 그 자리에서 탈춤을 추기 시작, 무려 30분을 그렇게 발광했다는 후문. 그러나 문제는 또 있었다. 이것 역시 구구절절하게 늘어놓으면 대략 짜증을 부리실 우려가 있으니 과감하게 생략! 어쨌거나 정말로 친절한 심재철 관세사의 도움을 받아서 종로영화제 사무국으로 필름은 무사히 도착했다. 산모의 고통과 비교우위를 가리자는 것이 아니다. 정말, 내 귀여운 아이를 보는 듯 했다. 이 순간을 영원히... 사진 파바박~! 컨택에서 프린트 도착까지 딱 5일 걸린 셈이다. 자랑스럽다. 뿌듯 뿌듯~. 오늘 하루 잠자리는 무척 편할 것 같다.(여전히 대변은 대장에서 가출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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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여전히 <아비정전>으로 인한 문제는 산재해 있었다. 자막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자막으로 하면 되겠군’ 하며 유유자적하던 해용 씨는 부산시네마테크에 문의, 전문가의 고언을 듣고야 말았는데.... 두둥~!
“2회 때의 자막 시스템과 3회 이후의 자막 시스템이 판연하게 달라서 사용하지 못하십니다.”
허걱! 숨/막/혀. 대안을 생각하자, 대안을 생각하자. 일단 그럼 자막대본은 있는 것이다. 그럼 현재 있는 자막프로그램에 그 대본을 입히면 되는데, 문제는 대사와 자막이 제대로 맞게 하는 싱크 작업이었다. 이 즈음에서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릴 분을 호명합니다. 부산시네마테크의 이정희 차장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쨌거나, 그녀의 도움으로 <아비정전>의 VHS 본과 자막 텍스트 파일을 건네 받았다. 이것을 서울로 공수하는 과정 자체도 전쟁이었다.
물품을 픽업하고 무려 장장 고속버스를 타고 6시간을 주행해서 달려온 소중한 비디오 테이프는, 또 다시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서울 측 퀵 운송업체에게 하달되어 무사히 나에게 안착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자막을 프로젝터로 쏠 수 있게 실현 가능케 해줄 구원자가 필요했다. 고민에 고민을 더하고 있던 해용 씨는 초수퍼울트랄리지스틱한 영화제 자막계의 여왕 조미연 양에게 전화를 했다. 흔쾌히 도움을 주겠다는 말을 전해들은 해용 씨는 이 참에 다시 한번 탈춤을 덩실덩실. 미연양에게도 하해와 같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
| We meets <Days of Being Wild> ! |
모든 것이 완벽하다! 드디어 첫 기술시사가 이루어졌다. 국내 상영본 <아비정전>과는 색감이 판연히 다른, 그 슬픔에 찬 푸른 톤에 이미 나는 펑펑 울고 말았다. 전율이 일었다. 감격의 눈물을 훔쳐내고 나는 우다다다다다닥~! 스크린으로 뛰쳐 올라가서 기념사진 한 장 찰칵~! 드디어 제 2회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7년 만에 다시 공개되는 <아비정전> 무삭제판이 11월 24일 제 1회 종로영화제에서 상영된다. 비록 월드 프리미어도 아시아 프리미어도 아닌, 서울 프리미어이지만, 그런 것이 뭐가 중요한가. 서울 종로에서 <아비정전>은 완벽하게 부활했다.
그리고 비상을 꿈꾼다. 국내 상영 당시 비운의 작품으로 낙인 찍혀버린, 국내 자체 편집으로 인해 홍콩 느와르처럼 변해버렸던 <아비정전>(이 버전은 이번 종로영화제 심야 상영 때 스크리닝 됐었다. 오랜만에 다시 보니 흥미로운 텍스트였다. 일부러 현상과정에서 노출오버 시켜 뽑아낸 필름의 색감도 뭐 정겨웠으며, 양조위가 장국영의 형이다! 라는 식의, 마지막 장면의 자막은 정말, 다스베이더가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내가 니 애비다’라고 고백했던 것만큼의 충격이었다.
너무나도 친절한 설명. 뜬금없이 양조위가 등장하는 것에 대해서 나름대로 어떻게 저 인물에 대한 설명을 해줄 것인가 하는 수입자의 고심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친절한 자막은 정답이 아니다. 어쩌면 맞을 수도 있겠지만, 그 자막으로 인해 컨텍스트를 형성할 수 있는 과정이 조기차단 되었다. 그래도, 나는 그걸 나름의 개그로 받아들이고 한참을 웃었다.). 그러나 11월 24일 또 다시 <아비정전>은 완벽한 그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우리에게 컴백한다. 나는 그 자리에서 감격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릴터이고, 그 감동의 순간을 함께 하실 모든 관객 분들 또한 그러하실 것이다.완벽한 물아일체.
나는 스크리닝의 그 날이 기다려진다. 하늘에서 행복할 장국영 역시 영혼만은 그 상영관에 우리와 함께 있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영원한 1분, 1분, 1분이 모인, 영원한 100분의 순간.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