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2005년 10월 20일. 19시 정각’을 떨리는 심정으로 주목해보시라. 남북한 공동으로 극비리에 개발한 핵무기가 미국측에 양도되기로 결정된다. 이에 불만을 품은 한 북한장교가 천재 핵물리학 박사를 납치, 문제의 핵무기를 연구소에서 빼내 탈출을 시도하니 말이다. 자, 그때 433년 만에 지구를 지나는 엄청난 혜성이 한반도 상공을 파바박 통과한다.
흠, 대체 어디서 흘러나온 예언이냐 싶지만 안심하시길. 이건 지난 번 살짝 소개해드린 영화 <천군>(제작: 싸이더스, 감독: 민준기)의 도입부다. 그 과격성향의 북한장교 ‘강민길(김승우)’ 일행도, 그들을 쫓던 남한장교 ‘박정우(황정민)’일행도 혜성 통과시 발생한 요상한(?) 작용으로, ‘이순신(박중훈)’이 살던 1572년, 조선 변방마을에 툭 떨어지게 된다.
당시 이순신은 뭘 하고 있었는고 하니, 겁나게 꺽어지는 나이였던 28살에 장인의 후원으로, 무과시험을 봤지만 그나마 떨어진 후,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변방마을을 유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심기일전은커녕 도둑질, 사기, 밀매 등 한심한 행동도 자행하며 자포자기의 늪에 빠져있었는데, 하필(?) ‘현재의 일행’들은 그런 이순신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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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군>의 엔딩신 촬영장에 가기 전, 취재팀은 어쩔 수 없는 폭설로 인해, ‘빠샹’에서 ‘칭시링’으로 장소를 옮긴 <천군>팀의 흥미로운 빠샹 후일담 몇 가지를 들을 수 있었다. 공동 인터뷰에서 변무림 PD도 밝혔지만, <천군>팀은 원래부터 중국 로케이션을 계획했던 건 아니었다. 이순신의 무대였던 변방 북한땅의 광활하고 개발이 덜된 아름다운 모습을 영화에 담고 싶어 했지만, 아다시피 국내에선 그런 평원, 특히 평원과 더불어 멋들어진 산골이 결합된 지형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더욱이 문제는 엑스트라와 더불어 여러 가지 특수 소품들. 예를 들어 국내에선 잘 훈련된 말 한 마리를 빌릴라 쳐도, 200만원 정도가 필요하지만 중국에선 10배 저렴한 20만선에 빌릴 수 있다는 것. 또, 엑스트라에게 필요한 의상까지 국내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대여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중국 로케이션이 제작에 유리했다.
이에 <천군>팀은 그리 넉넉한 준비 기간은 아니지만, 3개월 정도 중국 헌팅에 나섰다. 그리하여 제1의 장소로 포착된 곳이 내몽고 자치구 빠샹이었고, 칭시링은 차선책으로 정해지게 됐다. 하지만 <천군>팀이 미처 계산하지 못한 것은 빠샹의 날씨. 예년보다 15일 정도 빨리 눈이 내렸는데, 빠샹에 도착해 맞이한 눈 세례만 4번이었다. 3번은 내리는 즉시, 알아서 척척 눈을 치워가며, 촬영을 감행했지만 마지막 네 번째는 폭설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사태에 봉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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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타월은 어찌나 교체가 안 돼는지 급기야 숙소측에 따져물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규정상 한달에 한번 교체된다는 놀랄 만한 사실이었다. 아~그럼 일 주일에 한번 만이라도 어떻게 안 되겠냐는 타협안을 내놓은 <천군>팀. 하지만 숙소측은 이미 사용해 축축해진 수건을 다른 방에 교차 공급하는 얄팍한 수법으로, 스태프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나.
오락거리도 골칫거리였다. 당구대 하나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산전수전 다 겪은 것은 물론, 누가 한명 신문이라도 손에 넣게 되면, 온통 너덜너덜해 질때까지 돌아가며 읽었으니, 그 정보 궁핍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또 하나 재밌는 건, 부상에 대한 치료 문제. 이빨이 부러지고, 화상을 입고, 무릎을 다치는 등 부상자들이 적잖게 나온 <천군>팀에서 가장 히트작은 무릎을 다친 사람 얘기. 중국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자 귀국해 치료를 받았는데, 의사 왈 “모래를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치료했네요”라는 ‘악’ 소리 나는 진단이었다. 만약, ‘낫겠지’하고 중국에서 그대로 지냈다면, 그야말로 끔찍한 결과가 됐을지 모를 일이었던 것.
그러니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언제 한국에 돌아가나 달력을 수십번 들여다본 스태프들이 적지 않았을 테고, (확실하게 들은 바로, 모스태프는) 향수병에 걸려 주위를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는 ‘뺘샹’ 후일담이 촬영장에 가기전, 여러 기자들의 귀를 무척이나 쫑긋 세우게 만들었다.
Ⅱ. 박중훈, 김승우, 황정민, 눈빛 하나도 흐트러져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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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대로, 공개된 촬영 장면은 ‘이순신(박중훈)’이 ‘강민길(김승우)’, ‘박정우(황정민)’와 함께 지난 노략질에서 쓴맛을 본뒤 다시 쳐들어온 여진족을 상대로 한판 승부를 벌이는 신. 방대한 엔딩 장면의 두 세 컷을 촬영하는 스케줄로, 맨 먼저 취재팀의 눈에 들어온 건, (각자 싸울 상대는 따로 있지만) 그들 세 사람의 합이 척척 맞아야 하는 약간은 까다로운 액션 컷이었다.
전체 촬영 분량의 80% 정도가 완성된 <천군>은 중국 촬영 분량으로 따진다면 90% 정도가 완결된 상태였다. 그런 가운데 가장 최근 전작이 <투 가이즈>인 <천군>의 전문식 무술감독은 주연 배우들과 국내/중국 무술팀이 섞인 여진족을 섬세하게 조율하며, 그 액션신을 지휘하고 있었다.
“광규야. 네가 먼저 들어오는 거야!”라고 동작을 다시금 확인하며, 연기하는 김승우를 비롯해 박중훈, 황정민 또한 각자 대면하는 상대들과 딱, 딱, 딱 공기를 가르는 경쾌한 액션을 신중하게 치러냈다. 물론 동작 하나라도 흐트러질 경우가 적지 않으니, 수십 차례의 테스트와 슛이 병행됐는데, 이를 지켜보는 취재팀도 그 리듬에 맞춰 어깨가 살짝 들썩거릴 정도.
부드러운 햇살은 배우들의 머리 위를 간질이는데, 발밑에선 흙먼지가 일어나 기침을 켁켁 내뱉어야 하는 상황, 이에 테스트와는 비교할 수 없이 스피드있게 진행되는 슛 장면의 액션이 어우러져 멀리 중국 땅에서 바라보는 <천군>의 촬영 장면은 제법 분위기있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일몰 무렵엔, 몇 시간 동안 촬영 분량이 없어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수십명의 연기자들이 일제히 동원되는 스케일 큰 컷들이 촬영됐다. 저 쪽에서 와~아하는 기합 소리와 함께 여진족들이 우루루 몰려오면, 이순신, 강민길, 박정우는 긴장감 어리면서도 결연한 의지가 엿보이는 자세로 방어 태세에 들어간다. 이 장면 또한 운치있게 느껴진 것이 한쪽에서 인간들은 죽어라 싸우는데, 카메라 반대편으론 그저 무심한 듯 저물어가는 붉은 태양이 펼쳐지니, 세상사의 은유같아 기분이 묘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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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군>의 연출을 맡은 민준기 감독은 데뷔작부터 만만치않은 블록버스터 연출을 맡은 것인데, 그는 스태프들이 인정하는 상당한 내공의 인물. 보통 신인 감독은 조심스러움 때문에 촬영에 스피드를 내지 못할 경우가 있지만, 과감한 결단력으로 신뢰를 주는 타입이었다. 촬영 막간에‘빵빵한 남자 배우 세 명이 대거 출연하다보니, 그 비중 문제도 상당히 신경쓰였을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이순신이 축이긴 하지만, 세 명 모두 중요한 역할”이라며 “마치 영화 <대탈주>처럼 한 인물씩 들어갔다 빠졌다하는 운용의 미”가 반영될 것임을 시사했다.
Ⅲ. “나중에 보면, 왜 <천군>을 만들었는지 쉽게 알아요.”
기자 간담회장엔 민준기 감독, 박중훈, 김승우, 황정민, 공효진 외 변무림 PD, 싸이더스의 노종윤 이사가 참석해 <천군>에 대한 여러 가지 얘기들을 풀어냈다.
민준기 감독은 “나중에 보면,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힘내라고 하고 싶어서,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한반도의 냉전 종식을 위한 메시지’가 <천군>에 깔려있음을 피력했다.
캐릭터 설명을 겸한 소감에서 박중훈은 역시나 “이순신이 역사적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라 부담이 되기도 한다”는 말을 전했고, 김승우는 “재미있으면서도 의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감독의 말에 공감해 영화에 출연”했다면서, “그렇게 하고 있고, 그렇게 되길 기대하고 있다”는 말을, 황정민은 “이 작품을 하게 된 계기는 베테랑 연기자들과 함께 연기하고 싶었기 때문이고, 좋은 걸 많이 배우고 있다”는 인상적인 코멘트를 각각 남겼다.
촬영 분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멀리 중국까지 날아와 촬영장을 빛낸 공효진은 “제가 맡은 김수연은 감독님의 짝궁 이름이었대요. 극중에서 홍일점인데, 그래서 사랑받는 캐릭터라기보단 뭔가 상한 듯한 캐릭터에요”라는 귀여운 멘트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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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감에 빠진 이순신과 관련해 박중훈의 호감도 마찬가지. 그는 “이번 영화에선 이순신이 근사한 장군이 되는 순간 끝나는 거에요. <천군>에서 이순신은 역사에 서술된 근사한 좌절이 아니라 하찮은 좌절을 겪는 인물인데,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하게 됐죠.”라고 말하면서 <천군>이 가진 매력을 슬쩍 드러냈다.
특히 박중훈은 민준기 감독이 건네준, 이순신에 대한 논문 수준의 참고자료를 빠짐없이 훑어봤다고. 더불어 「난중일기」까지 찾아서 읽어봤으니, 어느덧 이순신 전문가가 다 된 셈.그는 백의종군 횟수나 이순신이 해군뿐 아니라 육군으로서도 출중했던 점, 「난중일기」가 사실은 여자 관계나 살인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도 담겨있다는, 몇 가지 새롭고 솔깃한 정보들을 귀띔해 주기도 했다.
민준기 감독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영화 <천군>은 처음 시나리오에선 ‘미래→과거, 통일한국’이라는 설정이었다. 그러다 크게 바뀌어 현대→과거, 여기에 코미디적인 부분이 많이 곁들여졌다. 하지만 이야기하고자 중심 테마는 변함이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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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배우들에게 가진 끈끈한 믿음 못지 않게, 영화 <천군>은 배우들끼리의 끈끈한 믿음도 눈여겨볼만하다. 이번 작품으로 박중훈과 김승우는 <돈을 갖고 튀어라> 이후 9년 만에 같은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 돈독한 관계로 알려진 이 두 사람의 해후에는 박중훈의 권유가 커다란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게 싸이더스 노종윤 이사의 말. 이에 박중훈은 “에이, 설마 김승우씨가 멍하니 있다가 제 추천만으로 영화에 출연했겠어요?”라고 위트있는 발뺌(?)을 해 웃음을 주기도.
재치있는 배우들 덕분에 딱딱해질 수 있는 기자 간담회장은 제법 즐거운 공기들로 떠다녔고, 그러는 동안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도 아쉬움 속에 깊어져 갔다. ‘과연 <천군>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순신을 얼마나 새로운 감각으로 조명해낼까’라는 작지 않은 궁금증을 남긴 채 말이다...
중국 칭시링=취재: 심수진 기자
사진/촬영: 이한욱
▶ 다음 3부에는 <천군>의 특수분장을 담당한 윤예령 원장과의 미니 인터뷰, 주연 배우들과의 공동 인터뷰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많이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