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소개되었던 그의 작품들은 이런 감성을 주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싱그런 정오의 햇살을 머금은 듯한 그의 영화는, 그래서 '내 마음 날씨는 언제나 맑음' 정도로 유지해주는 선에서, 젊음의 우발적인 반란마저 유쾌하고 맑은 감성에 버무려 놓았다. 그래서 적지 않은 청춘파들은 그에게 열광했고, 내심 그만이 그려내는 파스텔 같은 이야기를 계속 기다려왔을지도 모른다.
10대 소녀들의 해맑고 맛깔난 ‘수다’ 같은 이야기 <하나와 앨리스>는 이와이 슈운지가 간만에 선보인 풋풋한 신작이다. 작품의 면면은 특유의 감성멜로적인 설정이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극적 감수성에 매우 진지해진 느낌. 그래서일지 모르지만, 이 영화는 전체 이야기 속 음율의 흐름이 뻔하고 다소 밋밋해 보여 그저 사춘기 미소녀 영화라 치부되어질 소지도 없지 않아 보인다.
<하나와 앨리스> 포스터 전면에 내걸린 당차 보이는 두 소녀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이야기의 주요 소재인 두 소녀의 짝사랑 대상 즉, 사랑하고픈 미소년이 당연히 등장한다. 보기엔‘뜨악~’해 보여도 극의 중요한 소재로 잘 활용되어지는 행복한 녀석이다.‘순수곰’과 ‘앙증여우’인 하나와 앨리스는 성격과 개성은 틀려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이상적인 우정관계를 맺는다.
언제나 맹한 표정에 가끔은 두 눈을 동그스레 뜨며 놀래기도 허둥대기도 하는 ‘하나’. 이런 친구의 부탁도 마다치 않고 천연덕스럽게 하나의 짝사랑 상대인 미소년 앞에 너스레를 떨어 보이는 앨리스. 그녀들을 보고 있노라면 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그 천진난만한 청춘의 모습에 사랑스러움을 느끼고 만다.
한때 불만스런 가족상황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의 기억을 안고 있던 앨리스, 그런 앨리스에게 자신의 세상을 소개했던 하나. 그렇게 학교 발레 써클에서의 만남을 계기로 우정을 쌓는 두 소녀. 그렇게 그녀들은 (남학생들이 선망해마지 않는)‘발레리나 걸’로 등장하는데, 이는 솜사탕 같이 예쁜 극의 배경으로 작용하는 또 하나의 소재가 된다.
필자의 견해에서 본다면 이 영화의 가장 매력 포인트는 수채화를 그리듯 투명하고 뚜렷한 색채 화면과 감독만의 감각적 장면전환 기법이다. 그림엽서와 견주어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소품처럼 어우러진 배경과, 만화의 페이지를 넘기듯, 여운을 머금은 컷의 이동은 시선을 자극한다. 이렇듯, 감수성 여린 10대에게 다양하게 접해질만한 사건들이 그들만의 시선과 행동으로 잔잔하게 표현되어짐은 이 작품에서 중요한 미덕으로 다가선다.
이와이 슈운지의 감성적 터치는 아이돌 스타인 스즈키 안과 신예 아오이 유우를 하얀 스크린을 도화지 삼아 파스텔 톤으로 스케치한다. 때문에 <하나와 앨리스>는 ‘이와이 월드’표 영화면서도 순정만화를 감상한 듯한 착각마저 동시에 안겨준다.
<하나와 앨리스>는 짧게 보면 10대의 감수성 안에 안주하는 경향이 보이지만, 그것에 결코 호소하려 들진 않는다. 그저 묵과적으로 바라볼 뿐이고 그녀들이 그리는 우정과 사랑에 관한 짧은 일상들을 소품들과 더불어 10대의 감성언어처럼 요소요소에 섬세하게 배치해 두었을 뿐이다. 때론 당돌하고, 때론 화사하게.
아~ 우려하는 마음에 충고하자면 ‘하나와 앨리스’라는 제목만 보고 동화 같은 영화 혹은, 10대의 반항기나 방황을 그린 우격다짐 청춘 예찬물로 미리 예상하지 말자. 물론, 이와이 슈운지 초기작 가운데는 ‘하드’한 것도 있지만 꼬장꼬장하신 우리의 심의위원님들은 아직까지도 말랑말랑하고 ‘소프트’한 작품들을 더 선호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