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가 닭살돋는 이유는 짐짓 객관성을 가장하지만 편협한 내용과 서술 방식, 그 양자택일과 흑백논리가 주는 견딜 수 없는 짜증이 아닐까. 물론 성인이 된뒤, 그 의미없이 암기한 일련의 정보들을 상당 부분 뒤집어야 하는 재미를 선사하고자 함이 교과서의 고약한 취미라면 할말은 없지만 말이다.
호오, 서두부터 왜 이런 삐딱한 심사를? 다름 아닌 지난 13~15일, 영화 <천군(天軍)>(제작: 싸이더스/투자: 아이엠픽쳐스/배급: 쇼박스/감독: 민준기) 중국 촬영현장을 취재하면서 기자는 영화 스토리가 스토리인지라 한때 마음 속을 몹시도 꿀꿀하게 했던 이런 생각에 다시금 젖어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교과서를 화려한 낙서장으로 활용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기자와 같은 생각이지 않을까.
도대체 영화 <천군>이 어떤 스토리길래 교과서 운운하는지 궁금하실듯. KBS에서 한창 방영되고 있는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과 마찬가지로, <천군>도 '이순신’을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다. 드라마든 영화든 ‘성웅이라는 이름하에 오랫동안 광화문 네거리 동상과 현충사에 박제됐던 영웅 이순신의 외피를 과감히 벗겨, 그 인간적인 면에 천착해 들어가는 것이 그 출발점’인 것은 비슷.
단, 드라마가 이순신의 생애 전반을 다루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런저런 지식들에 살짝살짝 문제를 제기하는 도전적인 행보를 보일 예정이라면, <천군>은 결혼 후 스물 둘에 문과에서 무과로 진로를 바꾼 이순신이 1572년, 식년 무과에 처음 응시해 실패한 뒤, 비로소 4년 뒤인 서른 둘에 무과에 급제하기까지, 그 ‘4년 동안’의 시기를 흥미롭게 주목한 스토리다. 희한하게도 요 4년 동안의 이순신에 대한 기록들이 많지 않다는 것.
말하자면 한국판 <백 투 더 퓨처>로, 현재 인물들이 본의아니게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된다는 SF적 상상, 또 오랑캐의 침략이 빈번했던 16세기 변방에서 현재의 인물들이 위기에 처한 이순신을 구하고, 촉박하게 현재로 돌아와야 한다는 모험담이 결합된 것이 영화 <천군>이다. 그러니 성웅 이순신의 영웅담도,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의 휴먼 스토리도 아닌 것이 이 작품의 구미당기는 설정.
Ⅱ. 영화 <천군>의 상상력을 발동시킨 것은 무엇?
처음 <천군> 중국 촬영 현장이 공개되는 장소는 내몽고 자치구 ‘빠샹’이었다. 이순신의 무대였던 변방 북한땅의 모습을 영화에 담자니, 국내에선 여러 가지 한계가 노출돼 <천군> 측은 계획을 수정, 중국 로케를 시행하게 됐다. 빠샹은 비교적 가장 비슷한 장소로, 그 광활한 평원이 여진족과의 격전지로써 영화의 멋진 스케일을 살릴 수 있는 곳.
허나 취재팀이 가기 전, 빠샹에는 엄청난 눈이 내렸고, 결국 일정이 연기됐음에도 멈추지 않는 눈 때문에 제작팀은 급히 비슷한 장소를 물색, 북경에서 자동차로 2시간 여 거리에 있는 칭시링을 선정, 나머지 촬영 장소로 활용하게 됐다. 이미 주연 배우인 박중훈, 김승우, 황정민은 지난 9월 28일, 중국으로 출국했던 상황이고, 홍일점인 공효진은 중국 촬영 분량은 없지만 지난 13일, 취재팀과 함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편 공효진은 “어떨 땐 나두 내 천재성에 두려움을 느낀다니까, 호호호.”같은 대패 필요한 대사를 간간히 뿌리는, 철부지 천재 핵물리학 박사 '김수연'을 연기한다.
이쯤해서 두 가지 사항에 고개가 갸우뚱하실듯. 영화의 제목에도 쓰이는 ‘천군(天軍)’의 의미와 아무리 픽션을 가미했다지만, 왜 굳이 남북한 장교가 또 하필 이순신이 살던 과거로 떨어지게 되는지 말이다. 그 해답은 다음에 서술하는 영화 <천군>의 중요한 모티브와 연결된다.
「선조 25년 임진년 5월 3일... 왜적대장 ‘평수가’는 무리를 이끌고 종묘로 들어갔는데, 밤마다 신병(神兵)이 나타나 공격하는 바람에 적들은 놀라서 서로 칼로 치다가 시력을 잃은 자가 많았고 죽은 자도 많았다..<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권26」.
즉, <천군>은 위에 인용한 ‘신병(神兵)이 나타나 적을 공격했다’는 짧은 언급에서 시작됐다. 이 신병의 정체는 당시 조정이 구원군이라 믿었던 명나라 군사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 따라서 영화 <천군>은 여기에 상상력을 재미나게 붙여, 문서 속의 신병을 한편으로 조선의 침략자였던 명나라 군사라기보다 현재에서 과거로 시간여행을 간 군인들로 설정한 것. 더욱이 초현대 무기를 갖춘 2005년의 군인들은 단숨에 적들을 제압할테니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군대(天軍)’가 아닐까라는 상상이 발휘된 것.
Ⅲ. 에필로그
당초 13일로 예정됐던 <천군> 촬영 현장 공개가 다음 날인 14일로 바뀐 관계로, 취재팀은 이미 어둑어둑 해가 진 북경 시내 몇 곳을 관광하고, 투자사의 모직원이 ‘음식이 나올때마다 기대되기보다 한없이 긴장되는’ 중국의 묘한 음식들을 떨리는(?) 심정으로 맛봤다.
아무튼 곧 공개할 <천군> 촬영 현장 기사에는 웃지 않고는 못 배기는 촬영지 ‘빠샹’에서의 스태프들의 후일담, 박중훈-김승우-황정민의 환상적인 호흡이 인상적인 <천군> 엔딩 장면 촬영신, 공동 인터뷰를 비롯한 흥미로운 내용들이 펼쳐질 예정. 그동안 여러분은 순제 63~65억원이 소요돼 시원한 블록버스터로 정체를 밝힐 이 영화의 승패를 아주 약간, 아주 약간만 점쳐 보시길.
취재: 중국 칭시링= 심수진 기자/ 사진: 이한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