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그램>은 ‘원죄’에 대한 이야기다. 종교의 색을 가진다. 하지만 그것이 주된 의미를 부여하거나 방향성을 좌지우지 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악함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성악설과 태어날 땐 착하지만 살아가면서 악해진다는 성선설은 이 영화의 주된 주제의식과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주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처럼 모호하다. 하지만 감독은 나름대로의 주제의식을 영화 속에 담고자 노력 했다.
결론이 없는 위 질문처럼 영화의 진행은 처음과 끝이 없다. 첫 장면은 영화의 결론을 보여주는 영상으로 시작 된다. 하지만 장면은 도입부의 장면으로 이어지며 바로 또 어딘지 모를 순서의 영상으로 이어진다. 금방 죽어가던 사람은 다음 장면에선 총을 들고 누군가를 죽이려 하고 있으며 다음 장면에서 남편을 잃은 부인이 흐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영화의 제대로 된 스토리상 초반부에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렇듯 영화는 결론이 없는 주제를 위해 독특하면서도 파격적인 진행 방식을 나타내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21그램의 영혼의 무게가 사라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 무게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감독의 성찰이 담겨있다. 그러면서 감독은 관객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관객들이 느끼도록 만든다. 일관성 없는 영상의 진행은 관객들에게 자유로운 판단을 하도록 머릿속을 열리게 하고 있다. 영화는 세 가지 전제를 부여한다. 관객들은 최소한의 통제인 그 세 가지에 얽매이지 않지만 그 안에서 해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본능을 보이게 된다. 영화는 관객들은 스스로의 원죄에 대한 반문을 던진다. 21그램의 무게가 과연 영혼의 무게인지 아니면 사랑, 혹은 죄의 무게인지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선 단지 그 무게를 미로처럼 펼쳐놓은 영상과 스토리 속에 관객이 건지기를 애절하게 바라고 있다.
세 쌍의 가족이 나온다. 6명의 인물이 나온다. 남자들은 죽음을 맞이하거나 죽음이 진행 중이며 죽음을 자행하게 되면서 죽음보다 못한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 여자들은 공통된 모습으로 힘든 과거에서 밝은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마약을 끊고 낙태의 경험을 이기고 아이를 갖기를 희망하고 남편과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가진 것 없이도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하지만 여자들은 앞부분에서 보여주던 모습들과는 다르게 상반된 현실을 맞이하게 된다. 이것이 이 영화의 주제이다. 결코 자신의 삶은 결코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다는 것 그리고 삶의 의미는 서로 가치 기준과 삶의 방식에 따라서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얽혀버린 6명의 관계에서 서로의 관계를 통해 인간 내면의 모습을 처절하리만큼 잡아내고 있다. 숀 펜과 베네치오 델 토로의 관계가 그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다른 사람의 악행이 자신에게는 도움이 되었을 때 과연 그를 벌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장면에서는 관객들은 경악하고 만다.
숀 펜이라는 배우는 연기는 <아이 엠 샘>에서나 그 외의 어떤 연기보다도 뛰어나다. 그의 연기는 처절함이 묻어난다. 하지만 그 반면에 이기적인 남성의 모습 또한 표현된다. 서서히 죽어가지만 삶의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모습에서 그의 연기는 시종 관객을 압도한다. 베네치오 델 토로가 숀 펜이 사소하게나마 놓친 부분을 빈틈없이 잡아준다. 악하지만 결코 성악설과 성선설의 애매함을 느끼게 만드는 연기는 관객들이 자신의 감정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21그램>은 스포일러라는 말이 필요가 없다. 만약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해도 보는 이에 따라 완전히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으며 설명을 하다보면 정리가 안 되는 것을 느끼고 포기하게 될 것이다. <21그램>은 좋은 주제와 대단한 배우 그리고 훌륭한 감독이 만들어낸 원죄와 인간의 내면에 대한 독특한 작품이다. 영화를 보고 당장은 못 느낄 수 있어도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