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블록버스터도 일본에서 이 정도의 흥행스코어를 올리기 힘든 상황에서 ‘순애보’적인 사랑이야기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는 소식은 영화보다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라는 감수성을 자극하는 제목부터 ‘멜로적 성향을 토대로 멜로로 끝을 보겠다’는 그 뻔한 상투성이 보이는데도 말이다.
영화의 스토리는 구차하다 싶을 정도로 관습적이다. 소년과 소녀가 만나 사랑을 한다. 그러나 소녀는 불치병(백혈병)에 걸려 세상과 이별하고 소년은 홀로 남는다. 성장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사꾸짱”을 부르며 웃고 있을 소녀와는 달리 소년은 시간을 몸으로 체화한다. 영화는 성인이 된 사쿠타로가 과거에 봉인된 소녀 아키를 만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사랑’의 정의에 접근하려 한다. 결국, 영화는 원작소설과는 달리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이 ‘죽음’이라는 극복하기 어려운 상대 앞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어떻게 ‘기억’되는지 액자식 구성으로 펼쳐진다.
원작소설과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영화가 얼마큼 슬프고 감동적인지를 여기에 나열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그들의 사랑이 지금까지 보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보다 더 절실해 보이지도 않는다. <세상의 중심에서...>의 사랑이야기는 익히 보아왔던 멜로영화 ‘틀’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을 뿐 ‘진화’한 흔적은 없기 때문이다. 단지, 사랑의 찰나를 한 장의 사진처럼 잡아낸 영상 이미지만 눈여겨볼 만하다.
원작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판매 부수 기록을 갱신했고, 그 소설을 각색한 영화는 70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흥행 스코어로 일본 영화史의 한 획을 그었다. 상투적일만큼 닳고 달은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는 사실은 한국 관객 또는 독자들에게는 다소 의아해 보인다. 물론, 우리에게도 90년대 후반 <약속>, <편지>등으로 멜로영화 열풍이 있었다. 이 영화들 또한 연인의 죽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같은 멜로영화의 관습을 답습했었기에 ‘신파’성이 강한 일본적 멜로영화가 한국관객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세기가 바뀐 지금 이웃나라 일본의 멜로 붐은 과거에 대한 애정 어린 향수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문화적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일본영화 시장에 특수한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반영한 트렌디한 ‘상품’이기 때문이다.
‘소설과는 달리’ 영화의 시대적 설정은 80년대 중반이다. 또한 사쿠와 아키는 정성스레 쓴 편지대신 워크맨을 통해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고 라디오에서는 80년대의 락 명곡들을 연신 틀어댄다. 게다가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는 30대가 된 사쿠타로(오자와 다카오)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특정 연령대가 영화에 자신을 동일화하기 쉽게 만든다. 이 모든 영화의 설정은 소위 ‘단카이 주니어(團塊ジュニア)’라는 소비층을 공략하기 위한 상업적 전략으로 보인다. 약혼자 리츠코(시바사키 코우)를 찾기 위해 과거로 타임슬립하는 사쿠타로의 질주는, 경쟁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순수하고 행복했던 과거 어느 시절로 돌아가고픈 단카이 주니어 세대의 욕망을 투영한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근래에 보기 힘들만큼 노골적으로 신파성을 드러낸 순수감성 멜로다. 아키와 사쿠짱의 無자극성 순애보는 섹스와 폭력이 가득 찬 영화에 지친 우리의 정서를 순화시켜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서지는 오후의 햇살에 코끝을 찡그리며 환하게 웃던 아키의 얼굴이 TV CF스타의 연출된 미소처럼 보여 순수한 사랑의 환희에 공감하기 주저하게 만든다.
사쿠타로, 아키, 리츠코, 이 세 사람이 만들어 가는 100% 식물성, 무알콜, 저칼로리, 무지방, 저타르 사랑 이야기 속에서 당신이 찾던 순수를 발견할 것인가 아니면 순수를 돈으로 환산하는 자본의 영악함을 발견할 것인가는 오로지 당신 몫이다.
그래도 부모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조폭을 등장시키는 한국영화보다는 세련되게 눈물을 강요하는 영화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