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스포일러(spoiler)'라는 단어는 익숙한 용어가 되었다. 대략 '망치다'라는 정도의 뜻을 가진 'spoil'에 어미 '-er'를 붙인 '스포일러spoiler'는 '망치는 사람'이란 뜻을 가진 단어일 텐데, 영화 매체에 관심을 가진 관객이라면 이 단어가 '김을 빼는 기사'를 뜻한다는 속어라는 정도도 미리 파악하고 있다. 설령 사전적인 의미로 알고 있지 않더라도 '김을 빼는 기사'라는 뜻이라고 알려 주면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릴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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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절름발이다."
최근에는 한국 영화에까지 빈번하게 협박의 용도로 사용하는 '스포일러'는 수많은 사람이 [올드보이]와 [텔미섬씽]을 보기도 전에 한탄하게 만들었고 요사이엔 '스포일러'가 영화 감상에 별 방해가 되지 않는 영화까지 폭넓게 쓰이는 오지랖 넓은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관객에게 '스포일러'의 공포를 선사하는 대다수의 영화는 장르 규칙을 잘 이용한 말끔한 스릴러물이고, 비밀이 새어 나가서는 아니되는 스릴러의 중심에는 '반전'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2년만에 [빌리지]를 들고 찾아온 나이트 샤말란은 현존하는 영화감독 중에서 스릴러의 '반전'을 가장 잘 이용하는 사람 중 하나다.
● 반전 : 스릴러 명인의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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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반전은 영리한 시나리오에 절반을 두고 유능한 연출에 나머지 절반을 둔다. 감각있는 연출 만으로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를 만들 수도 있지만, 훌륭한 반전이란 견고하게 구축한 플롯을 바탕으로 벌어지는 법이다. 영화 자체를 뒤바꾸어 놓았던 훌륭한 반전을 끌고 온 최근의 영화는 모두, 공들여 구축한 시나리오가 있었다. 두 시간 동안 [유주얼 서스펙트]는 주변 사물을 통해 카이저 소제의 거짓을 만들었고 [식스센스]는 치밀하게 영화 속 사건에 이중 의미를 끼워 놓았다.
반전은 스릴러 시나리오에서 무척 기술적인 결과물이다. 이야기를 한참 펼쳐놓은 절정의 순간, 앞서 펼쳐놓은 모든 사실을 부정하는 것으로 반전을 완성한다. 관객의 기대가 어긋나리라는 배반의 쾌감을 정확히 충족시켜주며 반전은 소임을 다한다. 영화의 80% 동안 관객 시선의 사각지대에 실마리를 마련해 두고 장르가 지목하는 바로 그 순간! 사각지대에 후레쉬를 비추며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이 죄다 거짓이라고 외치는 매우 간단한 요령이 반전을 만든다.
요령은 간단하지만 수준은 단순하지 않다. 단순하게 사실을 뒤집는 것으로 반전을 만들 수 있지만, 훌륭한 스릴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 전반부 동안 펼쳐 놓은 이야기가 단숨에 거짓으로 바뀌는 요령은 짧은 스릴을 부릴 뿐이다. 영화관에 나와서 몇 시간이면 기억에서 흔적조차 없는, 단순히 영화 전반부를 버리는 반전은 일반적인 스릴러 영화 수준의 반전이다. 졸리와 호크같은 스타의 매력을 뛰어넘지 못한 범작 [테이킹 라이브스]나 아자니와 스톤의 매력을 뛰어넘지 못하는 [디아볼릭]처럼 도마뱀 꼬리처럼 전반부를 잘라 버리는 스릴러는 평범한 수준을 넘지 못해 스타에게 잠식당한다. 관객의 주의를 엉뚱한 곳으로 유도하는 맥거핀은 이미 히치콕이 완성한 트릭이었다. 유능한 시나리오라면 열심히 풀어낸 전반부를 반전 이후에 다시 한번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적이고 매끈한 시나리오, 날카롭게 날이 갈린 플롯. 비범한 스릴러 시나리오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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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이전 영화의 80%에 이르는 이야기를 그대로 다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반전을 위해 관객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이끄는 기능 만을 가지기에는 영화의 나머지 이야기가 너무 아깝다. 반전에 이르는 80%의 전반부는 관객의 주의를 흩어버리는 거짓과 반전 이후 밝혀지는 진실을 모두 담고 있어야 한다. 훌륭한 반전을 담고 있는 시나리오는 '경제적'이어서 버릴 부분이 없어야 한다.
샤말란이 뛰어난 스릴러 작가인 것은 매끈한 시나리오를 쓰는 능력에서 출발한다. 히치콕을 연상하게 하는 고전적인 연출의 무게감도 좋지만, 샤말란의 장점은 군더더기가 없고 반전을 치밀하게 안배하는 튼튼한 시나리오에 있다. 이미 전무후무한 명성을 쌓은 [식스센스]는 결혼반지가 떨어지며 정체를 깨닫게 되는 반전 이후, 이전 장면을 그대로 복기하며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하게 만든다. 반전을 기다리며 [식스센스]의 전반부는 이중의 의미를 안배한다. 매몰차게 남편을 대하던 아내는 반전 이후 애틋한 사랑을 잊지 못하는 순정파가 되며 대인기피증이 있는 콜(할리 조엘 오스먼트)의 증상은 사실 유령에 대한 공포였음이 확인된다.
영화 외적인 소재를 영화로 끌고 온 [언브레이커블]에서는 슈퍼히어로물이 가지는 장르적인 특성이 반전의 소재가 된다. 반전 이후, 관객은 슈퍼히어로 만화에 광적으로 탐닉한 엘리야(사무엘 잭슨)가 어떤 존재의미를 가지는지 깨닫는다. 다시 한 번, 관객은 영화를 처음부터 복기하며 엘리야의 행동과 슈퍼히어로물의 형식을 맞추어 본다. 좀 더 노골적으로 샤말란의 미끈한 플롯을 담고 있는 [싸인]은 영화 전체에 걸쳐 모든 기괴한 현상이 죽은 아내의 유언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반전을 선보인다. 새로운 영화 [빌리지]는 어떠냐고? 다르지 않다. 너무나도 매끈하게 샤말란은 기괴한 공포가 일상의 안식을 점거하는 작은 마을에 이중 의미를 심어 놓는다.
● 연출 : 영상세대의 아날로그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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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샤말란이 영상보다 문자에 더 익숙한 복고적인 성장기를 겪었나 의심해 보면 그렇지도 않다. 영화 외적인 개인사를 떠나서 그의 영화가 그렇다. 배우의 미묘한 표정과 동작에 집중하고 클로즈업과 긴 호흡의 촬영을 빈번하게 이용하는 샤말란의 영화는 무척이나 영화적이며, 영상을 효과적으로 통제한다. 반지를 떨어트리는 장면과 아내의 입김을 말콤 박사(브루스 윌리스)의 당혹스런 표정과 교차편집하는 [식스센스]의 클라이맥스는 너무나 영화적이어서 샤말란의 시나리오에 희곡이나 소설같은 이질적인 부속이 끼어 들어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다.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샤말란의 연출은 요란하고 자의식이 팽배한 타란티노만큼이나 영상을 먹고 자란 세대의 티가 난다. 영상 세례를 받은 이 신세대의 연출은 영상을 떠난 영화를 연상할 수 없을 만큼 노련한 감각으로 화면을 통제한다.
특수효과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배우와 미장센에 연출의 핵심을 둔다는 점에서 샤말란은 고전적이다. 비교적 특수효과가 많이 등장한 [싸인]조차도 인상적인 장면은 60년대 B급 SF풍의 외계인이 등장한 장면이 아닌, 어두운 지하실에서 후레쉬 만으로 공포를 만들어 내던 시퀀스였다. 유장하고 느긋한 카메라워킹은 데이빗 린 시대를 생각나게 하고, 키치 취향의 소재와 빛과 카메라 움직임을 운용하는 스타일은 조지 로메로를 연상하게 하지만, 샤말란을 통해 가장 잘 떠오르는 감독은 역시 히치콕이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연출을 구사하는 샤말란은 히치콕의 깊이가 21세기 초입에도 팽팽한 긴장을 이끌어 낸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벌건 대낮에 군중 속에서 느끼는 위협이 진정 무섭고,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포가 발생한다던 히치콕의 스릴러를 샤말란은 유능하게 되살려낸다. 히치콕보다 배우의 연기력에 더 비중을 두고 데이빗 린같은 유장한 호흡에 매료되어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샤말란은 히치콕의 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스릴러 작가다. 자신이 연출하는 매 작품마다 까메오로 출연하는 샤말란의 버릇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 개성 : 운명과 존재가 키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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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에 깊이 영향을 받은 샤말란의 작품에는 강력하게 짜 맞추어진 운명과 깊이 아로 새겨진 존재의식이 드러나 있다. 뛰어난 솜씨로 플롯을 구성하는 샤말란의 시나리오는 자신의 예정된 운명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는 캐릭터로만 구성된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존재의미를 영화 마지막에 찾아내며 혼란을 마무리 한다. 기독교적인 예정론과 운명론의 세계 아래에서 누구의 존재도 가벼울 수 없음이라.
자신이 치료했던 환자의 총에 맞은 이후, 말콤 박사는 쉽게 포기한 아동 환자에 매달린다. 말콤 박사가 유령을 본다는 소년 콜을 끊질기게 상담하는 것은 혼란스러운 자신의 존재의미를 분명하게 하기 위한 집착이다. 콜 역시 유령을 보는 자신의 능력에 혼란스럽다. 왜 자신이 유령을 보아야 하는 것인지 이유를 알고 싶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새롭게 접근해 끊질기게 상담하는 말콤 박사다. 모두의 정체가 밝혀지는 영화의 말미가 되면 콜은 자신의 능력에 어떤 행동을 가져야 하는지 깨닫고, 말콤 박사는 자신의 치료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깨닫는다. 예정된 운명 속에서 말콤과 콜은 서로의 존재의미를 깨닫게 하는 짝패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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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궁금해 했고, 슈퍼히어로에서 정답을 찾는다. 잘 부서지는 골격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당연히 짝이 존재할 것이고 그는 [언브레이커블], 절대 부서지지 않는 불사신 육체를 가진 사람일 것이다. 당연히 그런 육체를 가진 사람은 슈퍼히어로야만 했다. 엘리야는 대형 사고에서 홀로 아무 상처없이 살아난 데이빗 던을 찾아내고 그의 숨겨져 있는 슈퍼히어로의 능력을 각성시킨다. 점차 데이빗은 슈퍼히어로로 변하고 결국 한가족을 살인의 현장에서 구해낸다. 그렇다면 엘리야는? 슈퍼히어로와 정반대이고 슈퍼히어로의 능력을 각성시키는 사람, 슈퍼히어로물에서 그런 사람은 단 하나, 악당 뿐이다. 영웅의 짝패.
샤말란의 운명론은 [싸인]에 이르면 매우 노골적이 된다. 주인공은 아내를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고로 잃은 후부터 종교를 버린 전직 목사다. 운명과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시작하는 그레이엄(멜 깁슨)은 전형적인 샤말란식 주인공이다. 그의 주위에서 벌어지는 온갖 영문 모를 사건은 결국 거대한 위협이 다가왔을 때 퍼즐 조각처럼 짜맞춰지고 운명의 도구로 위협에 대항한다. 드디어 존재를 알아차리는 목사.
신작 [빌리지]도 무척 샤말란다운 영화다. 기괴한 사건에 휩싸인 평화로움, 혼란스런 정체성, 모두가 운명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반전, 청교도적인 마을. 주제만큼이나 소재도 그렇다. 샤말란이 어린 시절을 보내며 기독교만큼이나 영향 받은 것이 있다면 키치 문화일 것이다. 또래의 문화를 공유한 감독 타란티노나 샘 레이미처럼 샤말란은 미국의 B급 취향에 자유롭다. 일상적인 샤말란의 세계에 끼어드는 특별함은 언제나 유령, 외계인, 슈퍼히어로같은 키치 문화의 산물이다. 샘 레이미의 [다크맨]처럼 샤말란 역시 [언브레이커블]을 통해 슈퍼히어로에 대한 깊은 이해를 과시한다. 청교도적인 구닥다리 마을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빌리지]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의 위협도 미국 만화처럼 키치적이니까.
특이하다. 21세기 초입, 고전적인 연출을 아직까지 고수하는 복고와 키치 문화의 최신 흔적을 함께 가지고 있는 샤말란은 특이한 개성을 가진 감독이다. 더구나 이 사람, 반전의 묘미를 아는 유능한 스토리텔러이기도 하다. 그래서 [빌리지]가 전작에 비해 그다지 변하지 않았음에도 반갑다. 유능한 스토리텔러, 스릴러 작가의 작품은 아직 보고싶게 만드는 영상과 이야기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