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로우면서도 도발적인 분위기를 쉼 없이 밖으로 발산하는 서정은 무섭고 음습하지만 수많은 비밀을 품고 있을 거 같아 늘 기묘한 매혹의 공간으로 인식되는 숲과 여러 모로 포개지는 구석이 많은 기이한 캐릭터의 배우다.
그러기에 송일곤 감독의 <거미숲>에 그녀가 등장하는 것은 전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놀랄 만한 점이 있다면, 영화 속의 거미숲을 가로지르며 조용히 걸어 다니는 서정의 모습이 기대 이상으로 근사하게 하나의 풍광으로 눈에 밟힌다는 점이다. 성격이 배치되는 1인 2역으로 나온다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일이지만...
이처럼 말보다는 몸짓과 표정으로 자신을 스크린에 드러낸 서정이 이번에는 이 자그마한 사이즈의 웹 공간에 ‘제작일지’ 라 명명된 글로써 또 다른 자신의 일부분을 본의 아니게 선보였다. 결론은?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와 닿겠지만 본 기자 개인적인 생각엔 서정이라는 배우, 호불호가 명확하고 귀여움과 애교가 그득그득 한 여자가 아닌가 싶다.
자, 그럼 직접 확인해보시길....
● 내 안의 또 다른 나, 첫 1인 2역 도전기.
결국은 의상과 가발, 그리고 분위기로 1인 2역을 소화하기로 했다. 그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두 인물이 확연히 다르게 보일 수 있을까 촬영을 하면서는 많이 걱정했는데, 촬영이 끝나고 영화를 본 후에는 오히려 사람들이 서정이 1인 2역을 했다는 것을 못 알아볼 정도였다. 이 정도면 서정의 연기 변신은 우선 성공인가? 여러분, 은아와 수인, 모두 서정 맞아요~~^^
● 서정, 무용가가 되다.
● 나도 멜로 영화의 주인공
그런데, 첫 촬영이 신혼여행의 닭살스러운 연기라니! 한껏 긴장을 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촬영은 우성 오빠의 너무도 자연스러운 상황 연출과 리드로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결혼도 아직 안 했는데, 어쩜 그렇게 잘 해요?" 라고 묻자, 우성 오빠 왈.
" 내가 이번이 벌써7번째 신혼여행이야. " 부드러운 이미지 덕분에 드라마에서 늘 신혼의 남편으로 출연해온 우성 오빠, 이번이 7번째 신혼여행이란다!
그래도 너무 자연스러운 우성 오빠가 의심스럽다가, 또 역시 부드러운 남자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과연 어떤 게 진실일까? ^^
● 감독님, 우리 감독님
● "태산이~~ 높다하되~~"
그 때 "태산이~~ 높다하되~~" 로 시작하는 창을 부르기 시작하는 우성 오빠. "인간은 이 넓디넓은 우주에 있어서 한 먼지에 불과해. 저길 봐봐~ 여기서 보면 다 그냥 점일 뿐이잖아. 근데 그 먼지가 뭘 아둥바둥하고 있는 건지.." "하지만, 그 먼지 같은 인간이 우주를 담을 수도 있으니.. 인간은 우주의 쓰레기이면서 또 우주의 영광이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선문답들인지, 그런데 그 때는 정말 하늘 위의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 사진관의 여인 되기!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무거운 카메라를 다루는 법은 현장의 스틸 사진작가님께 직접 전수 받았고, 현상기를 능숙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협찬사에서 파견된 기술자분께 직접 전수를 받았다. 노 젓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사진기와 현상기를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은 훨씬 재미있었다. 두분의 특별 강습을 마치고, 촬영이 끝날 쯤에는 사진관의 여주인으로 완벽하게 사진기와 현상기 사용법을 마스터했다. 앞으로 멋진 사진이 필요하시면 서정에게 맡겨주세요. ^^
● 사진관 촬영
마을 사람들이 너무 순박해서 처음 촬영을 시작할 무렵부터 모든 마을 사람들이 다 나와서 구경을 하곤 했다. 그럼에도 그 사람들의 순박한 심성인지 영화에 대한 애정인지 현장에서는 너무나도 완벽한 협조가 잘 이루어졌다. 어느 정도 인가 하면, 어느 날 밤 촬영을 진행하고 있는데, 술이 거하게 취한 어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현장 옆에서 막 삿대질을 하면서 갑자기 부부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쩌리요. 아무리 말려도 멈출 줄을 모르고… 그때 촬영을 알리는 소리 "슛! 조용!" 그 순간, 술 취한 채로 삿대질을 하던 할아버지. 그 동작 그대로 꼼짝도 안 하시는 것이었다.
촬영이 길어지자, 계속 그대로 멈춰있던 손가락이 부르르 떨리면서도 말이다. 웃지 못할 광경이었다. 그러다. 잠시 후 다시 "컷!" 소리와 함께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삿대질을 마저 하시면서 싸움을 계속하시는 할아버지. 그렇게 순조로운 협조 속에서 진행된 촬영이 일주일을 넘어서서, 사진관 분량이 거의 끝날 무렵에는 마을 사람 모두가 거의 스텦 수준이 되셔서, '이거 동시녹음이죠?' '지금 프레임 인 되는 거예요?' 이런 질문들이 오고 갈 정도였다. 그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 마을의 그 묘한 분위기가 나오기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 신비로운 여인이 되는 것은 너무 힘들어~
● 숲에서 명상, 웰빙이 따로 없네.
● 클라이맥스! 완벽한 교감
<섬> 경우에는 너무도 치열한 여자를 연기하다 보니, 촬영이 끝나도 계속 그 잔상이 남아, 한참 동안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한 가지를 깨닫고 나니, <거미숲>의 수인 역시 만만치 않게 사연을 안고 있는 여자이지만, 그만큼 힘들지가 않았다. 또, 같이 연기한 우성 오빠의 도움도 컸다. 우성 오빠는 자신의 연기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신경 써준다. 카메라 앞에서 상대 배우와 소통했던 거에 대해서 정확하게 표현하고 자신감을 준다. 아, 정말 상대 배우를 잘 만났구나. 이렇게 또 한 사람을 알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멋진 프롤로그 완성!
거미숲의 모든 비밀을 가진 그녀, 수인이 숲 속에서 천천히 뒤돌아보는 장면. 영화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장면이다. 뒷모습에서 시작되어 천천히 돌아보는 표정에 모든 걸 담고 있어야 한다. 아, 그 때 늘 우리 촬영팀을 도와주던 날씨가 영화의 마지막 촬영인 것을 알았던 건지, 하늘에서 이 장면의 분위기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한 겨울의 칠흑 같은 숲의 밤. 바람에 흩날리는 하얀 눈. 정말 그 자체로 너무나 멋진 그림이었다.
그 동안 숲에서 고통의 대상이었던 한겨울 바람은 마지막에 눈과 함께 아름다운 영상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그렇게 스탭들과 함께 모두 흡족한 마음으로 마지막 촬영을 멋지게 마무리 지었다.
"사진에서는 잘 표현이 안 됐지만, 영화에서 아름다운 영상을 확인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