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를 풍미했던 근육질의 액션 스타들은 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하루가 다르게 그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 최고의 근육질 스타 아놀드 스왈츠제네거는 <헤라클레스>, <코난>, <코만도>, <터미네이터> 등으로 말 없이(!) 몸으로 승부를 보는 전략으로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근육이 늘어지기 시작하자 스크린은 더 이상 그를 예전만큼 반기지 않게 되었다. 결국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예의 유명세를 이용한 정치 활동으로 현재는 나름대로 미국의 주지사 자리를 꿰차고 앉아 지혜로운 면모를 발휘하고 있다. 나른한 눈매에 다져진 몸매가 일품이었던 실베스타 스텔론 역시 <람보>, <록키> 등 바지만 입고 등장하는 영화에 줄창 얼굴을 내밀면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와 쌍벽을 이루는 스타로 시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역시나 세파에 견디지 못하고 현재는 <스파이키드> 같은 영화에서 멍청한 악당역을 맡으며 어렵사리 스크린에서 버티고 있다.
돌프 룬드그렌, 쟝 끌로드 반담 까지 해서 진정으로 울룩불룩 근육을 자랑하던 지적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캐릭터들은 브루스 윌리스를 시작으로 키아누 리브스, 휴 잭맨 등 말랑말랑하면서도 강한 캐리터들에 밀려 더 이상 예전만큼의 활동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근육질 액션스타의 계보가 막 끊어져버릴 즈음 등장한 이름이 있었으니. 빡빡 깎은 머리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빈 디젤’이라는 심플하고도 강렬한 이미지가 그 주인공이다. 어떻게 보면 아놀드 슈월츠제네거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약간은 쟝 끌로드 반담이나 돌프 룬드그렌 같기도 한, 게다가 실베스타 스탤론의 나른함까지 갖추고 있으니 이 또한 ‘빈 디젤’이 친근하고도 반갑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는 요소들이 아니었을까. 어찌 되었건 저예산 SF액션 영화 <에이리언2020>의 폭발적인 흥행성공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게된 ‘빈 디젤’은 자기의 강점을 최고로 내세운 <분노의 질주>, <트리플 엑스> 같은 작품에 등장하며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다지고있다.
80년대 스타일의 스타를 추억하는 이들에게 ‘선물’처럼 등장한 ‘빈 디젤’은 그러나 그 시절 몸짱 배우들과는 확실히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는데, 17살에 무대에 첫 데뷔 전을 치뤘고 그때부터 영화에 대한 꿈을 가지고 도전을 해 왔다. 직접 제작, 감독, 각본, 주연, 투자 등 완벽히 ‘빈 디젤’의 영화라 부를 수 있을 법한 단편 <멀티페이셜>은 칸느에서 상영되어 상당한 관심을 끌었으며 이어 발표된 <스트레이즈>는 1997년 선댄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는 쾌거를 올기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에 하늘도 감복하셨는지 스티븐 스필버그의 눈에 들게 되었고 결국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인상적인 카파조 일병으로 캐스팅 되는데 성공한다.
<넉 어라운드 가이스>, <보일러 룸>등 소품 영화에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나름의 커리어를 구축하고 있는 ‘빈 디젤’은 유행따라 나타났다 잔혹하게 외면당한 왕년의 고만고만한 육체파 배우들과 노선을 달리하며 ‘신세대 배우’에 어울리는 의식 있는 활동으로 앞으로 선택하는 작품이 기대되는 배우 중에 하나다.
중저음의 굵직한 목소리에 순진하게 반짝거리는 눈으로 씨익 웃는 모습을 보고 어찌 귀여워하지 않을 수 있으랴. ‘빈 디젤’이라는 배우가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런 사소한 것들까지도 완벽하게 이미지 메이킹하는 그만의 노하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