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장미'와 '너'는 흉내낼 수 없는 그 존재 자체가 가진 본질이자 리얼리티를 말한다고 봅니다. 영화< 트로이 >의 리얼리티는 권력과 사랑이 던져주는 메시지보단 대량복사해낸 컴퓨터그래픽의 기술에 있습니다. 아시듯이 트로이는 호머의 이름값만 빌려온 영화입니다. 다행입니다. 호머는 이미 죽었으니 감독이 명예훼손죄로 고발당할 수도 없고 이름 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1936년 공산주의자 비평가 월터 벤야민은 영화는 '기계적인 재생산'의 예술형태라고 미리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의 예언처럼 21세기의 영화들은 이전의 감독들이 평생을 받쳐 고민하던 문제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자는 내러티브 이미지들을 컴퓨터로 만들어냅니다. 돈만 있으면 됩니다. 트로이를 감칠맛나게 하던 소수를 다수로 복제해내는 기술은 영화< 베이브(The babe) >,< In the Line of fire >에서 쓰여졌습니다. 트로이의 적은 병사를 다수인 오만명정도로 복사해내니 엑스트라의 비용도 줄이고 오만명을 찍느라 법석을 필 불편함도 없습니다. 마우스로 클릭하여 '저리가!'하면 재까닥 가버리는 생명없는 인간들이니까요. 제가 생명이 없다고 했듯 기술이 생산해 낸 영화속의 리얼리티란 짝퉁이 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기술이란 놈은 늘 변하기 일쑤니까요.
영화는 아시다시피 스파르타의 메넬레우스와 형인 미케네의 아가멤논이 트로이를 공격하는 것이 주된 이야기입니다. 이 전쟁의 발단은 평화사절단으로 스파르타제국에 파견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올란도 볼룸)의 불한당 행동으로 시작됩니다.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파리스 왕자는 넘의 나라 왕비인 헬레네(다이앤 쿠르거)를 보쌈해옵니다.
네. 일면은 용감한 왕자이고 자랑스러운 왕비 헬렌입니다. 파리스왕자와 밤을 보낸 헬레네 왕비는 천연덕스럽게 그럽니다. '어, 그거 실수였어요.' 완나잇한거라 변명합니다. 그래도 스토리전개상 왕자를 따라 나섭니다. 그 일로 트로이는 10년간 지나긴 전쟁을 영화속에서는 2주간 압축되어 열심히 싸웁니다. 영화는 이렇게 신이 배제된 인간적인 캐릭터가 나오고 신의 농간보단 인간들의 권력과 욕망으로 전쟁이 일어나고 이어집니다.
생략됐습니다만 신화에선 파리스왕자가 불한당행동을 하는 운명적인 명분이 있습니다. 그는 신인 제우스로부터 받은 황금사과를 질투하는 다른 여신들을 제끼고 가장 아름다운 여신인 아프로디테에게 줍니다. 이에 여신은 선물로 왕자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나눌 헬레네 왕비를 약속대로 보내줍니다. 영화는 이와같은 생략이 종종 흐름을 끊어 놓습니다.
감독은 애초에 신이 배제된 트로이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런 의도를 색다르거나 높게는 안봅니다. 보고 접근하는 각도는 다를 수 있고 할리우드의 영화는 이제 소재빈곤에 허덕이니까요. 멜깁슨의 <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와 달리 마틴 스콜세지의 <예수의 마지막유혹>은 인간적인 예수에 초점을 둡니다. 그 영화에서 보이는 결혼한 유부남예수마냥 트로이는 신적인 대상을 없애고 신적인 존재를 인간으로 내리면서 전형적인 액션무비의 캐릭터들을 만듭니다. 어쩌면 그냥 < 트로이 >보다는 < 아킬레스의 트로이 >가 어울려 보입니다.
오락영화의 명감독인 감독의 역량탓보단 의도가 빗나간 것이라 봅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신들까지 총 집합했다면 가닥 끊어진 영화에 더욱 제정신 아닌 영화가 나올 뻔 했습니다.
영화는 그를 둘러싼 액션이 볼만합니다만 그는 왜 싸우는지 조차 관심없고 싸우기위해 태어났기에 싸우고, 어쩌다보니 사랑하게되서 사랑하는 심심한 인물입니다. 실은 그게 우리와같은 인간의 모습입니다만 영화와 현실은 다르지요. 현실속의 인물과 같다면 뭐하러 돈을 내고 영화를 보겠습니까. 멋지게 싸운다고 그걸 보려 돈을 내진 않으리라 봅니다.
신의 아들인 아킬레스(브레드 피트)보단 오히려 인간의 아들인 헥토르왕자(에릭 바나)가 덜 멋지지만 인간답습니다. 왕자답게 트로이를 위해 승산 없는 목을 내걸고 아내를 아끼고 갓 태어난 아들을 위해 목각인형을 깍는 자상한 아버지이자 품위를 가진 왕자입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싸우러 나가면서 작별인사를 두루 건널때 정작 매력적인 주인공 아킬레스는 왜 빨리 안나오냐며 고래고래 소릴 질러댑니다.
이들 외에 아내를 빼앗긴 스파르타의 왕'메넬라오스(브렌든 글리슨)'와 그리스 제국건설이란 야망을 가진 미케네의 왕이자 그의 형인 '아가멤논(브라이언 콕스)'은 원래 하던 악당짓을 계속합니다. 이렇게 되면 영화는 재미없어지는 거지요. 악당도 악당의 논리가 있어야하고 선과 악은 뚜렷이 구분지어질 수 없을 때 재미가 생기는 거니까요. 스토리도 생략되고 캐릭터들도 매력보단 전형적이고 이제 기대할 만한 건 영화의 한 축인 사랑이야기입니다. 파리스왕자는 헬레네왕비와 아킬레스는 여사제 브리세이스와 쌍쌍파티로 나옵니다. 그러나 이상하지요. 박자가 어긋납니다.
운명적인 사랑영화라고 하는데 완나잇 스탠드 영화를 닮았습니다.
사랑에 빠진 파리스왕자의 연인 헬레네는 스파르타의 왕비(다이앤 크루거)입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왕비가 완나잇을 외쳐서 실망감을 주더니 전쟁이 일어나자 스파르타로 되돌아가려고 합니다. 겨우 헥타왕자가 이건 사랑게임이 아니라 권력싸움이며 돌아가도 전쟁은 계속된다며 맥을 짚어줘야 이해합니다. 왕비 맞습니까. 어릴 때 보았던 < 트로이의 헬렌 >에서 헬렌의 팜프파탈 이미지가 차라리 나아 보입니다. 멍청한 여자보단 섹시한 여자가 관객의 몰입을 가져오니까요. 멍청하고 가벼워도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어쩌겠습니까. 누가 이런 사랑에 빠질 줄 알았냐고 파리스왕자가 대들면 할 말없지요.
브래드 피트(아킬레스역)를 보면 차고 넘칩니다. 좋은 배우이고 뛰어난 외모도 갖었지만 좀 끼를 줄어야될 것 같습니다. 영화제목을 < 브래드 피트의 트로이 >로 고쳐도 될 듯 하니까요.오히려 단 한 장면 만 나왔지만 넘치는 끼를 소화해내고 압도적인 연기를 펼치는 여배우가 있습니다. 아킬레스의 어머니이자 물의 여신인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 1965)에 출현했던 쥴리 크리스티입니다. 브래드 피트와 그녀의 연기를 비교하자면 역시 엄마가 고단수입니다.
브래드 피트는 왜 자꾸 벗을까요. 자꾸만 벗어대서 플래이 보이 모델같아 보입니다. < 파이트 클럽 >에서 보이던 그의 연기가 그리워집니다. < 헐크 >의 에릭바나(파리스왕자)는 브래드 피트와 반대로 보입니다. 끼가 좀 부족하여 외려 영화서 캐릭터 덕을 보는 인물이니까요. 역시나 넘치는 것은 부족함만 못하지요.
영화를 보고나서 든 생각입니다.
오래전 <스타트랙 >과 < 사운드오브 뮤직 >을 만든 로버트와이즈 감독의 영화 < 트로이의 헬렌(1965, Helen of Troy) >에서 유독 떠오르는 한 장면이 기억났습니다. 수십 명의 병사들이 엄청난 크기의 목마아래로 꼭 깔려서 짓이겨 질 것마냥 달라붙어선 젖먹던 힘까지 내며 삐질삐질 땀을 흘리고 그 큰 목마를 끌고 갑니다. 물론 < 트로이 >의 목마뒤로는 오 만명의 병사가 흘리는 땀은 없습니다만 그들의 땀이 피땀으로 보였답니다.
명분이란 무얼까요. 지금도 이라크와 미국은 전쟁중입니다. 아킬레스의 말처럼 전쟁은 언제나 이어지고 또 언제나 그렇게 권력을 가진 신의 존재인 이들의 목적에 따라 인간들은 실제든 컴퓨터 그래픽상에선 수없이 죽어가고 죽임을 당할 겁니다. 그게 지금 우리네 현실과 다름없는 그나마 < 트로이 >는 생각하게 해줍니다. 짝퉁의 아우라도 멋지지않습니까? 나이키보단 나이크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