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이 영화가 취하는 전략은 나치즘의 비극을 직선이 아닌 곡선의 방식으로 강타한 <인생은 아름다워>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생각해보니 부자(父子) 관계를 통해 유발하는 일련의 감정선까지 유사한 듯!). 하지만 그냥 슬픈 것 보단, ‘웃기는 슬픔’이 주는 강렬함을 의식한 듯, 지나친 우화(寓話) 전법으로 진행되고 있는 <효자동 이발사>는 안타깝게도 그 모든 감정 생성에 실패한 듯 보인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사건들을 경험했던 세대에겐 ‘진정성’이 결여된 상업 영화며, 정치적으로 둔감한 편에 속하는 필자와 같은 세대에게는 더더욱 어쩡쩡한 영화가 <효자동 이발사>다. 이 영화가 가공된 인물과 설정을 빌어서까지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권력의 횡포’는 그 고도의 형식적 기교만큼 진한 울림을 안겨주지 않는다는 얘기. 더욱이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박정희에 대한 해석은 불쾌하기도 할뿐더러 위험천만하게 느껴진다.
‘저기요, 가운 때문에 오해하셨나 본데 전 의사가 아니거든요’. 그럼 이 대사를 읊조리는 주인공의 직업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이발사’다. 권력이나 정치와는 무관하게 살아가던 이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이발사 ‘성한모(송강호)’는 어느날 각하의 전용 이발사가 된다. 얼핏 엄청난 특혜를 입을 것도 같지만, 각하의 아들과 시비가 붙은 자신의 아들을 그저 사정없이 때릴 수밖에 없고, 그런 아들이 간첩 누명을 쓰고 붙잡혀갔을 때도 말한마디 할 수 없는 힘없고 소심한 아버지일 뿐이다.
오줌이 찔금거릴만큼 ‘괴물’같은 권력이 휘둘러졌던 지난 시절, 두려움을 한 켠에 안고 살아가던 인물들이 어디 ‘성한모’뿐이었을까. 소시민이라면 더욱더 파쇼가 제공한 기만적인 안전지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지만 <효자동 이발사>는 일련의 역사를 비극적으로 추억하지도, 그렇다고 낭만적으로 채색하지도 않는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며, 그 안의 인물들 또한 실제 인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
이 영화가 취한 그러한 완곡 어법에는 통렬한 비판이 벼려있지도, 넘치는 슬픔이 담겨있지도 않은 ‘애매함’만이 묻어있다. 영화의 초반에선 경쾌하고 재치있게 느껴졌던 임찬상 감독의 엉뚱한(?) 착상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만든 형식에 스스로 매몰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성한모’의 아들이 바보스런 가해자에게 고문을 당하는 장면, 전래동화스런 치료법을 제시하는 도사의 등장 등 지나친 은유와 환상성이 배어있는 적잖은 장면들은 짜증마저 솟을 정도.
임찬상 감독은 이 영화 안에서 드라마, 코미디,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 접합을 시도했지만, 눈에 띄는 것은 소박하면서도 명민한 맛이 스민 코미디쪽이다. 그런 면에서 주인공 ‘성한모’는 감독이 형상화한 인물 중 가장 매력적인 동시에, 송강호 개인이 지닌 장점이 효과적으로 맞물리는 캐릭터. 무심한 듯 하면서도, 개구진 송강호의 표정이나 말투는 <효자동 이발사>를 끌고 가는 주된 동력이 되고 있다.
이에 비해 가장 거슬리는 인물은 박정희를 모델로 한 ‘각하’의 캐릭터다. 독재자의 이미지보단 인간적인 고뇌를 풍기는 다소 쓸쓸한 인물로 묘사된 ‘각하’는 이 영화가 박정희 세대에 대한 은근한 향수를 갖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케 한다. 몇 년 전부터 심심치 않게 비판적인 논쟁에 올랐던 박정희 세대에 대한 향수-강력한 절대권력에 의해 다스려지는 질서가 아름답다-는 아닐지라도, 각하의 영구차가 성한모의 집에서 한참 동안 떠나지 않는 종반 장면은 일종의 속죄 의식처럼 해석되기도 한다. 여기에 불구가 된 아들이 각하의 영정 그림에서 파온 눈알의 힘을 빌어, 정상이 된다는 판타스틱한 설정에 이르면, 그 해피엔드적 결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한참동안 머리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효자동 이발사>가 차라리 그 악랄한 정치사를 정공법으로 보여줬더라면, 에두를 것 없이 미칠 듯이 심각하게 파고들었더라면, 필자가 느낀 감정은 조금 달랐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이 권력의 희생양이라는 색다를 것 없는 주제 의식을 과도한 상상력속에서 끄집어 내자니 조금 허무하고 씁쓸하기조차 하다(그렇다고 이창동 감독이 <박하사탕>에서 보여준 식의 화법이 좋다는 말은 아니다).
며칠 동안 왜 <효자동 이발사>에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었을까를 생각했던 필자는 명확하진 않지만, 한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이 영화는 핏빛 역사를 폭력의 이미지로 재현하진 않는 대신, 유머의 이미지로 재현한다. 비록 새로운 감수성으로 무장했지만, 이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역사를 가볍게 소비하게 만든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건 고루한 진지함만큼이나 바라보기 너무 힘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