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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 이발사' 촬영현장 공개
강호형님, 소리누님과 떠나는 시간여행 | 2003년 11월 18일 화요일 | 임지은 이메일

그냥 이발사가 아니라 대통령의 이발사다. 가위를 든 송강호의 진지한 모습
그냥 이발사가 아니라 대통령의 이발사다. 가위를 든 송강호의 진지한 모습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이건 1962년에 등장한 가족계획 표어다. 지금 보면 영락없이 인터넷 유머게시판으로나 가야할 듯한 글귀가 당시에는 전국민의 막중한 의무로 받아들여졌음을 어찌하랴. <효자동 이발사> 세트 곳곳은 그런 종류의 표어들로 가득하다. 관공서 마빡엔 "분열은 자멸이다. 총화만이 살길이다"라고 대문짝 만하게 새겨진 플래카드, 한 쪽 벽엔 "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는 낡아빠진 쥐잡기 운동 포스터. 앞서 기술한 단상들을 마냥 웃어넘길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가 키치였기 때문이다. 시대 자체가 거대한 키치, 그건 어쩌면 우리가 지나온 6, 70년대에 대한 가장 적확한 묘사일 수 있다. 회유보다 협박이 익숙한 시대.

성한모 출세했네! 뻑적지근 환영인사
성한모 출세했네! 뻑적지근 환영인사
그리운 과자들, 예쁜 점방아가씨
그리운 과자들, 예쁜 점방아가씨
효자동 거리 전경
효자동 거리 전경
송강호, 문소리 두 명의 주연배우 때문에 우선 관심을 모은 영화 <효자동 이발사>가 어제(11/17) 촬영현장을 공개했다. 어르신들에게는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타임머신을 탄 듯한 신기함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효자동거리 오픈 세트는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한층 높인다. 주인공 성한모(송강호)의 이발소를 경계로 삼엄한 권력의 공간 경무대(청와대의 옛 이름)와 사람 사는 냄새 담뿍 배어 나오는 서민의 공간 효자동으로 나뉘어 지나간 세월의 때로 을씨년스럽고 때로 그리운 추억들을 담아낼 것. 사사오입 개헌과 4. 19, 새마을 운동을 비롯한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페이소스 섞어 펼쳐질 바로 그 장소다. 총 제작비는 10억, 제작기간은 두 달 정도가 소요됐다고.

오늘 촬영할 씬은 대통령과의 미국순방여행에서 돌아온 한모를 마을 사람들이 요란스레 환영하는 장면. 일개 '깎사'에서 세빌리아의 이발사도 아닌 대통령의 이발사로 승격, 처음으로 대단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한모를 향해 사람들은 제각기 아부 섞인 환영인사를 건네기 여념이 없다. 아코디언 연주며 어딘가 어설퍼 뵈는 화환, "장하다 성한모", "국위선양 성한모", "우리들의 호오프 성한모" 등의 글귀가 빼곡이 적힌 팻말에다 플래카드까지 동원됐다. 한모가 유유히 걸어와 악수를 청하자 열광은 한층 더해진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고수머리 헤어스타일을 보여준 송강호는 <살인의 추억> 때보다 한층 날씬해진 모습. 영화를 위해 10킬로그램 정도를 감량―엄밀히 말하면 <살인의 추억> 때가 의도적으로 찌운 모습이었으므로 감량이라고 말하기에는 어폐가 있을 수도 있지만―했단다.

이어 촬영에 들어간 오늘의 두 번째 장면은 성한모가 생업인 이발솜씨를 과시하는 부분. 머리를 깎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쉽게 보기 힘든 '권력자'인 한모를 향해 갖은 물밑작업에 여념이 없다. 어둑해지면서 부쩍 쌀쌀해진 날씨에도 불구, 준비까지 합쳐 OK 사인이 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소요됐다. 한편 촬영 후에는 임찬상 감독, 송강호와 문소리, 이재응 등 주연배우, 강승용 미술감독과 제작을 맡은 최용배 청어람 대표 등이 자리한 가운데 제작발표회가 진행됐다. 오고간 질의응답 내용을 통해 2004년 상반기의 기대작 <효자동 이발사>가 과연 어디만큼 왔는지 미리 점쳐보기 바란다.

임찬상감독과 세 주연배우들
임찬상감독과 세 주연배우들
주인공 가족, 단란한 모습
주인공 가족, 단란한 모습
Q: <효자동 이발사>는 국내 3위 배급사로 성장한 청어람(<싱글즈>, <장화, 홍련> 등 배급)이 처음으로 제작하는 영화다. 첫 작품으로 이 영화를 택한 이유는?
최용배 대표: 처음 청어람 설립 당시부터 배급과 제작을 겸하려는 계획이었다. 첫 작품이 <효자동 이발사>가 되려고 늦어진 모양이다. 재미와 감동, 혹은 흥행과 비평적 성과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가 아닐까. 바로 그런 작품이 <효자동 이발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Q: 촬영은 어느 정도 진행됐는가.
최용배 대표: 오늘로 총 32회분의 촬영을 마쳤다. 촬영이 총 65회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횟수로는 50퍼센트가, 실제 분량상으로는 40퍼센트 정도가 완료된 셈이다. 개봉은 내년 3월로 예정되어 있고 순 제작비는 34억 5천만원 정도로 보고 있다.

Q: 임찬상 감독은 <효자동 이발사>가 입봉작이고 시나리오도 직접 썼다. 감독의 연출의 변이 궁금하다.
임찬상 감독: 시대배경은 6, 70년대. 청와대 앞에 위치한 작은 이발소를 운영하는 이발사가 주인공이다. 당시 이 거리는 삶의 현장이면서 동시에 4. 19를 비롯한 중요한 사건들이 벌어졌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소시민인 이발사의 눈으로 격동의 시기를 엿본다는 착상을 통해 역사가 서민에게 가지는 의미를 되짚어보고 싶었다.

Q: 주연배우들에 질문.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송강호: ("국민배우 송강호"라는 사회자의 소개에) 국민배우는 안성기 선배님인데.. (웃음) 원래 작품을 선택하려면 적어도 1년은 넘게 준비하는 게 상례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예정에도 없던 타이밍에 놀라운 시나리오가 나타났다. <살인의 추억> 끝나고 사실 좀 오래 쉬려고 했는데 시나리오에 반해 뛰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발사라는 직업적 특수성보다는 그가 살던 시대,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봐야 할 영화다. 우리들 아버지 세대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건강한 웃음과 감동을 함께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문소리씨와 내 아들을 연기하는 재응군 외에도 평소 존경해 온 많은 선후배님들이 참여해 기대가 크다. 나와 문소리씨만 열심히 하면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문소리: 어느 날 야구장에서 야구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두산이 이기고 있어 좀더 보고싶긴 했지만(웃음) 채근을 이기지 못하고 뛰어나가 이 시나리오를 받아보게 됐다. 그게 크랭크인하기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감독님께 왜 이렇게 늦게 캐스팅했냐고 물었더니 "안 할 것 같아서.."라고 하시더라. 아니 나만큼 6, 70년대에 잘 어울리는 배우가 어디 있다고... 다들 아시는 것처럼 나는 아직 경력이 길지 않은 배우다. 다양한 장르, 그 중에서도 이 영화처럼 순간 순간의 반응력을 요구하는 작품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분량 상으로만 보면 조연일 수 있지만, 아버지와 아들을 감싸안는 든든한 모정을 보여주는 게 포부다.
이재응: 아버지와 어머니(송강호와 문소리를 가리킴)가 워낙 연기를 잘하셔서 배울 점이 많다(초등학생 재응군의 조숙한 코멘트에 장내는 온통 웃음).

Q: 송강호와 문소리에 질문. 서로의 장단점을 꼽아달라.
송강호: 문소리는 워낙 열정을 가지고 연기하는 배우다. 게다가 머리가 대단히 좋다. 작품 분석력이라든지 감독의 디렉션을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내가 선배지만 인간적으로도 배울만한 점이 많다. 단점이라면, 주연배우들이 한 명이 술을 좋아하면 한 명은 좀 안 좋아하고 그런 게 있어야 하는데 워낙 강적이라 상당히 힘이 든다. (얼굴이 빨개지는 문소리) 농담이다.
문소리: 처음 시작 때부터 "도와줄게. 오빠만 믿어!"라고 호언하신 탓인지 매번 선배님이 큰 도움을 주신다. 배우로서 말하자면, '왜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라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허를 찌르실 때가 많다. 천재적인 감각의 소유자라고 생각한다. 내가 군더더기 있는 연기를 할 때마다 깔끔하게 다듬어 주시는 등 여러 모로 배우고 있다. 그리고 사석에서도 현장에서도 오직 영화만 이야기하는 분. 그런 열정도 닮고 싶은 부분이다. 게다가 술버릇까지 좋다. 대단히 젠틀하다(웃음).

취재: 임지은
촬영: 이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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