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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제국>, <우나기>를 통해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명성을 확인한 후 이 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는 얘기를 듣고 기대했었건만 이런저런 일정 때문에 결국 놓치고 말았던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적은 보수라도 상관없으니 일 좀 하게 해달라는 말로 면접을 끝내고 나오는 요스케는 또 다시 아내의 독촉 전화를 받고 심란하다. 위로 차 찾아간 타로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 요스케는 타로가 얘기했던 보물을 떠올린다. 붉은 다리가 있는데 그 주변의 한 집에 가면 자신이 숨겨 논 보물이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은 그 보물에 관심이 없지만 아직도 잘 숨겨져 있는 지만 확인하고 싶다며 한번 다녀와 달라고 했던 타로의 말이 생각난 요스케는 정처 없이 길을 나선다.
이 집을 찾아가면서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 집에 살고 있는 여자 사에코(시미즈 미사)를 만나면서 삭막했던 영화는 서서히 흥미를 유발한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엮이면서 요스케는 우연히 사에코와 정사를 벌이는데 글쎄 그녀가 절정에 오르는 순간 그녀의 성기에서 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닌가. 사에코는 몸에 물이 차는 알 수 없는 증세를 가지고 있었고 어떻게든 물을 밖으로 배출해야 하는 묘한 신체구조를 가진 여인이었던 것. 때문에 두 사람이 벌이는 정사는 침을 삼키며 은밀히 엿보기보다는 한바탕 폭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그녀가 배출한 물이 붉은 다리 아래로 흘러가고 그때마다 고기들과 갈매기들이 몰려드는 현상이 벌어진다. 이쯤 되면 그녀가 배출하는 물은 생명의 원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염된 세상을 정화시킬 청정원이라고 할까. 인간의 욕망과 성, 자연의 섭리와 근원에 대한 시선이 겹쳐진다.
다소 비현실적이고 판타지가 가득한 동화 같은 이야기이지만 인간을 바라보는 감독만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매일같이 한 남자를 기다리는 할머니, 기다리는 남자가 있다는 걸 알고 마음에 있으면서도 할머니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강둑에 앉아 낚시하는 할아버지들, 그리고 마라톤 연습중인 외국인 선수와 요스케를 받아준 어부 등 주변인물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영화의 배경이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이라는 설정이 갖는 의미는 중요하다. 바다 생물과 강에서 사는 물고기가 공존할 수 있는 곳 그것은 곧 성분이 다른 다양한 인물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요스케와 사에코의 만남은 별 다른 희망 없이 이발소를 운영하던 남자가 여자를 만나면서 삶의 활력을 되찾았던 감독의 전작 [우나기]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또 다른 색으로 변주했다는 느낌마저 든다. 요스케를 만난 후 사에코는 도쿄로 돌아가지 않고 이 어촌마을에 어부로 정착하며 그동안의 삶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충격적인 물세례가 늘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약간은 가공된 인간을 벗어내고 가장 근원적인 직업이라 할 수 있는 어부로 회귀하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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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의에 빠진 중년 남자와 특이한 신체적 특징을 가진 여자의 사랑이야기 였던 것이다. 괜히 무게를 두고 이 영화를 보기보다는 그냥 따뜻한 사랑이야기를 지켜보는 기분으로 보는 게 좋다. 또 달리 보자면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에 기댄 영화라 할 수 있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영화의 여주인공들이 대부분 그렇듯 사에코 역시 성과 사랑에 있어 적극적인 여성으로 자신의 몸에 물이 차면 빨리 달려오라고 신호를 보내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뭔가 다른 게 숨겨져 있다는 걸 안 사내들은 어떻게든 그녀를 한번 경험하러 달려든다. 인간의 성적 욕망을 최대한 건전하게 표현하고 있는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기에서 물을 뿜어내는 여성이라는 포르노 적 상상력 즉 남성적 판타지임을 부인할 수 없다. 현실이라면 처자식 내 팽개치고 대책 없이 놀아나는 가장으로서 도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중년의 남자가 아찔한 성적 경험을 통해 갑갑한 현실에서 탈출하는 쾌감을 이끌어냄으로써 은근슬쩍 함께 웃고 동조했던 관객들을 공범으로 합류시킨다.
이미 [우나기]에서 손발을 맞췄던 야쿠쇼 코지와 시미즈 미사는 다시 한번 우리에게 사랑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힘을 주는지 일깨워준다. 물을 뿜는 여인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연기한 시미즈 미사는 촬영당시 임신 5개월이라는 신체적 특징을 감추기 위해 특히 의상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부탁하네’라는 단 한마디 때문에 출연할 수밖에 없었다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과연 진정한 보물은 무엇일까? 영화는 바로 그 보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고 보면 야스케는 보물지도를 들고 무작정 집을 나섰던 신밧드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나저나 타로는 어찌하여 이미 가정을 이루고 있는 요스케에게 그 보물을 찾아보라고 했던 것인지 그 노인네의 얄궂은 심사가 궁금하다.
결말에 와서야 이 영화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마 이건 그냥 단순히 사랑영화라고 하는 감독의 모습이 타로와 겹쳐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인간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는 바이다.
●관전포인트
뭐니뭐니 해도 이 영화의 최고 압권은 바로 섹스 신이다. 섹스 중간에 하늘로 솟구치는 물보라. 어디 상상이나 가는가.
그리고 중심 인물만 보지말고 주변인물들의 배치도 세세히 지켜보면 내 주변 사람들이 함부로 배치된 사람들이 아닌 것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