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니 ‘봄’이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따뜻해진 날씨는 물론이고 사람들의 마음 역시 겨울을 저만치 밀어낸 지 오래인 듯 하다. 벌써 반팔족이 등장할 만큼 달라진 날씨는 아직은 조금 때 이른 감이 있지만 덥고 습해지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서늘한 공포영화들을 떠올리게 하고 조금 많이 이른 공포영화인 <고티카> 역시 올 봄 등골을 오싹하게 할 공포를 약속한다.
유능하고 아름다운 미란다(할 베리)는 감호소에서 범죄자의 정신상담을 전담하는 정신과 전문의.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밤, 다리 위에 갑자기 나타난 소녀를 만난 뒤 의식을 잃은 그녀는 3일 뒤 자신이 근무하던 감호소의 차가운 독방에서 깨어나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을 처참하게 살해한 용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잃어버린 3일간의 기억과 “NOT ALONE”이라는 의문의 단서…. ‘유일한 단서는 죽음을 부르고, 기억하지 못하는 모든 것은 공포가 된다!’는 말처럼 미란다는 이제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감호소에서 남편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채 이유조차 알 수 없는 공포와 직면하게 된다.
영화 <고티카>의 음악은 <할로윈 H2O> <케이블 가이>등의 스릴러 영화 음악으로 유명한 존 오트만(John Ottman)이 맡았다. 수많은 공포영화들의 음악감독이자 편집감독, 그리고 <캠퍼스 레전드>를 직접 감독한 다재다능한 능력으로 잘 알려진 존 오트만은 할리우드에서 독특한 자신만의 색깔을 창조해 내는 음악감독으로 <유주얼 서스펙트>를 통해 영국 아카데미 어워드에서 편집상을 수상하였다. <엑스맨 2>에서 음악과 편집을 맡아 에이미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한 그는 <고티카>에서도 공포영화의 음악에 대한 숙련된 감각을 드러낸다.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음산한 분위기를 한껏 강조한 프롤로그가 지나면 공포의 히로인 미란다의 테마곡 ‘Miranda's Theme’ 이 흐른다. 차분하면서도 무거운 관악기 중심의 멜로디에 피아노 선율이 나지막하게 흐르는 ‘Miranda's Theme’ 은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지는 곡으로 그 누구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공포의 한 가운데 놓인 그녀의 불행을 암시하는 듯 한 곡. ‘Finale Escape’와 ‘First Escape’에서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감호소를 탈출하려는 미란다의 긴박감과 공포가 귀를 찢는 금속음과 함께 관객들을 극도의 긴장감 속으로 밀어 넣는다. 단체샤워장에서 죽은 소녀를 보게 된 미란다의 공포는 ‘The Shower’에서 낮은 변주곡으로 시작해 점차 빨라지다가 자극적이고 소름끼치는 금속성의 사운드로 표현된다.
<고티카>의 음악은 공포영화의 주요한 요소인 긴장감을 극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극단적으로 낮아졌다가 광폭하게 커지는 음은 말 그대로 ‘소리의 공포’를 확실하게 느끼게 한다. 그러나 총 15곡이나 되는 스코어들은 전형적인 공포영화의 음악, 그 이상의 소리를 들려주지는 않는다. 내용보다는 사운드의 힘에 의존한 공포는 스코어의 매력을 감소시키고 단지 공포의 장치로만 이용된 음악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