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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랑을 꿈꾸십니까?
순애보 | 2000년 12월 11일 월요일 | 모니터기자 - 은현정 이메일

[순애보] 그리고 [접속], [동감], [시월애]...

이 네 영화의 공통점은? 우선은 멜로 영화라는 점, 당대의 톱 스타들을 기용했었다는 점, 나름대로 화려한 영상미와 깔끔한 편집을 선 보였다는 점 등등등... 공통점을 찾아내자면 더 많이 나올 것 같지만, 아무래도 "얼굴도 서로 알지 못 하는 남녀간의 사랑"이 그 주된 스토리라는 것이 가장 큰 공통점이겠죠.

물론 비슷비슷한 이 네 영화 속에서도 미묘한 차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죠. [접속]이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고 있는 남녀, [동감]과 [시월애]가 각각 20년과 2년의 시간 차이가 있는 남녀의 사랑([동감]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씀 하시지 않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을 그렸다면, [순애보]의 특이한 점이라면 아마 서울과 동경이라는 다른 공간에 살아가고 있는 남녀의 사랑을 그렸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건 또 [순애보]가 본격적인 한 일 합작영화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가장 다른 점은 그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화려한 청춘남녀의 트렌디 드라마적인 성격이 짙었던 다른 세 편의 영화들에 비해 [순애보]는 좀 더 일상성에 집착하는 영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사]에서 아름다운 화면을 선보였던 이재용 감독과 [유령] [시월애] [반칙왕]등에서 유려한 영상미를 선보인 홍경표 촬영감독이 그 특유의 영상미로 생활들을 세밀하고도 정교하게 스케치하고 있기에 그 일상성들이 더욱 부각되어 나타납니다. 그리고 우인역의 배우 이정재씨의 호연 또한 이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데 한 몫을 차지합니다. 그처럼 멋진 배우라면 소화해내기 힘들었을 평범하다 못해 못난 우인역을 몸 바쳐서 열연하시더군요. 구토하는 장면은 실제로 이정재씨는 물을 3리터 이상이나 마시고 찍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화가 시작하는 곳은 너무나도 지루한 일상의 한 가운데입니다. 그건 한국에 살고 있는 동사무소직원 우인(이정재 분)이건, 일본의 재수생 아야(다치바나 미사토분)건 마찬가지입니다. 정말로 지루하게 반복되는 동사무소의 업무, 그리고 자꾸만 딴 생각을 해야만 버텨낼 수 있는 지루한 학원의 수업... 일상사에 염증을 느끼다 못해 우인은 피가 줄줄 흘러도 알지 못할 정도로 손가락의 감각이 마비되어 버리고 아야는 이제 날짜변경선 위에서의 신비로운 자살을 꿈 꿉니다.

일상이 이렇게도 자세히 묘사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우리와 다른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 언제 어디서나 보이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줘서 관객에게 친근함을 느끼게 하려는 것, 그래서 그들의 외로움에 대해 우리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의 근원에는 바로 가족과의 단절이라는 문제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돌아가서 편히 쉴 수 있는, 따뜻한 가정이 없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시나리오는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인은 덩그마니 큰 집에서 아무도 없이 외롭게 살고 있고 아야는 왠지 모르게 겉돌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 만화책과 포르노 사이트에만 빠져 살고 있는 남동생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우인은 밤마다 포르노 사이트를 뒤지는 것도 외로워서일테니, 아야의 남동생도 외로웠다는 뜻이겠죠? 그렇게 모두들... 참으로 외롭습니다.

외로운 그들에게는 대화를 나누고 소통하고 싶은 사람들을 찾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 미아(김민희 분)에게 거절당하고 마는 우인에게 그런 소통은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포르노 사이트를 뒤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혐오감이 생겨나기 보다는 안타까움으로 다가옵니다.

감독은 아마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젊은이나, 일본의 젊은이나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공감대가 형성된다.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공감대가..." 그래서 익명과 불신이 판을 치는 인터넷에서 만났고 국적도 나이도 성별도 다른 그들에게 현대를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겠지요.

네, 그래서 같은 외로움 속에서 같은 일상의 지루함 속에서 살고 있는 우인과 아야는 만날 인연이었다는 점이 영화 마지막으로 가면 강조되기 시작합니다. 우인이 보고 있는 TV의 인터뷰 속에 아야가 나오고, 아야의 수학여행 사진 속에 우인이 나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끝에 그들이 만나기 위한 '복선'입니다.

그들은 만나기 위해서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시도를 시작합니다. 우인은 뽑아두었던 전화코드를 꼽고 자동응답기를 설치하고 아야는 그제서야 자살을 포기합니다. 우인이 지하철에서 손가락을 부딪혀서 감각이 찾아오는 그 순간, 아야를 만나게 된다는 것은 그 만남이 얼마나 필요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무더운 7월을 떠나 12월의 달력 사진에서 보이는 알래스카, 그곳에서 그들은 결국 만납게 됩니다.

공감에서 소통으로, 그리고 소통에서 사랑으로... [순애보]가 말하고 있는 순백처럼 아름다운 사랑은 바로 그런 공감대에서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 [접속]에서 나왔던 만날 사람은 꼭 만난다는 말, 그 말 처럼요.

그렇지만 그들의 만남은 너무나 갑작스럽습니다. 관객들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요. 일상에서 숨 쉬던 그들은 갑자기 환상 속으로 사라집니다. 마치 '순애보'라는 단어가 현실에서는 접할 수 없는 말이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영화의 후반부는 혼란스럽고, 빠르고 이해하기 힘듭니다. 아야가 갑작스레 서울의 지하철에 등장하는 이유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를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까닭은, 끝까지 한석규와 심은하가 만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비극적일수도 있는 그 지점에서 현실과 일상에 대한 깊은 이해가 나오고 그 곳에서 감동이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은 그렇게 쉽게 만날 수 있는 영화에서처럼 몽환적이고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순애보]가 그리 큰 파장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결말에 대해서는 보는 관객마다 판단이 틀리겠지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는 이들의 몫일테니 말입니다. 화 속에서 필요한 것이 판타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의 결말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을테고, 저처럼 현실에 밀착한 묘사에 좀 더 점수를 많이 주시는 분이라면 영화의 전반부가 더 아름답겠지요.

만날 사람은 꼭 만난다는 말을 말을 믿으시는 당신에게는 정말 사랑스러운 영화, 믿지 않는 당신에는 정말 가증스러운 영화, 그런 영화가 바로 [순애보]입니다.

2 )
ejin4rang
꿈을 꾸다   
2008-11-10 09:12
rudesunny
기대됩니다~   
2008-01-14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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