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론토 영화제 관객상,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이라는 삐까뻔쩍한 상장 목록이 <하나비>의 기타노 다케시라는 점을 상기시켜 주자 설마 완벽하게 오락영화로 만들었을라구 하는 내 의심이 확신으로 변해갈 때쯤, 어이없게도 스크린 안의 맹인 검객 자토이치는 “나 오락 영화 주인공 맞아!”를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어라 정말 <하나비>, <소나티네>등으로 심오한 주제와 요상 야릇한 폭력 미학이라는 칭송으로, 하물며 <돌스>의 사랑 이야기도 사랑의 폭력성을 그렸다는 평을 받지 않았는가 말이다, “내 영화 심각”이라고 자랑 질 하던 그가 “너를 위해 준비했어”하며 관객과의 화해(?)를 모색하는 영화를 들고 오다니 처음에는 적응하기 꽤나 힘들더이다.
|
이 눈물겨운 노력 덕에 맹인검객이 보여주는 검소한 칼부림에 피가 솟구치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관객의 입에서는 휘파람 소리와 오르가즘을 느낀 듯한 신음이 절로 나오게 된다. 기타노 다케시가 영화 속에 그리던 무거운 주제는 맹인검객의 깃털 같은 가벼운 칼 솜씨에 그새 사라져버리면서 말이다.
맹인검객 자토이치는 원작과는 다르게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안에서 재구성되었다. 온전히 감독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맹인검객은 원작과는 틀리게 그리 사교적이지 않은 성격과 선한 사람을 위해 칼을 뽑아들지 않고 악당이기에 칼을 휘두르는 영웅의 모습보다는 강한 자만이 보이는 오만이 가득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신들린 육감으로 붉은 빛의 검을 이용하여 적의 몸을 베는 장면에서는 정교함은 느껴지지만 폭력미학이라는 그만의 영화적 철학은 보이지 않는다. 폭력과 붉은 피 위에 관객은 시원하다와 같은 느낌으로 카타르시스만 느끼는 것을 본다면 누군가의 말처럼 영화로 득도한 자가 관객에게 선사하는 선물 같은 영화가 <자토이치>이기에 하는 소리다.
보통의 사무라이 영화가 가지는 기본 플롯을 고스란히 가지고 오면서도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는 현대적인 음악과 설정을 부가하여 꽤 눈요기 거리가 되는 영화를 만들었다. 금발머리 맹인검객인 것도 그렇고 농부들이 밭을 일구는 장면은 현대적인 타악기 공연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가장 독특하게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맹인 검객 자토이지가 선보이는 심플한 칼 솜씨이다. 어정쩡한 걸음걸이로 일본 슬리퍼를 신고 걸어가다 휙 하고 검을 뽑아들고 나서 단 세 합을 넘기지 않고 적의 사지를 난도질하는 자토이치의 검술은 진짜 “쥑인다”는 탄성이 절로 나오게끔 만드니 말이다.
복수로 엉켜있는 복잡한 이야기 구도에서 모든 것을 평정하는 듯한 요란하지 않은 맹인검객의 칼부림은 그러기에 관객에게는 스펙터클로 무장한 어떠한 액션 씬보다 장쾌하게 비친다. 카메라 뒤에 서서 요렇게 하면 재미있을까? 저렇게 하면 잼날까 하면서 머리를 굴리면서 자기 자신도 즐기고 있을 감독의 얼굴이 생각나니 이 앙큼한 맹인 검객의 뒷모습이 심하게 코믹스럽게 묘사된 캐릭터라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자토이치라는 인물이 영화 안에서는 그리 자주 웃지 않지만 의도된 즐거움을 위해 설정된 캐릭터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면 이제 완벽하게 영화를 즐길 준비가 갖추어진 것이다. 여러 가지 현대적인 볼거리를 영화 안에 추가했다고 하지만 온전히 극의 재미를 주는 것은 이 떠돌이 맹인 검객의 몫이다.
달리 말하면 감독 기타노 다케시의 몫이라는 소리이다. 안마사이기도 한 자토이치가 선사하는 피의 향연은 절제된 듯 하면서도 잔혹하게 보여지는 이유는 날이 선한 칼날의 섬뜩함을 기타노 다케시가 극대화 시켜 표현했기 때문이다.
사무라이 영화들이 통속적으로 사용하던 검술과는 달리 오로지 칼끝이 가장 예리하게 보이는 화면으로 짜여진 <자토이치>는 생각하지 말고 잔혹함을 즐기라는 감독의 의도가 선명하게 묘사된 장면이기도 한 것이다.
|
하토리(아사노 타다노부)와의 대결 씬에서는 자토이치의 검술이 왜 그리 단순한가에 대한 이유가 설명된다. 자토이치는 일단 머리 속에서 적을 베는 모든 방법을 구사하고 나서 최종 결론만 그의 붉은 칼로 자행한다.
상상의 여지라고 표현은 했지만 영화 안에서 사색의 유희 대신 몸의 유희를 그려낸 그의 달라진 영화 스타일이 그렇다고 해서 폭력 미학의 심오한 어떠한 뜻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반증하지는 못한다.
감독, 주연까지 혼자 북 치고 장구 친 기타노 다케시가 만든 영화 <자토이치>는 그의 진짜 직업은 코미디언이라는 것을 관객에게 상기시켜 주는 영화다. 기타노 다케시가 변했다는 평은 틀린 말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이런 오락영화를 만들고 싶어했을 지도 모른다. 그를 그저 웃기는 코미디언으로 보는 대중의 눈이 싫어서 여태 그 자신도 웃지 않는 영화를 만들었을 뿐 그는 상업영화의 생리를 너무 잘 알고 있는 코미디언 겸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 일뿐이다.
그가 관객과의 조우를 위해 만든 <자토이치>이기 보다는 자기 혼자 일단 즐기고 싶은 마음에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필모그래피가 너무 버거워서 잠시 짐을 내려놓고 쉬는 나그네로 보였기 때문이다.
|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어느 영화 속 대사처럼 코미디언 기타로 다케시가 어떻게 변하겠냐 말이다.
<하나비>로 거장 감독으로 이름 높은 기타노 다케시가 만든 영화가 아니라 코미디의 대가가 만든 비트 다케시의 <자토이치>를 이젠 편안히 의자에 등을 기대고 감상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