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영화 속의 세 가지 코드
사랑, 고통, 편린을 담은 영화들
1. 사랑
'올 여름 나는 케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 감정은 ‘케이가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내가 케이의 가장 가까운 사람인 것 같다’는 말로 밖에 표현 할 수 없을 것 같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중]
나는 그 어떤 사랑의 표현 중 고흐의 말을 가장 좋아한다. 가장 가깝다는 말 외에 뭐가 더 필요하지.
<오꼬게(Okoge)> 일본 게이 영화, 감독 다케히로 나카지마, 1992
'하루에 한 번씩 전화해 줄래? 난 네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어'
이들의 정사씬은 복합적이다. 교성 속에 눈물이 있고 피 속에 억압이 흐르고, 발버둥 속에 억압이 보여지고, 그림 들 속에서는 피 묻은 자유가 있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정사는 슬프고도 황홀하다. 애인의 칼에 찔려 사방에 빨간 피를 줄줄 흘리고 쓰러진 프리다 칼로의 <몇 개의 작은 상처들>이란 그림이 왜 들어갔는지 저절로 알게 된다.
사랑은 고흐의 말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내미는 칼날이 아닐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가슴을 스스로 찌르는 행위이며, 다른 사람이 아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내민 칼날이기에 고통스럽지만 황홀한 눈빛을 하는 게 아닐까. 이 영화의 주인공 ‘고우’를 보면 생각하게 된다.
<뷰티풀 씽(Beautiful Thing)> 영국 게이영화, 감독 해티 맥도널드, 1996
'너 혀를 넣어 키스해 본 적이 있어?'
'이걸 봐. 난 추해! 그들이 날 추하게 만들어.'
'넌 추하지 않아. 제이미. 네가 퀴어라 생각하든 아니든 그딴 건 중요한 게 아냐'
플라톤은 '에로스'는 몸과 아름다움의 관계 속에 들어있다고 했다. 에로스 중에 영혼의 아름다움은 섹슈얼리티의 핵이다. 에로틱한 욕망과 꼴리는 상상, 늘어지는 안온함, 순수한 충동을 넘어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은 서로의 상처를 손길로 나눈다. 따듯한 관능미이다. 그래서 영화는 전혀 관능적이지 않으면서 관능적이다.
2. 게이 영화 속에 고통에 관한 코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아직도 내 안에는 평온함, 순수한 조화, 그리고 음악이 존재한다. 나는 이것을 가장 가난한 초가집의 가장 지저분한 구석에서 발견한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 중]
<뷰티풀 씽(Beautiful Thing)>영국 게이영화, 감독 해티 맥도널드, 1996
'이 빼빼마른 개새꺄~~ '퍽버버버버 퍽 (엄마가 아들을 두들겨 패며)
'엄마! 나 열라 어려. 그..근데..이잉이잉 (몸과 맘이 다 아픈 아들이 목이 메어 징징 짜다가)
어..어엄마한테 말 못할 것두 있단 말야. 엄마가 날 알아?'
' 이 넘아, 넌 날 죄다 알어? 난..네 그래도 네 엄마란 말야.
(너가 게이란 거 다 알아 이 불쌍한 넘아~)'
'고우를 임신했을 때, 칼로 손을 비었거든. 그때 아무래두 그 게이 박테리아가 들어간 게 아닐까'
박테리아 타령을 하던 불쌍한 '고우 엄마'는 아들의 커밍아웃 후 우울증으로 돌아가신다. '고우' 엄마의 편견은 '제이미' 엄마가 줘 패는 것보다 '고우'에게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편견'이란 합당한 근거 없이 상대를 괴롭히는 소리 없는 고문이다. 편견은 차별을 가져오고 상대의 인권을 유린한다.
<겟 리얼(Get real)>, 영국 하이틴 게이 로맨스 영화, 감독 사이먼 쇼어, 1998
'이건 단지 사랑이야. 니들두 알자나 근데 대체 뭘 두려워하지? 나한테 제발 말해줄래?'
스트레이트(Straight: 동성애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두려워하는 건 에이즈일까. 혹여 에이즈에 감염될까봐? 정말은 힘이 없는 약한 이들이니까 철저히 밟아버리고 마는 못난 속내를 들킬까봐. 나와 다른데 나보다 힘이 강했다면 그들은 밟아버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크라잉 게임>, 영국 로맨스, 사회성, 게이 영화, 감독 닐 조단, 1992
'퍽!' (싸대기를 갈기는 소리)
'웩!' (화장실서 토하는 소리)
여기서 '퍽!'은?
주인공 '퍼거스'가 드랙 퀸(Drag-queen : 여장 남자)인 '딜'과 섹스하려다가 '딜'의 페니스를 보고.
여기서 '웩!'은?
'딜'의 페니스를 본 '퍼거스'가 화장실로 달려가 역거워서 우우웩.
영화 <오코게>에서 멋진 대사가 나온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대사다 드랙 퀸 쇼걸이 맥주잔에 싼 오줌을 꿀꺽 들이 킬 때 옆에서 묻는다.
'맛이 어때?'
'짜. 앤이 떠난 뒤에 흘린 내 눈물처럼'
<크라잉 게임>에서 주인공 남자는 되묻는다.
어떻게 여장 남자인 니가 나를 사랑하냐고.
그의 고통스런 편견 앞에서 딜은 꿋꿋이 말한다.
‘나 어릴 때는 얼라처럼 생각했고 커서는 얼라같은 유치한 생각을 집어던졌지. 난 더 이상 얼라가 아냐.’
내가 힘들때 중얼거리면 할 이틀은 약발이 서는 멋진 말이다.
3. 편린들과 게이 영화 목록 소개
위에 소개된 수작인 영화들 외에 게이 영화판에도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이
이 많은 영화 추천이면 뭐하나.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비디오가 대부분이니 말이다. 영화제를 가면 좋지만 온라인 레즈, 게이 영화 채널인 팝콘큐(PopcornQ)채널처럼 다운로드하여 위의 영화들을 감상하거나 동성애 영화제 정보와 소식들을 접할 수 있는 사이트들도 있다.
(http://www.planetout.com/pno/popcornq/cinema/splash.html)
가끔 사는 게 힘들면 습관처럼 호주의 스티븐 엘리엇 감독의 <프리실라>를 본다. '프리실라'란 고물 버스가 사막길을 내지르고 드랙퀸 '마치'가 버스 꼭대기의 의자에 앉아선 길고 긴 황금빛 옷자락을 사막 위로 펄럭인다. 그녀는 우아하고 도도한 여왕같다. 그녀와 함께 삭막한 사막 위로 전율적인 오페라가 퍼져나갈 때는 마치 메마른 인생에도 전율이 퍼져 흐르는 것 같다.
편견과 차별의 칼날을 맞고 부러진 날개라도 새는 곧추 세워 날아야 한다. 새는 날 때만이 자유롭다. 사람은 누구나 다르다. 그리고 다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다른 것을 부정하다 못해 손가락질 한다면 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