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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뒤엔 그가 있었다
원화평, 경배 받아 마땅한 ‘마스터’ | 2003년 5월 28일 수요일 | 버디 이메일

향수가 있다. 지난날의 고달픔이 지금의 평화로움을 자리케 했으니, 그 지난날이 어찌 진심어리고 담담하게 생각되지 않을까?


7,80년대, 아니 그 한참 이전부터도 ‘극장 나들이’는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 호사스럽고 행복한 여흥이었다. 게다가 매우 재미난 영화까지 만나게 된다면 어찌 기쁨이 말로 설명될까? 그 당시 이소룡과 성룡이라는 불세출의 두 영웅이 동양인에게 불어넣어 준 자신감은 타란티노든, 워쇼스키든 그 어떤 외래인들도 감히 짐작할 수 없는 크기의 당당함이었다.

오늘날, 예전의 그 낯설지 않은 향수의 향기에 다시 취할 수 있으되, 이젠 온 세상 구석구석 어느 곳 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을 만큼 크고 강렬하다. 굳이 신드롬이니 문화현상이니 하는 현란한 조어를 거들먹대지 않아도 연작영화 <매트릭스>가 세상에 던진 반향은 어마어마한 것이더라. 영화는 수많은 철학과 더 많은 볼거리를 이야기하지만, 사람들이 이 영화를 찾게 된 분명한 이유 중 하나는 역시 ‘상상을 넘어선 인간의 움직임’ 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쉽고도 아름답다.

비록 키아누 리브스 나 캐리 앤 모스가, 또 주윤발이나 양자경이 보여주던 동작 모두가 인간의 자연 동작이 아니었고, 또 지난 시절 풍미한 홍키들에겐 주구장창 보아왔던 ‘반복’이지만, 그럼에도 이것들은 인간의 몸을 표현하는 과정 속에서 나온 아름다움이라는 걸 이야기 하고 싶다. 인간에게 가장 아름다운 건, 역시 인간 스스로에게서 나온 것들 중에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표현은 이전보다 더더욱 빠르고 강하고 아름다워졌더라.

‘매트릭스 3부작’과 <와호장룡>의 무술감독 원화평(Yuen, Woo Ping), 1945년생이니 이제 이순을 눈앞에 두고 있는 나이지만, 지금 그가 이루어 놓은 성과들은 그가 계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글로벌 프로젝트’ 속에선 겨우 한 계단 올라선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싶다.

원화평을 이야기하자면 그 이전에 이야기해야 할 사람이 있다. 80년대 초반부터 사라진 영웅 이소룡의 공허감을 채우면서 나타난 장난꾸러기 황비홍, 성룡(<취권>에서 성룡의 캐릭터가 ‘황비홍’이다.)은 아직 배울 게 많았다. 물론 실제 성룡은 당시에도 애송이는 아니었다. 벌써 그 이전부터 홍콩영화계의 발을 담그고 있었고, 잔뼈도 꽤나 굵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그를 ‘포스트 이소룡’ 중의 한 명으로 꼽던 잡지도 있었다. 물론 그때까지는 그저 수많은 이소룡의 짝퉁 후보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러던 그가, 벙거지모자에 빨간코, 동그란 얼굴엔 웃음이 가득한, 주정뱅이 거지할아버지 원소전(Yuen, Sie Tien )을 만났다. 소화자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훨씬 친숙했던 그 노인, 알고 보니 고수도 보통고수가 아니더라. 더구나 그의 무술훈련방식은, 비록 엄살쟁이 성룡이 죽는다고 뒹굴어도, 보는 사람들은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즐거워할 만큼 기발하고 특이하고 재미있었다.

이야기 구성상으론 황비홍의 아버지인 황기영도 고수였으며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지만, 자기 자식 교육만은 어쩌지 못했다. 원래가 그런가 보다. 그렇게 무르익지 않은 철부지 황비홍, 아니 성룡은 소화자, 아니 원소전을 통해 위대함으로 거듭났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원씨 가문’을 통해 거듭난다.

원소전은 이미 쇼 브라더스가 홍콩영화계의 지존으로 군림하기 전부터 영화판에서 무술연기를 지도하던 무술인이었다. 비록 엔딩 크리딧에 제대로 이름도 올리지 못했지만, 일천한 홍콩영화계의 주춧돌 같은 인물이었다. 그가 이름을 알린 건, 평생의 업으로 삼던 무술감독으로서가 아니라, 배우로 출연하던 영화 <사형도수>와 <취권>에서이다.

<사형도수>나 <취권>은 원소전과 그의 아들들인 원화평, 원상인, 원신의 등이 모두 힘을 보태 찍은, 혹자의 표현을 빌리면, 가족영화 같은 작품이었다. 이후, 원소전의 늘그막 명성은 연이은 작품출연과 무술지도로 과로를 불렀고, 그의 운명까지 재촉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다. (그 중에는, 역시 '소화자' 캐릭터로 출연한 홍금보의 출세작 <인자무적>도 있었다.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 원소전으로부터 무술을 익힌 원화평 역시 쇼브라더스 시절부터 배우 겸 무술 디렉터, 스턴트맨으로 활약했었지만, 아버지보단 훨씬 운이 좋았다. 감독 데뷔작격인 <사형도수>와 <취권>은 자신의 명성을 높였을 뿐 아니라, 영화사 골든 하베스트의 20년 탄탄대로를 열어준다.

그 후로도 <황비홍2-남아당자강(무술감독)> <태극권(감독)>. 그리고 견자단이란 걸출한 무술인을 발탁해서 찍은 <특경도룡>, <직격증인> 등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역시,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거대하고 야심찬 계획까지 꿈꾸는 세계적인 ‘액션 마스터’로 이름을 높이게 된 건 <와호장룡>과 ‘매트릭스 3부작’이라고 하겠다.

지금의 그가 얻게 된 명성은, 너무도 당연히 지난 시절의 그를 비롯한 수많은 홍콩액션디렉터들의 당당하고 타협 없던 장인정신의 결과다. 그리고 그건 소모적인 자기복제로 재능을 낭비하고 쇠락해가던 홍콩영화의 마지막 남은 결실이다.

기본적으로 할리우드와 홍콩의 신체액션은 속도감에서 비교가 안 된다. 할리우드 B급 시장에선 이소룡 이후에도 동양인을 데려다 타이틀 롤을 맡긴 적이 적지 않았다. 그런 경우조차 동양인 배우에게 요구된 건, 느려터진 미국식 속도감이었다. 기본부터 엇나간 것이다.


<매트릭스>의 키아누 리브스를 기억해보라. 나름대로 무협영화에 안목이 있는 이가 유심히 본다면 어설픈 동작에 웃음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평생 발차기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그를 그렇게 올려놓을 수 있는 기술은 그냥 만들어 진 게 아니다.

이런 예는 멀리 ‘호소자(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언급되는)’까지도 갈 것 없다. 원화평의 동생, 원상인(Yuen, Cheung Yan)은 카메론 디아즈의 <미녀삼총사>에서 무술감독을 맡아, 그런대로 각 잡힌 미녀 파이터들을 만들어 냈다. (원상인은 무술감독뿐 아니라 이연걸의 <태극권> 등 많은 영화에 얼굴을 내비추는데, <미녀삼총사>에서도 첫 비행기 안 장면에서 여성에게 수작을 걸고 있던 엑스트라로 나온다.) 게다가 그 작품에서 악당으로 나오는 말라깽이가 <백 투 더 퓨처>에서 마티(마이클 J 폭스 분)의 아버지인 조지 맥프라이 역을 맡았던 크리스핀 글러버라는 것까지 알게 되면, 그처럼 액션영화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인물마저 무술고수처럼 빚어내는 홍콩 액션 디렉터들의 능력은 실로 예술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모든 힘든 작업 속 시행착오를 고스란히 축적하는 노력이 있었기에, 홍콩의 액션 디렉터들이나 액션 배우들이 할리우드에서도 나름의 입지를 구축하는 것이고, 그 정점에 원화평이 있는 것이다. 지금 그를 ‘마스터’라 부르는 건, 비록 호구지책이었지만, 목숨을 걸고 그들의 길을 걸었던 홍콩액션 영화인들에 대한 찬사라 하겠다. 그래서 그들은 예술가들이다.

다시 원화평을 보자. 홍콩영화시장은 분명 할리우드 판에 비하자면 우물 안이다. 그러나 비교할 수 없이 큰 자리에서도 지금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작품들을 매만지고 있다.

영화는 예술이며 기술이다. 영화는 예술인의 미감이 세상에 표출되는 형식이자, 또한 테크닉의 결과다. 그러나 작가 혼자만이 소아적인 탐욕을 부려 자신의 재능을 감추거나, 도제적인 일인세습 시스템만이 홍콩의 영화판에 존재했다면 현재 세계영화시장을 뒤흔드는 <매트릭스>의 화려한 디지털액션은 애당초 꿈꾸지 못했을 것이다.

착실히 축적되고 전수되고 변화, 발전되고 있는 이 예술적 테크닉은 앞으로, 할리우드뿐 아니라 그 외의 지역으로도 역시 똑같이 전파되고 카피될 것이다. 그 속에서도 ‘마스터 원화평’이 계속 ‘마스터’다운 도약과 발전을 보여줄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지금까지 쌓아온 그의 빛나는 작업들만으로 그는 ‘마스터’라 경배 받아 마땅하다.

8 )
kpop20
기사 꽤 길지만 잘 봤ㅇ어요   
2007-05-24 15:42
bjmaximus
원화평 할리우드에서 직접 연출까지 한 액션 영화를 만들었으면 하네요.   
2007-02-27 13:15
js7keien
원화평 감독에 대한 고찰~   
2006-10-08 22:54
soaring2
아 저분이 계셨기에 액션이 멋있었군요.   
2005-02-13 16:33
moomsh
매트릭스 강츄..정말 재밌음...시리즈다보세요..   
2005-02-07 19:13
moomsh
황비홍시리즈 정말 다봤는데..또 하면 또봐여.ㅋㅋ   
2005-02-07 19:12
moomsh
와이어액션의 진수는 역시 홍콩영화죠..ㅋㅋ   
2005-02-07 19:12
cko27
매트릭스의 영상기법은 정말 영상을 한단계 더 미래로 끌어올렸 다고 생각.^^   
2005-02-0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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