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동안 한 여자만을 오매불망 기다려온 남자가 있다. 이런 친구가 자신과 막역한 사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에게 “너 똘아이니!”라고 하거나, 아니면 조용히 불러다 놓고 그러한 징한 순애보를 포기하도록 타이를 것이다. 그도저도 아니면 일편단심의 대상과 면접해 담판을 지라고 강권 하거나. 그만큼 지고지순한 이러한 미덕은 더 이상 치열한 속도전이 횡행하는 현시대에서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전설의 고향 풍의 케케묵은 정서로 잠식당해 매장당한 지 오래다.
상당히 동화스럽고 달콤할 것 같은 느낌의 ‘신비로운 로맨스’라는 슬로건을 달고 개봉한 <화성으로 간 사나이>는 전언한 바와 같이 사실은 쌍방향적인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한 남자의 지극히 일방통행적인 순진무구한 짝사랑에 관한 멜로영화다.
일단, 액션이나 SF 영화에서나 볼 법한 ‘화성’이라는 소재를 멜로 영화에 차용해 한 남자의 가련한 사랑과 서서히 잊혀져가고 오염돼가는 순수함의 이미지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결부시켜 예쁜 영상 안에 담으려고 한 영화의 시도 자체는 매우 참신하다. 하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데 있어 <화성으로 간 사나이>는 정반대로 신파적 분위기의 정서를 끌어들여오는 방법론을 취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후자 쪽에 너무 많은 심혈을 기울여 전해주고자 하는 의도와는 달리 엄한 지점으로 치닫는다. 이미 허구한 날 봐왔던 상투적인 이야기에 과도하게 기댄 나머지 너무 흘러 넘쳐, 보는 이들에게 버거움을 안겨준다는 사실이다. 진정으로 묘파해야 했을 소희와 승재의 내면과 심리 정황은 제대로 묘사하지 않은 채 말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왜 승재가 그다지도 자신을 퇴짜 놓으며 현실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소희에게 집착하는지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심지어는 하얀 눈밭에서 마냥 좋다며 착한 웃음을 한 없이 짓고 있는 저 친구가 어디가 모자란 건 아닌지 하는 의혹까지 품게 된다. 이러한 의구심은 엔딩 부분에 이르러 정점에 오른다. 과연, 그는 그녀를 위해 꼭 화성으로 향해야 하는 극단적인 행동을 감행해야 했는지 불가해함까지 일으키는 승재의 마지막 선택은, <복수는 나의 것>의 류처럼 섬뜩하게 보일 정도로 공허함을 촉발시킨다.
이처럼 생략과 은유가 빈번했기에 주인공의 심경변화가 마뜩찮게 느껴졌던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서 그래도 가장 심적으로 동화되는 장면은, 서울에서 만난 소희에게 딱지를 맞은 승재가 속이 상했는지 자신을 짝사랑하는 선미(박소현)에게 음식을 우적우적 먹다가 순간적으로 청혼하는 신이다. 갑작스러운 프로포즈에 좋으면서도 너무도 허망해 울면서 그에게 화딱지를 내는 선미와 아이러니 하지만 이 순간이 가장 인간적으로 보였던 승재의 이 장면이 유독 감정에 와 닿았던 이유는, 선미라는 인물이 일단 타 캐릭터에 비해 살아 있었기에 그렇다. 그리고 소희에게 바로 차인 후 주체하지도 못할 그런 말을 던졌기에, 즉 장면의 배치가 잘 이루어졌기에 구태의연함이 아닌 생짜의 감정 이입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영화는 위의 포스터처럼 해맑고 동화스런 이미지를 배경으로 한 그림엽서와 같은 영상을 ‘화성으로 간 사나이’라는 소인을 붙인 채 우리에게 보냈지만, 아마도 그에게 돌아갈 것은 ‘수취인불명’이라는 회신만이 아닐까 생각된다. 답장을 쓰기엔 너무도 할 말이 없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