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앤디(케이트 허드슨)가 칼럼니스트로 일하는 여성지 [Composure]에서 달라이 라마는 ‘리처드 기어랑 친한 승려’ 이 한 마디로 명료하게 정리된다. 한편 맥주와 스포츠 경기에 열광하는 광고회사 직원 벤자민(매튜 맥커너히)은 쌔끈한 차 대신 오토바이 뒤에 여자를 태우고 질주한다. 여자가 그이와의 로맨틱한 순간을 꿈꾸는 바로 그 순간에 남자는 담배 연기 자욱한 너구리 소굴에서 남자들끼리 치는 포커를 그리워한다. 그리하여 앤디가 벤자민을 ‘고문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농구장에 가는 대신 셀린 디옹 콘서트에 동참하기를 요구하는 것. 남자와 여자, 이렇게도 다른 두 생물이 진정 한 혹성 안에 공존하고 있단 말인가?
소위 트렌디 드라마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잘 나가는 직업의 남녀가 서로 다른 꿍꿍이로 다가서 티격대다 사랑에 빠지는, 저 골백번도 더 들은 사랑이야기. 그러나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의 재미는, 요컨대 키워드의 재미다. 척하면 통하는 전형적인 설정들을 십분 이용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주인공을 둘러싼 설정들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기 힘든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는 얘기.
그리하여 앤디는 그녀의 몰모트가 되어줄 희생양을 구하게 되는데, 재수 없게 여기 걸려든 남자가 앤디 못지 않게 재색에 남성미까지 겸비한 매튜 맥커너히다. 뭐 세상이란 게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다 보니 남자다움과 마초는 자주 한 끝 차이가 되긴 하지만, 그 정도 아쉬움을 접어두고 본다면 헌신적이고 인내심이 강한 데다 요리까지 잘하는 벤자민은 킹카 중의 킹카. 하여 남자의 페니스에 해괴한 애칭을 붙이고 멋대로 침입해 침대 위를 팬시점을 방불케 하는 인형소굴로 만들어 놓고, 농구 경기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골이 터지는 순간에 콜라를 다이어트 콜라(‘다이어트 코크’는 앞서 이야기한 ‘키워드’의 결정체다. 그 증거로 여성 대상의 패션지에서 [남자를 지겹게 하는 여자] 따위의 목록에는 언제나 “음식 앞에 놓고 매번 칼로리 계산하며 징징대는 여자” 항목이 늘 수위에 랭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로 바꿔오라고 닥달하는 등 갖은 수단으로 벤자민을 괴롭히던 앤디는 그만 본분을 잊고 남자의 매력에 흐물흐물 녹아들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이 남자의 인내심, 그냥 인내심이 아니었으니, 남자의 흑심은 또한 다른 곳에 있었다는 얘기. 눈독들이던 다이아몬드 광고를 따내기 위해 벤자민 또한 그녀를 두고 내기를 걸었던 거다. 하여 이 대책 없는 민폐덩어리 아가씨를 10일 안에 자신의 포로로 만들고 말겠다는 포부 아래 남자는 악전고투한다. 그야말로 선수와 선수, 악질과 악질이 만났으니 볼만한 게임이 될 것은 당연지사.
너무나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동료로부터 “너 같은 여자도 남자한테 차일 일이 있겠니?”라는 말을 들으며 어떻게 하면 좀 버림받아 볼까를 궁리하는 이 여자, 사랑에 전전긍긍하는 우리 같은 범인이 보기에는 시쳇말로 퍽 재수 없다. 그런가 하면 여자 갈아치기를 옷 갈아입듯 하는 남자의 시커먼 흑심은 또 어떤가. 그러나 어쨌든,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이 로맨틱 코미디가 줄 수 있는 재미를 극대화한 영화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동상이몽의 남녀가 벌이는 해프닝들은 진심으로 유쾌하며, 100만 불 짜리 미소로 스크린을 장식하는 케이트 허드슨은 그야말로 꽃처럼 화사하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진부하다면 진부한 설정을 십분 활용하며 서로에게 다가서는 과정을 다룬 탓에 앤디와 벤자민의 사랑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앤디가 벤자민의 가족을 만나게 되는 장면은 서로의 ‘진짜 좋은 점’을 알게 되는 결정적인 대목이면서도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재치가 다소 뭉툭해져 버리는 아쉬운 순간.
선수와 선수, 서로를 베팅하다. 그리고 티격대던 그들이 결국 서로의 매력에 굴복하고 사랑에 빠지게 되리라는 로맨틱 코미디적 추측은 물론 현실이 된다. 잃은 것은 아집이요 얻은 것은 사랑. 그리하여 양쪽 다 지고서도 둘 다 이겨버리는 윈-윈게임으로 마무리되니, 이 어찌 선수들이라 아니할 수 있단 말인가. <10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은 우리가 로맨틱 코미디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모든 이유들이 녹아들어 있는 ‘본격파’ 로맨틱 코미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