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간첩>은 제목을 통해서 스스로 많은 것을 고백하는 영화이다. 북한이라는 타자 아닌 타자를 영화 안으로 불러들여 현재 시점에서 그려냈던 <쉬리>나 <공동경비구역 JSA>와 비교하자면 더욱 그러하다. 두 영화는 제목만 보아서는 쉽사리 내용을 간파할 수 없는 반면에 <이중간첩>은 어느 정도 예단할 수 있는 판단의 근거를 제목이 부여해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가 낯설게 다가오는 이유는, 왜 하필 이 시점에서 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이중간첩에 대한 이야기를 사뭇 진지하게 풀어놓냐는 것이다. 시대적 분위기는 아랑곳 하지 않고.
<쉬리>와 <공동경비구역>이 신문사회면에 등장할 정도로 대박을 터트린 요인 중에는 사회적 분위기가 소소하게 나마 일조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그때처럼 환경적 조건들이 그다지 좋지 않다. 멀리 갈 거 없이 같은 동네의 상품들을 들춰봐도 알 수 있다. 섹스.코미디.멜로.액션.공포.스릴러가 판을 치는 시대라는 것. 허나, <이중간첩>은 이 같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하위장르를 정통드라마라는 틀로 끌어 안은 채 정반대로 승부를 걸고 있다. 어느덧 진지함이 조롱의 대상이 된 이 땅에서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대중과 만남을 가진다는 것은, 최소한 한 쪽이 일단은 곤혹스러움을 거쳐야 한다는 이치와 같다. 물론, 여차하면 쌍방이 다 패가망신하는 최악의 말로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불리한 입장을 탑재한 채 고공 비행에 나선 <이중간첩>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시선을 포획할 수 있는 이유는 확실한 안전 장치라 할 수 있는 이중간첩 한석규가 동승해 있기 때문이다.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자신이 위장 귀순한 북의 간첩이라는 사실을 확고한 신념아래 가슴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그에게, 드디어 북으로부터 지령이 떨어진다. 남한에 적을 두고 고정간첩 생활을 하는 라디오 DJ 윤수미(고소영)와 접선하라! 그리고 그들은 예상했듯 서로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기 시작하고, 남측과 북측은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어진 림병호를 폐기 처분하려 한다. 결국, 벼랑 끝에 내몰린 림병호와 윤수미는 고육책 끝에 제 3국으로 탈주를 감행하게 된다.
<이중간첩>은 남북을 둘러 쪼개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이념의 이데올로기로 바라 보는 영화가 아니다. 다만, 분단구도의 질곡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한 인간을 응시하며 현실에 기댄 지난한 과거를 또는 과거에 기댄 지난한 현실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기에 영화는 이중간첩이라는 운명의 굴레에 꼼짝없이 포박된 림병호을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고 그의 시선과 신념을 때깔 나는 영상 속에서 무겁게 그려낸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그의 주변에 서성이고 있는 인물들은 역으로 크게 부각되지 못하고 탈색된다. 특히, 림병호의 상대역인 윤수미 같은 경우 <이중간첩>의 정통드라마라는 형식의 두터운 두께를 조금은 걷어낼 수 있는, 달리 말해 멜로를 끌어들여와 드라마에 탄력을 줄 수 있는 중요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밋밋하고 가련한 여인으로만 머문다. 많은 평자들이 얘기하듯 고소영의 연기가 그러한 부분에 공로를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언했듯, 영화는 림병호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그러기에 그녀의 심경의 변화를 읽어낼 수 있을 만한 상황은 생략돼 있어 어느 여배우가 윤수미로 분해 연기한다 할지라도 쉽사리 보는 이들의 감정동요를 불러일으키기에는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가 림병호의 시시각각 충돌하며 격랑을 일으키는 감정의 파고를 세밀하게 포착해낸 것도 아니다. 그만큼 <이중간첩>은 거창한 소재와 외형적 장르에 많은 것이 희생돼 심심한 여백이 눈에 띄게 많은 영화이다. 4년 만에 브라운관에서 스크린으로 돌아온 한석규 역시, 딱 자신의 이름값에 상응할 만큼만 연기를 펼쳤다고 보면 된다. 예상치 못한 극적인 순간들이 부재한 영화이기에 자신의 캐릭터에 풍부함을 불어 넣을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 어쩌면 더 정확한 말일 것이고.
이 같은 아쉬움이 남음에도 별다른 현장 수업 없이 곧바로 충무로에 입성해 첫 장편 작을 쏴 올린 김현정 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되는 이유는, 그로부터 신인감독만이 가질 수 있는 우직함과 비타협 정신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이중간첩>은 분명, 여러 가지 외형적 규모를 보았을 때 블록버스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내용은, 근간의 신인감독들이 블록버스터라는 큰 그릇에 채워넣었던 요소들과는 상이하게 다르다. 물론, 그러한 자기만의 강점을 세밀하게 변주하는 데 있어 미숙한 점이 노출된 것도 사실이나, 기본적인 영화의 골격을 끝까지 관장시키며 밀어부친 뚝심은 믿음직스럽다. 한석규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역으로 그가 있기에 더욱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다는 점도 제고할 필요가 있다.
과연, 안 좋은 기후 조건에서 최고의 빨간 마후라 한석규와 고공비행에 나선 <이중간첩>이, 다이나믹한 조중기술없이 처음에 올라선 그 높디 높은 고도만을 유지하며 비행해도 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을지, 또는 냉담한 반응 아래 불시착으로 비행이 마무리될지 자못 궁금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