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을 기다리게 한 중간계의 전설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1년이라는 시간동안 이전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환타지는 더욱 강력해진 마법을 스크린에 불어넣는다. 특히, 3부로 이루어진 전체줄거리에서 도입부를 자처한 1부에 이어 모든 갈등과 사건이 압축되어 있는 2부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허리가 되는 대목. 2부의 성패가 이야기 전체와 3부의 흥행존망을 짐작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터 잭슨은 <반지의 제왕 : 두개의 탑>을 위한 재촬영과 재편집을 서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두번째 이야기는 뿔뿔이 흩어진 중간계의 반지원정대로부터 시작된다. 절대반지를 없애야 하는 사명을 지닌 프로도는 일행과 떨어져 샘과 함께 모르도르로 떠나지만 반지의 전주인 골룸의 미행을 받게 된다. 그리고 골룸을 붙잡은 프로도 일행은 그를 모르도르로 이끄는 길안내자로 길들이게 된다. 한편, 사루만의 우루크하이 군대에게 잡혀간 메리와 피핀은 죽음의 위기를 수차례 넘긴 뒤 숲의 정령 엔트 족의 지도자 나무수염에게 구출된다. 메리와 피핀을 구하기 위해 우루크하이 군대를 추격하던 아라곤과 레골라스, 김리는 팡고른 숲에서 백색의 마법사로 부활한 간달프를 만나게 되고 악의 군주 사우론이 점점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아라곤 일행은 사우론과의 결코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전쟁을 준비하게 된다.
지하동굴 속에서 원정대를 구하기 위해 악마와 사투를 벌이던 간달프가 지하로 떨어지면서 악마와 벌이는 난투극은 처음부터 스펙터클과 긴박함을 최고로 끌어올리며 1편에서는 볼 수 없었던 뒷이야기를 통해 간달프의 부활을 암시한다. 선과 악을 오가는 정신세계를 지닌 100% CG캐릭터 골룸의 열연 역시 남우조연상이 아깝지 않을 정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장면은 <글래디에이터>를 주눅들게 할 정도로 장대하고 웅장한 헬름협곡의 전투 장면이다. 성으로 돌진하는 수천, 수만, 수십만의 우르크하이 족들의 행군은 CG가 살려낸 톨킨의 상상력에 사실감을 덧칠한다. 아라곤과 아르웬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강조된 것, 파라미르 부자의 갈등관계가 적어진 것 등을 제외하면 원작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끊임없이 엿보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반지의 제왕 : 두개의 탑>은 몇가지 아쉬움을 남긴다. 원작에 응축되어 있는 모든 이야기를 정해져 있는 시간안에 쏟아내야 했기 때문인지 빠르게 전개되는 3토막의 이야기에 따라 긴장감 역시 3등분으로 나누어진다. 결국 이야기는 긴장감의 흐름이 끊기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오락적인 측면을 강조, 액션과 스펙터클을 중심으로 압축되어 진행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는 원작을 읽지 않은 이들에게는 중간계의 갈등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게다가 오락적 측면이 강조된 영화 속에서 원작의 웅혼한 깊이를 유지한 대사들은 지나치게 문학적이다.
모르도르의 소굴에서 검은 날개를 펼치고 날아와 프로도를 뒤쫓던 악의 사자, 나즈굴이 주는 소름끼치는 긴장감도 확실히 전편만 못하다. 원작에서는 장대하고 위엄있게 묘사되었던 엔트족의 나무수염은 말귀가 어두운 노인처럼 지나치게 희화화된 느낌이며, 비쩍 마른 엔트족의 캐릭터들 역시 어린이 환타지 극장에 나오는 나무요정들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기대에 못미친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두 개의 탑, 오르상크와 바랏두르가 엔트족에게 의해 전멸되는 과정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쉽게 묘사되어 허무함을 지울 수 없다.
가장 아쉬운 점은 보는 이들의 마음속과 요정과 호빗족들이 살고 있는 중간계에 대한 신비로움을 불어놓고 그 모험과 환상으로 상상력을 가득 부풀렸던 1편과 달리 2편은 중간계를 지키기 위한, 혹은 정복하기 위한 싸움과 전투가 반복되며 그 속에서 자행되는 무자비한 살육이 중심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피와 살이 튀고 목이 잘려나간 우르크하이족들의 시체들이 즐비한 화면은 여타 전쟁영화들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을 만큼 잔혹해졌다. 아름답고 서사적인 환타지의 절대강자임을 내세운 <반지의 제왕>이 과연 이렇게까지 잔인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절대반지와 중간계를 사랑하는 이들이여. 개념치 마시라. <반지의 제왕>은 어른들을 위한 환타지이다. 환타지는 환타지 그 자체로써 사랑 받을 자격이 있다. 톨킨의 위대한 상상력이 내년에도 사랑 받으리라는 것은 어쩌면 물을 필요도 없는 일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많은 것은 그만큼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서 1년이 지나 우리의 주인공들이 리벤델로 돌아가 편히 쉴 수 있기를,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우리들의 기다림에 대한 조급한 갈증이 해소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