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olin 정덕근, horn 이석준, trumpet 정용균, tuba 이병호, drum 이철희, piano 이병훈, cello 이서강, clarinet 이병훈
Original Music by 장영규
<해안선> 은 전쟁이 없는 전쟁영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혹여라도 영화가 처절하지 않으면 어쩔것인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러한탓에 이 영화에서 내뿜는 광기는 극한으로 치달을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오히려 여유치않은 형편을 짜내어 <지옥의 묵시록> 의 대규모 헬기 폭격 장면에 욕심을 부렸을성 싶었다면 이도 저도 아닌 꼴이 되었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모든 것이 계략적으로 짜여진 제작일지상의 의도는 아니였으리라… 흡사 홀로일때의 외로움보다 함께일때의 외로움이 보다 절실한것처럼, 또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드레스 투 킬> 이나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 <몬스터> 에서 처럼 보이지 않는, 그렇기에 실제하지 않다고 느껴지기에 보다 전지전능하다고 여겨지는 무한의 두려움이 그렇고, 일말의 사랑의 세레나데가 오고감이 없었다하더라도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진해서 절벽넘어로 자신의 몸둥아리를 맡겨버릴 수 있는 <라스트 모히칸> 에서의 그 장면은 잊을 수가 없었던 것처럼… 보통의 일반적인 상황과는 동떨어진 정형화되진 않은 여건이기에 보다 처절하고 극적일때가 있는데 <해안선> 에서도 그러하다. 전시중에 발화되어지는 광기와 비인간적인 모든 것은 그 특정의 주위사정으로 인해 용인되어지고 쉽지는 않겠지만 납득되어질 수 있는것이다. 반대로 전시중이 아니였더라면 그렇지 않을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이 없는 상황에서… 분단된 남과 북이 대립되어 있다는 사실이 국제사회의 시각으로는 특수한 상황일지는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하루 이틀의 일도 아닌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단지 그 이유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광기가 마구 용솟음친다는 것…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영화를 통해 그러한 모든 것이 충분히 납득되어진다는 것은 그 어느 화약냄새가 남발하는 헐리우드 전쟁영화보다 처절하고 극적일 수 밖에 없다.
일련의 전쟁영화들을 보면 클래식 음악의 쓰임이 잦음을 알 수 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 에서 쓰였던 사뮤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라든가 피터 위어 감독의 <갈리폴리> 에서 쓰였던 토마소 알바노니의 “아다지오”, 그리고 위의 두 경우와는 다소 차이점을 보이긴 하나 <지옥의 묵시록> 에서의 “발키리의 기행” 도 길이 남을 전쟁영화속에 삽입된 클래식 음악이다. 전쟁영화와 고전 클래식 명곡과의 인연의 꼬리는 어디서부터일까?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기에 다른 모든 개체들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었던 인간이 자신의 그 유일무이한 비기를 스스로 저버리고 하등의 금수들과 같아지기를 자처하는 장이 되어버리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유엔 산하에 있는 국제인권보호 단체라든가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 따위… 또한 박애, 인권, 사랑, 용서, 화해, 화합등의 단어는 사어에 불과하다. 오로지 단 일보라도 전진된 자신의 영역을 위해서라면 한 사람의 생명따위는 깡그리 무시해도 되는, 아니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정함으로 가득찬 상황에 귀에 들려오는 더할나위 없이 매혹적인 갖가지 음역들의 조화를 꾀하는 고전 클래식 명곡은 전장에 핀 노란 한떨기의 꽃잎과도 같음이다. 정(전쟁)과 반(고전 클래식 음악)이 서로 충돌하여 합(애달픔과 뉘우침으로부터 오는 무한의 감동)에 이르는 이 극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함에 있어 전쟁영화에는 클래식 음악이 잦게 쓰여왔던 것이다.
<해안선> 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고전 클래식 명곡의 차용은 없다지만 바이올린과 첼로는 물론이거니와 호른과 튜바와 같은 다소 생소한 클래식 악기까지 총동원되어 스크린상의 비정함과 광기를 보다 극한으로 내몰고 있다. 일련의 전쟁영화의 음악과는 다른 점도 많이 눈에 띄는데… 우선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메인 테마에서 뿐만 아니라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클래식 악기의 전폭적인 사용을 들 수 있겠다. 단지 서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함이 아니요 클래식 악기가 갖는 고유의 성질, 그 자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Intro” 에서 느껴지는 서정성과 비장함이 서려있는 스코어는 물론이거니와 “영길의 죽음” 에서는 첼로의 죄여오는 듯한 거치고 가쁘며 한껏 가라앉은 사운드가 그리고 바이올린의 신경질적인 고음에서의 갈라짐이 함하여져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다. 전 앨범을 통틀어 첼로는 극중 인물을 광기에 사로잡히겠끔하는 외부조건들을 표현하고 있다. 전면에 나서려 하지는 않지만 저 밑바닥에서부터 차츰 숨통을 죄여오는 듯하며 바이올린은 그러한 상황에서 고뇌하고 방황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다. 빠른 발걸음과 거친 숨을 참아가며 이리저리 자신을 뒤덮으려 하는 외부의 어둠으로터 도망치려는 듯 한껏 짜증섞인 고음의 스피디한 연주가 그것이다. 트럼펫과 호른, 클라리넷과 같은 악기의 쓰임은 서정성을 강조하는데 있다. 그중에서도 트럼펫의 활용은 특히나 국내 군부대의 나팔소리를 연상케하는 음색을 완벽하게 재현해내고 있기도 하다. “미영의 테마” 는 극중 이야기와 일맥상통하기라도 하듯이 다소 몽환적인 감성을 표현해내는데 주력하고 있기도 하다. 극중 강상병(장동건)이 부른 “과거는 흘러갔다” 가 그대로 수록되어 있는것도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다. 백현진이 부른 또 하나의 “과거는 흘러갔다” 는 마치 영화 <스모크> 에서의 톰 웨이츠가 부른 “Innocent When You Dream” 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22곡의 트랙이 빈틈없이 빼곡히 들어차 있지만 실제로는 같은 멜로디를 여러 포맷으로 달리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행위에 불성실함이 엿보이거나 하지는 않는 것이 상황의 변이와 함께 슬픔과 분노와 갈등과 같은 여러 심리상태의 강약을 적절하게 달리하고 있어 오히려 영화음악 앨범으로서의 가치를 한층 더 높여주고 있다. 흡사 멜로디를 달리하는 곡보다도 음색의 변화를 달리한 곡에서의 느껴지는 감정의 변이 차가 크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답게 영화 자체는 왠지 마이너틱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비록 장동건이라는 인기배우가 출연하였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OST 에서만큼은 전혀 그러한 인상을 받을 수가 쉽지 않으니, 그 어떤 국내 메이져 영화의 그것보다 많은 노력과 정성이 깃든 앨범임을 단번에 느낄 수 있을것이다. 오리지널 스코어의 풍요로움과 성실한 자세로 임한 다양한 편곡작업과 그리고 영화와의 완벽한 결합을 꾀한 점이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으로 생각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