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이 돌아왔다. 그간 비주류에 머물며 변함없이 거칠고 불친절한 화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던 그가 <나쁜남자>의 흥행세를 몰아가며 톱 스타 장동건과 함께 <해안선>이란 신작을 발표한 것이다.
제작비 7억이 투입된 이 작품은 김기덕과 장동건의 만남으로 제작 돌입과 함께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과연 두 사람이 어떤 조화를 이루어 나갈 지에 대해 각각의 팬들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부산 국제영화제 공식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던 이 작품은 때문에 영화의 완성도를 능히 짐작케 했고, 개봉 첫주말 전국 17만 관객을 동원하며 김기덕 감독의 영화 가운데 가장 높은 흥행 스코어를 기록하며 흥행 가도에 들어섰다.
<해안선>은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다. 따라서 매끈하게 재단 된 최근 한국 영화들과의 비교는 삼가 했으면 한다.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가 30억원에 육박하고 있는 요즘 그의 3분의 1도 안 되는 7억원이라는 금액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화려한 비주얼이나 물 흐르듯 진행되는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다. 한달여만에 촬영을 종료한 이 작품의 배경은 군이다. 제작비 가운데 가장 많은 자본이 투입된 군사기지의 모습 역시도 엉성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여전히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광기어린 모습과 사회의 부조리 그리고 인간성의 상실 등은 몇 차례 담금질을 통해 훨씬 유연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관객들을 파고든다.
이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몇 가지 코드는 첫째 <해안선>이란 영화는 판타지라는 것이다. 어딘지 알 수 없는 병영의 모습이 그렇고, 그 안에 존재하는 병사들의 모습 또한 상식과는 거리가 먼 이들로 채워져 있다. 알려진 것과 같이 군에서는 "~요"라는 언어는 통용될 수가 없다. 모두 "~다"로 끝나는 것이 기본이다. 해병대 출신인 감독이 이런 것들을 모를 리는 없을 터. 필시 의도된 대사처리가 아니었나 싶다. 이는 이 영화가 사실 같지만 결국에는 판타지에 근거하고 있음을 은유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감독은 군이란 존재는 인간을 파괴하는 무익한 존재쯤으로 치부하려고 한다. 강상병의 이미지는 완전히 군이란 체제에 광적으로 매달리는 인간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렇게 집착과 구애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던 이가 실제 오발사고에 휘말린 뒤에 오히려 광기에 사로잡혀 주변을 파괴한다. 군인들은 오로지 성욕에 사로잡힌 짐승으로 그려지고 그 대상이 어디서 굴러다니는지 모르는 창녀이든 혹은 미친 여자이든 오로지 성욕을 채울 수 있으면 누구든 상대할 수 있는 존재로 표현된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고 인간적인 이들도 군에서는 더럽고 치졸하게 변한다. 영화 속 대사처럼 군인은 밥만 축 내고 멍청한 식충이들이다.
강상병의 광기는 제한적인 공간에서 지겹도록 얼굴을 마주 대해야 했던 다른 이들에게 전이되고, 결국 서로를 죽음에 이끄는 기폭제로 작용해 젊은 영혼들을 철저히 마지막 까지 무너트린다. 그들은 군이라는 제도에서 정신적인 데미지를 입고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결국에는 어디에서도 안식할 수 없는 패잔병이 되어 번화한 도시를 부유한다. 새파랗게 많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던 젊은이들의 꿈은 군이라는 제도에서 피폐해지고 약해지며 결국 부서지고 마는 것이다. 소통되지 않았던 군과 사회는 결국 서로에게 깊은 상처와 아물지 않는 충격으로 막을 내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김기덕 감독 특유의 거칠고 빠른 화법으로 스크린을 뚫고 나와 비릿한 잔상으로 머리 속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제는 많이 부드러워진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만나는 것이 조금은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가 전하는 끔찍한 현실과 판타지의 중간에서 소외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는 것은 여전히 불편하기 그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기덕이라는 이름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영화를 빨리 찍어 내거나 저예산으로 그럴싸한 그림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 아니라 영화가 끝난 뒤이어 다가올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해안선>은 최근에 등장한 어떠한 한국영화보다 특별하고 각별하다. 톱스타 장동건의 이미지 변신에 주목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해안선>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 꼭 한번쯤은 볼 필요가 있는 색다른 텍스트 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