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스트레이트인지 게이인지, 또는 남몰래 여성용 속옷을 입고 편안해 하는 취미가 있는지 아닌지는 궁금하지 않다. 어쩌면, 태초에는 그런 구분이 없었을 지도 모르니까. 단지 남자, 여자, 그리고 남자이며 여자인 세 가지의 성이 있었으며 세 번째 인간에게 신들을 능가하는 힘이 생기면서 교만해지자 제우스는 세 번째 인간의 힘을 줄이기 위해 둘로 찢어놓았고, 이렇게 둘로 나뉘어진 인간은 서로 잃어버린 반쪽을 끊임없이 찾아가 외로움을 달랜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위와 같은 아이디어를 얻은 존 카메론 미첼과 스티븐 트래스크가 의기투합, 노래 ‘the Origin of Love’를 만든 것이 뮤지컬 <헤드윅과 앵그리 인치>의 시작이었다.
동베를린에서 태어난 한셀이 ‘앵그리 인치’를 가진 헤드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지난한 인생역정을 신나고 활기찬 포스트 펑크 네오 글램 록 뮤지컬 한판으로 풀어내는 영화화된 <헤드윅>의 결기에는 정치, 성, 권력, 역사의 아이러니 등의 흔적들이 아주 적절하게 녹아 들어가 있다. 영화는 뮤지컬을 기본 골격으로 하여 현란한 플래시 백과 애니메이션을 교차 편집함으로써 <헤드윅>의 내러티브라는 맹렬한 소용돌이 속으로, 영화 <헤드윅>이 말하고 싶은 ‘사랑의 시작’이라는 메시지 안으로 관객을 사정없이 몰아넣게 된다. 자신의 사랑을 배신하고 곡을 훔쳐 록 스타가 된 토미 노시스(<머더 바이 넘버>에도 출연하였던 마이클 피트가 마치 얼터너티브 락 그룹 스매싱 펌킨스의 리더 빌리 코건을 연상시키는 외모로 연기하였다)가 공연하는 곳을 따라다니며 ‘토미 미행 투어’를 펼치는 헤드윅과 앵그리 인치 밴드. 그들이 연주하는 자전적인 가사를 가진 일련의 노래들 사이사이에 헤드윅의 인생이 완벽하게 짜여져 펼쳐진다. 특히,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에 살고 있으며 102.7 MHz라는 주파수를 돌려 ‘American Armed Forces Radio’를 열청했던 경험이 있는 필자로서는 오븐 속에 라디오와 얼굴만 밀어넣은 채 미군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데이빗 보위’,’루 리드’,’이기 팝’에 경도되는 남다른 소년 ‘한셀’의 뛰는 심장박동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헤드윅>에서 울려 퍼지는 익숙한 팝적 멜로디와 열정적이고 힘찬 70년대 스타일의 글램 록은 스티븐 트래스크(‘헤드윅과 앵그리 인치’밴드의 일원으로 배우 데뷔하였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관객들의 눈과 귀를 번쩍 뜨이게 하고 팔과 다리를 흔들거리게 할 것이다. 이런 경험을 주는 핫 무비로는 일찍이 1975년에 <록키 호러 픽쳐 쇼>가 있었으며, <헤드윅>의 제작자 크리스틴 바숑의 킬러 필름즈가 만든 또 하나의 역작 <벨벳 골드마인>이 우리를 노래와 열에 들뜨게 만들었다. 음악을 들었고, ‘할리우드 리포터‘지의 표현처럼 극장에서 뛰쳐나가 OST를 샀고, 헤드헤즈 모자와 짙은 화장으로 코스튬 플레이를 행하였으며 급기야 노래를 모두 외우고 완벽하게 록키 호러와 헤드윅에 동화된 컬트팬들은 몇 번이고 극장으로 향하여 극장 안에서 울려 퍼지는 모든 노래들을 더 큰 목소리로 우렁차게 따라 부른다. 이러한 영화의 운명은 소수의 극장에서 소수의 관객들에 경배 되는 컬트라는 이름의 동일한 별자리를 갖고 있다. 자신의 불완전성을 극복하고 반쪽을 찾아 완전한 무언가가 되려고 하는 헤드윅의 노력이 주는 인간적인 감동을, 게이 및 트랜스 젠더의 영화라는 단순화를 넘어서 한국 사회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 또한 2002년 한국에 살고 있는 게이의 움직일 수 없는 운명에 가까운 체념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우울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성난 1인치의 성기라는 웃지 못할 흔적을 갖고 있는 헤드윅이 슬퍼하지 않는 것처럼, - 설사 사랑하는 사람의 손이 바지 속으로 들어왔다가 ‘1인치의 수술 자국’에 소스라치게 놀라 서로 뻘쭘해졌던 씁쓸한 기억이 있을지라도! - 결국엔 이치학과 헤드윅이 파라 파셋 가발과 화려한 옷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응시하는 용기를 갖게 되는 결말이 보여주는 고고하고도 우아하게 고개를 드는 존엄함 같은 것을 <헤드윅>은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군 병사를 따라 성전환수술을 하고 동베를린을 탈출하는데 성공했지만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버림받은 헤드윅이 한국 여자들과 결성한 밴드의 공연장면, 특히 기타리스트 ‘광희’의 멋들어진 솔로 연주를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