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장 논란이 된 작품들 가운데 단연코 필자는 <메멘토>를 제일 먼저 꼽고싶다. 시간의 역순에서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기억'의 불완전함을 꼬집으며 관객들과 지적인 게임을 벌린 놀라운 작품이었다.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데뷔작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고, 다양한 영화제에서의 호평에 이어 박스오피스에서도 상당히 좋은 흥행 성적을 일구어 냈다.
<메멘토>로 시작된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이름의 아우라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감독은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며 할리우드 메이저 회사의 도움으로 또 다른 스릴러 영화를 만들어 냈다. '불면증'이라는 뜻을 가진 <인썸니아>가 바로 그 주인공으로 이번에는 할리우드 톱 스타들을 대거 영입해 <메멘토>를 훨씬 능가하는 스케일의 작품을 내놓았다.
영화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작 <메멘토>와 흡사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하나의 큰 줄기에 곁가지들이 붙어 이야기를 이루고, 각각의 캐릭터에 개성을 부여하면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점을 그 이유로 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작에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극단적인 주인공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6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하는 불면증 환자를 주인공을 통해 혼란스럽고 몽환적인 느낌을 연출한다. 어둠이 없는 시간과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는 주인공의 표정은 피폐하기 이를 데 없고 그 지쳐버린 눈빛은 <메멘토>의 레너드(가이 피어스)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주인공들의 심리적인 갈등은 24시간 빛나는 태양 만큼이나 또렷하게 스크린을 비추고 있지만 그 안에는 자욱한 안개가 드리운 혼돈이 잔재해 있다. 직업에 대한 명성을 얻으면서 환영 받는 주인공의 이면에는 내사로 인해 지금까지 일궈둔 모든 것들이 날아갈 판이다. 빛과 어둠이 있고 진실과 거짓이 있으며 모든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고 있다. 바로 이 영화의 핵심 축이기도 하고 매력이기도한 영화의 주된 분위기다.
영화는 충분히 매력이 있고 관객과의 또 다른 머리싸움을 걸어 오지만 어쩐지 <메멘토>에서 한번쯤 보여준 설정으로 인해 신선감을 떨어트리고 있다. 지금까지 선한 캐릭터로 일관해 왔던 로빈 윌리엄스에게 폭행 살인범 역을 맡기는 모험을 시도하기는 했지만, 그러한 모험이 크게 빛을 발하지는 못한다. 다만 전편에 비해 보다 풍요로워졌구나 혹은 감독의 지위가 조금은 높아졌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11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훌쩍 지나가고 만다. 차라리 이 작품이 <메멘토> 앞에 발표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