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배트맨 비긴즈’ 어떻게 볼 것인가?
2005년 6월 14일 화요일 | 박부식 영화평론가 이메일


블록버스터라는 쟝르

헐리우드 블록 버스터 중 배트맨과 같은 블럭버스터의 쟝르는 스릴러, 미스터리, 멜로 등 여러가지로 나뉠 수 있겠지만 이 모두를 관통하는 특징은 역시 블록버스터라는 점이다. 매우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많은 종류의 헐리우드 속편들을 봐 오면서 그것을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로 생각한다. 이것은 사실 굉장히 잘 구성된 이야기의 틀 그러니까 쟝르의 컨벤션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배트맨> 시리즈의 경우 주인공이 마이클 키튼에서 발 킬머로 그리고 조지 클루니로 바뀌어도 우리는 다른 얼굴의 같은 역할 즉, 동일한 ‘배트맨’으로 받아들인다. 헐리우드의 속편 시리즈 혹은 요즘 유행하는 소위 ‘프리퀄’이라 불리는 전편에 걸쳐 이것들을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소위 ‘스핀 오프’ 즉 원형에서 가지를 치는 식의 이야기 구성방법이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쟝르적 컨벤션은 단순하지만 유구한 역사적 깊이를 갖고 있는 선악의 대립구조를 현대에 맞게 변형시키며 그 과정에서 쾌락을 창조해내는 기본적 뼈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누가 봐도 죽어 마땅한 악당을 위험에 처한 선한 그러나 이 구성에서는 단지 배경에 불과한 무구한 사람들을 대신해서 처단해주는 영웅이 주인공인 영화인 것이다.

이러한 대단히 미국적인 신화, 즉 선한 사람들은 언제나 승리하며 그 선한 사람들이 바로 미국인이라는 신화는 짧지만 영화역사에서는 거의 신석기 시대 쯤에 속할 ‘서부극’의 쟝르적 구조를 빼다 박았다. 서부개척을 위협하는 인디언과 악당을 차례로 굴복시키는 어딘선가 나타난 외지인 카우보이 혹은 보안관의 이미지와 닮아있는 것이다. <배트맨>이 특히 이런 이미지와 유사한 것은 그가 거의 유일한 ‘정상적인’ 인간출신이라는 신분때문이기도 하다.


신화적 영웅에서 현실속 인간으로

<배트맨> 역시 다들 알다시피 DC코믹스의 영웅들 중 하나이다. 마블 코믹스와 디시 코믹스의 만화적 상상력의 영웅들은 대표적으로 수퍼맨, 스파이더맨, 배트맨, 엑스맨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들은 결국 수퍼히어로이다. 수퍼맨, 스파이더맨, 엑스맨 등은 외계인이거나 초자연적인 힘을 우연한 기회에 얻게 되어 그 힘을 바탕으로 자신을 증명해나가는 반면에 이번 <배트맨 비긴즈>에서 드러난 배트맨의 정체는 그가 애초에는 ‘심리적인 고통’에 힘겨워 하던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배트맨이 겪었던 남다른 유년시절의 고통 즉 부모의 죽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그 고통이 바로 그의 힘의 원천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된다. 이것이 이번 배트맨이 관객에게 소구하는 근원이자 영화전체를 결정짓는 특징이다. 이 특이성이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개성을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이다

<메멘토>로 일약 정말 말 그대로 한번에 최정상의 위치에 오른 이 재능있는 감독은 <인썸니아>를 거쳐 전형적인 헐리우드에의 입문과정을 거치고 있다. 팀 버튼의 ‘배트맨’이 사물에 정령을 불어넣는 특유의 상상력에 힘입어 동화적 세계 안에 있었다면 놀란의 기원으로 돌아간 ‘배트맨’은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에서 한 인간이 배트맨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배트걸 혹은 캣우먼이라는 캐릭터의 스핀오프와 같은 다채로운 캐릭터는 안타깝게도 사라졌지만 크리스천 베일이 연기하는 배트맨으로서의 브루스 웨인은 충분히 속아줄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이다.

놀란의 주요 임무는 바로 인간의 머릿 속에서만 상상되던 수퍼 히어로로서의 배트맨을 어떻게 현실의 땅 위에 발 디딜 수 있게 하는가 였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브루스 웨인의 힘은 그의 천부적으로 물려받은 엄청난 재산과 어릴 적의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었다. 자꾸만 떠오르는 부모님의 죽음 장면은 그가 우물에 떨어져 갑자기 마주친 박쥐를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데서 시작해서 부모님을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서 오는 소위 반복 강박으로 이어진다. 이 장면 그리고 그가 결국 공포의 대상을 자신의 심볼로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배트맨의 인간적 면모이자 현실의 인간이 배트맨화되는 연결고리이다. 이것은 또한 관객에게 어떻게 믿게 만들것인가의 문제에 대한 놀란 식, 혹은 헐리우드 식의 해결방법이기도 하다.

허구적 상상물로서의 배트맨을 최소한 영화관 안에서만이라도 믿게 만들어야 하는 영화적 장치가 바로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인 ‘불안’을 극복하고 성인이 되는 성장기에 대한 은유인 것이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검은 구멍 속의 박쥐 그것은 어둠 속에 놓여있는 죽음이라는 공포와 대면하게 되는 유아기의 공포 바로 그 자체인 것이다. 물론 웨인의 불안의 원천인 이 공포와 부모의 죽음이라는 심리적 외상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그가 그것을 복수에의 에너지로 사용하리라는 것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동서양의 혼융?

놀란 감독 혹은 헐리우드의 영웅 신화 만들기가 또한 동양의 사고방식을 차용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공포와 죄책감’은 그를 세상에 떠돌게 만들었고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차게 만들었지만 그는 결국 재력과 수련으로서 배트맨이 된다. 그를 심리적 공포로부터 구해내기까지의 여정은 매우 먼 동방의 고원에서 벌어지는데 명시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중국의 수용소에서 탈출하여 일본의 닌자수련을 거쳐 이루어진다

공포를 적개심으로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용하고 이해하는 변증법적 과정으로서의 수련은 그러나 스승에 의해 부정되고 결국 그 곳을 빠져 나오게 한다. 이 스승과의 불화는 서양인의 모습을 한 동양적 사고방식의 이질적인 모습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브루스 웨인 역시 공포를 극복하고자 하는 방식으로서의 ‘외상적 장면과의 대면’은 그것을 승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응징이라는 구도로 전개되면서 결국 내면적 승화는 웨인이 오직 배트맨으로 성장하는 부수적인 동력으로만 작용한다.

동양의 이미지는 아직 서구적 플롯에서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를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게 하는 스승이 바로 리암 니슨으로 설정된다는 것이다. 리암 니슨은 <갱스 오브 뉴욕>에서도 <킹덤 오브 헤븐>에서도 아버지 혹은 스승으로서 영웅의 탄생을 도운 바 있다. 그의 엄청 나게 큰 키 때문일까 아니면 그의 이제까지 맡아온 역할의 이미지 때문일까? 또 한가지 개리 올드맨의 착한 형사 역할은 리암 니슨의 악역과 대비되어 매우 기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인간적인 그러나 현실적인 미국의 영웅

<배트맨 비긴즈>의 주요한 스펙터클은 팀 버튼의 것보다는 휠씬 박진감 넘치며 조엘 슈마허의 것과 비교해도 손색없지만 주요한 포인트는 배트맨의 신화 안에 존재하는 배트카와 그의 기지 그리고 그의 모든 능력이 만들어지는 기원의 창조적 순간들에 있다. 배트맨이 배트맨으로 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얘기했듯이 그의 재력과 결합한 공포에 대한 극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재력에 대해 얘기할 차례이다. 배트맨의 전투복과 배트카는 오직 그의 천부적인 재력에서 파생된다.

연구실이라는 한직에 밀려난 모건 프리먼에게서 마치 007 시리즈처럼 신무기를 제공받는 모습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그러나 그가 손수 싱가폴과 중국 그리고 다른 여러 지역에서 부품을 공급받아 스스로 전투복을 칠하고 배트카를 시운전하는 모습은 낯설면서도 재미있는 측면이 있다. 기원에의 비밀이 풀렸다는 호기심의 충족과 충분히 현실적인 이유들에서 비롯되는 배트카와 배트맨 복장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미국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압도적인 섬유물량과 싱가폴과 아시아에서 들여오고 있는 상품의 종류들과 일치한다. 배트카의 경우 마치 이라크 전에서 미국병사들의 목숨을 지켜주고 있는 험비의 모습과 닮아있다. 이처럼 블록버스터의 이야기는 변함없는 선악구도에 현실적 감각을 가미시키며 영웅신화를 현실화시키며 관객을 만족시키는데 있다. 그래서 흔히 1인칭과 3인칭을 오가는 전지전능하며 편재ubiquitous하는 카메라가 관객의 보고자 하는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크리스천 베일의 연기에 대한 평을 더하지 않을 수 없다. 전작 <머시니스트>로 반복된 작업과 일상에 찌들린 기계공의 이미지를 훌륭하게 소화한 그가 <배트맨 비긴즈>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전작과 어울려 근사하게 보인다. 더욱이 그가 나약한 기계공에서 배트맨으로서 대결하는 모습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도 한다. <아메리칸 사이코>와 매트릭스 아류작에서 보여줬던 모습과 달리 <머시니스트>에서 그는 매우 진지하고 현실적인 신화 속 영웅의 모습을 보여준다.

1989년에 시작된 배트맨이 무수한 TV와 영화의 스핀오프들을 넘어 8년만에 다시 돌아온 데 대해 영웅신화에 익숙한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반가운 인사를 전하고 싶다. ‘배트맨! 도대체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 거야’라고…




6 )
mckkw
재밌게 봐야지   
2008-06-06 15:02
qsay11tem
대단한 기획이에요   
2007-11-25 15:13
theone777
멋있다   
2007-06-10 23:28
kpop20
베트맨도 재미있을것 같다   
2007-05-17 12:27
js7keien
비긴즈에서는 이 기사처럼 오리엔탈 풍이 묻어난다는   
2006-09-30 22:36
sgkh75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도 기대되고 악역과 기타 소품등도 멋질것 같아서 기대되요.   
2005-06-18 14:00
1

 

1 | 2 | 3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