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목요수다회]는 무비스트 기자들이 같은 영화(시리즈)를 보고 한 자리에 모여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관람 후 나눈 대화인 만큼 스포일러가 잔뜩 포함돼 있으니 관람 전 독자는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김혜수의, 김혜수에 의한! 소년범 ‘혐오’ 판사 심은석
박꽃 드라마 <직장의 신>이 떠오른다는 평가도 있는데요. 비슷한 느낌이 있으면서도 훨씬 기대 이상으로 잘 소화해 냈어요. 영화 <타짜>(2006)를 갱신할 김혜수 배우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금용 <타짜>만큼의 임팩트는 아니었어요. 딱딱하고 엄한 캐릭터라 그만큼 매력 있게 다가오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그렇다고 어울리지 않거나 거슬렸다는 건 아니고요.
박은영 제가 일전에 ‘김혜수는 뭘 해도 김혜수 같다’고 얘기한 적이 있잖아요. 이번에도 역시 김혜수 같았는데요. (웃음) 그래서 오히려 캐릭터에 어울렸다는 생각이에요. 심은석이라는 캐릭터가 단호하고 거침없고 그러면서도 정의롭고 능력은 또 넘사벽이잖아요. 자기 생각과 신념을 직접적으로 발화하는 인물이라 일각의 오버한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런 ‘오버’가 오히려 캐릭터를 제대로 드러냈다고 봐요.
박꽃 저도 영화 <국가부도의 날>까지는 (김혜수 배우가) 묵직한 역할을 해도 비슷한 감이 어느 정도 있었는데요, <소년심판>은 아니었어요. 전 발성을 좀 유의 깊게 봤는데요, 엄격한 역할이다 보니 더욱더 저음으로 울리는 발성을 하잖아요. 굉장히 유혹적인 하이톤으로 연기했던 <타짜>의 ‘정 마담’ 캐릭터가 강하게 남아 있다가 깨진 게 드라마 <직장의 신>의 ‘미스 김’ 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보다 더 저음의 발성을 보여요. 정말 엄격한 판사처럼 보였고, 이 모습에는 저음의 발성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봤어요.
박은영 <소년심판>을 보면서 시즌1로 끝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촉법소년과 소년범죄를 다룬 참신한 소재에 형사 같은 판사 심은석이라는 먼치킨 캐릭터와 세계관이 잘 구축돼서 얼마든지 이야기 확장이 가능할 거로 보이거든요. 체인징 파트너한 시즌제나 혹은 주변 인물을 다룬 스핀오프 등 말이죠. 안타깝지만, 소년범죄가 끊이지 않는 현실에서 소재가 떨어질 리도 없으니까요.
박꽃 미드 ‘CSI 시리즈’도 마이애미, 라스베이거스 등 도시를 바꿔가며 시즌제로 가잖아요, 그렇다면 <소년심판>도… (웃음) 전 보면서 김혜수 배우의 대사 소화력이 참 좋았다고 느꼈어요. 특히 폭력을 사용하는 아버지한테 “왜 이렇게 당당하십니까”라고 묻는데 평범한 말인데 정말 리듬감 있게 잘 표현했더군요. 또 가정 폭력을 당하는 딸한테는 ‘어른한테 인사 잘하라’고, ‘항상 웃으라’고 이런 식으로 꼰대 같은 말을 하잖아요. 말로는 참 별론데 너무 잘 어울리게 소화하더라고요. <소년심판> 속 명대사 관련 기사를 쓰다 보니 확연히 알겠더군요. 심은석의 말을 텍스트로 치니 좀 가관인데 (웃음) 배우가 목소리와 연기로 정의로운 캐릭터화한 거죠.
박은영 심은석은 다른 판사들과 달리 매우 고압적이고 또 소년범한테 반말을 사용하는데요, 그게 묘하게 잘 어울리죠.
이금용 아까 크게 돋보이지는 않았다고 했는데요. 이 말은 연기를 잘했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대사들이 자칫 잘못하면 오버에 꼰대 같다고 느끼기 십상인데 그걸 거슬리지 않게 표현했다는 거니까요. 저도 약간 꼰대 같은 말이나 대사를 싫어하는 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어요. 그러니 좋은 연기였다는 생각이에요. 직설적인 표현이 잘못하면 일본 드라마 느낌이 나면서 지나치게 나이브하게 다가올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거든요.
현실 반영한 공들인 에피소드
박꽃 애당초 시리즈의 빌드업 자체가 작가의 극본에서부터였고 이후 연출자를 찾았다고 들었어요. <킹덤> 시리즈가 김은희 작가로부터,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가 윤지련 작가로부터 시작됐듯 말이죠. 넷플릭스 시리즈의 특징 같기도 해요. 작가를 전면에 내세우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의 근간에 작가가 있다고 보는 점이요. 김민석 작가는 수년에 걸쳐 50~60명을 취재해 썼다고 해요. 기자보다 더 철저하게 조사하고, 판사와 인터뷰하면서 이런 가상의 설정을 넣으려고 하는데 어떨지 등에 대해 피드백을 받았다고 해요. 에피소드마다 공들인 취재와 작가의 고민이 녹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가의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어요. 문장들을 보면 명대사의 향연이죠.
이금용 일단 이렇게 무게감 있는 글을 쓴 김민석 작가가 너무 젊어서 놀랐어요. 보면서 계속 느낀 감정이 제 취향에는 무겁고 어렵다였는데 너무 젊으셔서…(웃음) 좋은 스토리와 탄탄한 서사인데 대사 하나하나가 엄청 좋다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캐릭터가 밋밋한 지점도 있고요. ‘차태주’(김무열)도 그렇고 심은석도 너무 이상적이죠. 물론 소재도 잘 잡았고 고증도 잘돼서 공을 들인 건 확실해요.
박은영 저도 ‘차태주’ 캐릭터는 밋밋하다는 생각이에요. 소년범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너그러운 판사인데, 극 중 심은석과 정반대의 입장을 견지하죠. 한 번쯤은 굴곡이 있어야 했지 싶어요. 또 ‘강원중’(이성민) 부장판사 후임으로 오는 ‘나근희’(이정은) 부장판사도 심은석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기능적인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현실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에피소드를 잘 엮어낸 점에 감탄했어요. 특히 숙명여고 쌍둥이 시험지 유출 사건을 ‘강원중’ 판사 가족과 엮어서 그를 자연스럽게 퇴장시키는 동시에 그가 국회에 들어가서 실현하고자 한 가치, 소년법 개정의 필요성을 드러낸 점이요. 하지만 인천 여고생 초등학생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첫 에피소드의 경우, 범행 수법의 잔혹함과 엽기성으로 사회적으로 충격을 준 데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사건이라 피해자 유가족과 어떤 동의의 과정이 있었지 않았을까 해요. 다시 떠올리고 회자되는 것만으로도 상처일 테니까요.
박꽃 동의해요. 각색을 거쳤다고 하지만 누구나 해당 사건을 떠올릴 테고,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싫을 것 같거든요. 첫 에피소드에서 재판 중 두 친구가 서로 책임을 미루며 싸우잖아요, 그걸 보고 있던 피해자 엄마가 제발 그만하라고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있는데요. 보면서 정말 감정 이입돼 너무 괴롭더라고요. 작가님이 피해자 유가족께 사전 동의나 협조를 구했을 거로 추정해 봅니다.
이금용 맞아요. 저도 어떤 동의의 과정이 있었을 것 같고요. <소년심판>은 소년범죄와 소년범에 포커싱을 맞추고 있잖아요. 허구의 에피소드였다면 단지 자극적인 범죄 드라마에 그치고 말았을 거예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고, 우리가 익히 아는 사건이기에 더욱더 이입하게 되는 거죠.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발생 당시는 공분하지만, 이게 집단적 힘이나 눈에 보이는 (개선이나 변화의)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잖아요. 이번 드라마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방영되니 이를 통해 뭔가 실효성이 생기면 정말이지 좋지않을까 생각하고요, 제작진도 이런 공론화나 사회적 화두를 던지는 걸 어느 정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합니다.
박꽃 그렇죠. 허구의 에피소드라면 아마 미쳤다고 할 거예요. 실화이기 때문에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는 거죠. 피해자 유가족이 아닌 일반 시청자 입장에서는 영리한 선택이라고 보여지는 게, 실제 사건이 연상되면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강화되거든요. 이런 면에서 힘 있는 설정이라고 봐요.
박은영 <디어 마이 프렌즈>, <라이프> 등을 선보인 홍종찬 감독이 연출을 맡았어요. <디마프>는 최애작 중 하나라 기대가 컸는데요. 말했듯 전체적으로 심은석 캐릭터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잘 구축했고, 각기 에피소드를 통해 문제의식을 잘 드러내고 전달했다고 봐요. 전 이번에 특히 좋았던 장면은 후반부 강원중과 차태주의 작별 시퀀스예요. 자신이 그토록 찾던 판사가 강원중인 걸 알게 된 차태주가 확인 겸 물어보니, 활짝 웃으며 ‘보자마자 알아봤다’고 ‘고맙다’고 강원중이 답하잖아요. 강원중과 차태주가 말하는 소년범의 ‘교화’가 두 인물을 통해 실현됐다고 생각해요. 보면서 찔끔 눈물이… (웃음)
박꽃 저도 그 장면 기억나요. 차태주가 강원중의 뒷모습에 대고 90도 숙여서 인사를 하거든요. 그때 고개 숙인 가운데 김무열 배우의 얼굴이 보이는데요. 강원중을 향한 깊은 존경의 마음이 잘 드러나더라고요. 교화된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연출이라고 느꼈어요. 아까 차태주의 캐릭터가 밋밋했다고 두 분 얘기했잖아요? 전 김무열 배우의 연기가 그런 평면적인 면을 잘 무마시켰다고 생각했어요. 김무열 배우는 <머니백>(2017)부터 연기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잘하더군요!
어른은 어딨나, 제 역할은 하고 있나
이금용 평소에는 소년범죄와 소년범에 대해 크게 생각이 없던 게 사실이에요. 사건이 터져 뉴스에 실리면 분노하고 슬퍼하지만, 새로운 사건이 계속 그 자리를 채우니까요. 대학생 때 과외를 하면서 소위 비행청소년이라고 불리는 학생들의 이야길 많이 전해 들었는데, 생각보다 청소년 비행이 비일비재하고 반복적이더라고요. 교화는 힘들다고 생각했었죠. 이번에 드라마를 보면 가출팸, 쉼터(센터) 등에 머무는 친구들이 나오는데, 이들을 어른이 가족이 사회가 제대로 케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작은 비행부터 큰 범죄 행위까지 일어나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어요. 사실 드라마는 어떻게 보면 판타지 같죠. <소년심판> 초반에 보면 대한민국 판사 정원이 3300여 명인데 그 중 소년부 판사는 약 20여 명이라고 나와요. 판사 한 명이 매년 3만 명 이상의 소년범을 만나는 현실에서 사후 관리도 힘들고 수사를 하는 건 더욱 불가능하니까요.
박은영 촉법소년(만 10세 이상~14세 미만)의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여론은 쭉 있던 거로 알아요. 드라마에서도 촉법소년이라는 점을 악용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보이죠. 14세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느 정도 성숙한 단계라 마냥 형사 처벌을 피할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찬반 논란이 있겠지만, 신중한 접근과 사회적 합의의 도출이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해요.
박꽃 대부분 소년법에 대해 정확하게 모를 거기 때문에 정보 제공 차원에서도 새로운 게 많을 거로 생각하고요. 저는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형사 처벌에 있어 형량이 약하다는 생각이에요. 비단 소년범의 문제가 아니라요. 물론 형량을 세게 한다고 그 사람이 모두 교화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러나 자기 잘못이 뭔지는 알아야잖아요? 제가 굉장히 공감한 대사가 바로 이 부분이에요. “잘못한 걸 알게 해줄 정도로는 무언가를 겪게 해줘야 한다”는 거죠. 잘못해도 보호처분에 그친다면 누가 말을 들을까요.
이금용 촉법소년이라는 게 전세계 공통적으로 있는 개념은 아니라고 알고 있어요. 미국의 경우도 주마다 다르지만, 소년범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예외를 두고 있지 않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소년심판>이 세계적으로 흥행할 거로는 기대하지 않았어요. 외국 범죄 드라마의 경우 더욱더 자극적인 스토리가 많으니까요. 그런데 플릭스 패트롤 (3월 4일) 기준 전 세계 7위까지 올랐어요. 예상외의 글로벌 흥행인데,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박은영 중요한 건 촉법소년의 연령의 문제는 아닐지 모르겠네요. 소년을 보듬을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게 먼저 일지도요.
박꽃 소년범들의 범죄행위를 낱낱이 비판하는 연출 와중에 작가가 맥락을 보여주는 지점이 있어요. 부모의 가출, 알코올 중독, 가정 폭력 등 소년범의 가정환경은 하나 같이 평범하지 않죠. 그런 환경에 살면서 소년범이 안 된다고 그 누가 자신할 수 있을까요. 이런 면에서 ‘교화’의 기회를 줘야 하는 건 분명해요. 또 자식을 낳은 부모는 정말로 치열하게 양육과 훈육을 해야 하는 게요,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아이는 없기 때문이죠. 책임지지 않는 어른은 비난할 자격도 없다는 말이 맞아요. 극 중 차태주가 가정 폭력을 당한 아이들은 자라지 않는다고 하는 대사가 인상 깊었는데요. 이건 오은영 박사의 ‘금쪽 상담소’에 나온 유명인의 사례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어요.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어른인데도 과거의 영향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해 고통받거든요. 결국은 어른과 부모가 잘해야 소년범의 씨앗이 자라지 않는다고 봐요.
이금용 미드<마인드 헌터>나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을 보면 사이코패스를 연구한 결과 어떤 공통점을 발견해요. 대체로 어릴 때 학대와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고 양육 환경과 양육자의 영향이 무엇보다 중요한 걸 알 수 있죠.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이 요즘 대부분 맞벌이를 하다 보니 조부모가 양육하거나 어려서부터 기관에 다니기도 하고 부모가 직접 케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나중에 자녀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은 부모를 혹시 원망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부모의 역할은 뭔지 또 좋은 부모는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박꽃 인류 심리를 연구하는 뇌과학 관련 유명한 김주환 교수님이 있어요. 이분이 저서 ‘회복탄력성’에서 소개한 외국의 연구 사례에 의하면 가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해도 조부모든 이모든 고모든 힘들 때 달려와 주고 손을 잡아주는 어른이 단 한 명만이리도 있다면 회복탄력성이 높아진다고 해요. 회복탄력성은 시련을 겪어도 쉽게 좌절하지 않고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금세 튀어 올라 긍정적으로 살게 하는 힘이거든요. 이게 단순한 추정이 아니고 인류학적 연구를 수십 년에 걸쳐서 어떤 섬에서 벌어지는 인과관계를 테스트해 얻은 결론이라는 거예요.
박은영 바로 그거예요! 차태주에게 있어 강원중이 바로 그런 존재였다고 생각해요. 그런 한 사람을 만들어주는 게 어른의 부모의 사회의 역할이 아닌가 합니다.
박꽃 재미도 있으면서 충분히 생각할 거리를 만든 면에서 올해의 시리즈로 꼽고 싶어요. 소년범의 범죄를 그대로 보여주어 충분히 비판적으로 보면서도 그 맥락을 잘 보여줘 결국 보는 이로 하여금 '어른'이 어디에 있나, 제 역할은 했나를 생각하게 하니까요. 김혜수, 김무열 등의 배우들이 제보회 당시 이런 작품에 출연하게 된 데 자부심 있다고 적극적으로 표명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사진_넷플릭스 <소년심판>
2022년 3월 10일 목요일 | 글 박은영 기자(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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