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 박꽃 기자]
[목요수다회]는 무비스트 기자들이 같은 영화를 보고 한 자리에 모여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관람 후 나눈 대화인 만큼 스포일러가 잔뜩 포함돼 있으니 관람 전 독자는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섭다, 이번에도?
박은영 : 공포영화를 못 보는 입장에서, 안 무서웠습니다.(웃음) 특히 <컨저링>(2013) 의 음산한 느낌이 상당히 사라졌다는 느낌이에요. 하우스호러물로 명성을 떨쳤는데 이번에는 집 자체의 기능도 많지 않고 공간적으로 무섭다는 느낌도 없더라구요.
박꽃 : <컨저링>이 특히 무서웠던 게 집 안에서 눈 가리고 숨바꼭질을 하는데 옷장에서 손이 튀어나와 박수를 친다든가, 침대에 자려고 누워 있는데 손이 불쑥 등장해 발목을 잡아당긴다든가 하는 거였잖아요. 이번 작품에서 그런 시그니처 장면을 꼽는다면요.
이금용 : 물침대 장면이요. <컨저링> 시리즈 자체를 크게 무섭게 보지 않은 입장이라 이번에도 전체적인 느낌은 비슷했는데 그 장면만큼은 무서웠어요. 나중에도 다시 생각나더라고요.
박꽃 : 저도 기억에 남아요. 또 악령에 빙의된 ‘어니’(로우리 오코너)가 환각을 보기 시작하면서 살인을 저지르는 시퀀스에 힘을 줬잖아요. 애견 호텔이 배경인데 미쳐가는 ‘어니’ 뒤로 층층이 들어가 있는 강아지가 보이니 기괴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악령의 근원을 추적하던 ‘로레인’(베라 파미가)이 도망치던 지하 공간에서 자신의 뒷모습과 마주하는 장면의 연출도 인상적이고요.
박은영 : 점프 스케어가 있을 것 같은 포인트에서 없는 몇몇 장면이 있어요. 나중에 물침대를 치운 자리를 다시 들춰볼 때 뭔가 나올 듯! 했는데 안 나오거든요. ‘호러’로 보면 약해도 스릴이나 서스펜스 측면에서 본다면 재미있는 작품이에요.
박꽃 : 그 부분에서 완급 조절을 잘하는 게 잘 만든 공포 영화의 미덕인 것 같아요. 계속해서 점프 스케어가 나와서 깜짝깜짝 놀라기만 하면 짜증(?)만 나고 별로더라고요. <컨저링3: 악마가 시켰다>는 이쯤에서 놀라겠다 하고 준비하고 있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그냥 끝나요.(웃음) 그런 호흡은 괜찮았어요.
이금용 : 악령에 빙의된 ‘어니’는 우리가 흔히 빙의 증상으로 알고 있는 목소리 변화 같은 증상이 아니라 환각을 본다는 설정으로 연출돼요. 그 묘사가 정신병의 일환처럼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박꽃 : ‘악령이 시켜서 살인사건을 저질렀다’고 주장한 인물의 실제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하는데, 전 ‘어니’ 캐릭터를 보니 망상증에 시달리는 환자가 보는 것들이 저런 종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섬찟하더라고요. 누군가가 나를 공격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격렬하게 대응하다가 정신을 차려 보면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해하려고 하고 있는 거죠.
마이클 차베스 감독, <요로나의 저주> 때와는 달라
박꽃 : 이 작품을 연출한 게 마이클 차베스 감독이에요. <요로나의 저주>(2019)도 연출했는데 두 편 다 본 저는 깜짝 놀랐어요. <요로나의 저주>는 많이 유치했거든요. ‘남미 물귀신’이라는 소재가 참신했긴 한데 악령의 저주를 시작으로 그 악령을 추적하고 퇴치(엑소시즘)까지 가는 과정의 연출이 지나치게 빤했어요. 심지어 그 작품도 제임스 완이 제작했는데 말이에요.
이금용 : <요로나의 저주>도 컨저링의 스핀오프인데 말이죠.
박꽃 : <요로나의 저주> 북미 매출은 5,400만 달러예요. 3억 달러를 넘어선 <컨저링>과 2억 달러를 넘어선 <애나벨>(2014)에 비하면 그리 높지 않은 성적이죠.
박은영 : 시나리오 작가가 다를 수 있어요. 마이클 차베스라는 떡잎 있는 감독을 알아보고 제임스 완이 제작에 힘을 보태준 다음, <컨저링3: 악마가 시켰다>에서는 보다 전문적인 작가를 붙여서 연출하게 도와준 것 아닐까요.
박꽃 : 찾아보니 <요로나의 저주> 각본은 <파이브 피트>(2019)라는 로맨스 영화를 집필한 미키 도트리, 토바이어스 이아코니스가 썼네요. 둘 다 이쪽 장르는 처음인 거죠. 반면 <컨저링3: 악마가 시켰다>는 <컨저링2> 각본을 쓴 데이비드 레슬리 존슨-맥골드릭이 맡았어요. 이분은 미드 <워킹 데드>와 공포 영화 <오펀: 천사의 비밀> <나이트메어>의 각본까지 썼네요. 장르에 대한 경력 차이가 있다고 보는 게 맞겠어요. 북미에서는 <요로나의 저주>보다 훨씬 흥행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금용 : 국내가 북미보다 호러물에 대한 선호가 높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컨저링> 유니버스를 좋아하는 팬은 많은 것 같아서 어느 정도 흥행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컨대 <더 넌>(2018)도 그 비주얼을 따라 하는 게 유튜브에서 유행했었죠.
박꽃 : <애나벨: 인형의 주인>(2017) 때는 김민교 씨가 ‘애나벨’을 흉내 내서 화제가 됐고요. 공포 영화가 일종의 ‘재미있는 놀이 소재’로 인식되는 순간 작품 흥행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컨저링3: 악마가 시켰다>에서는 그렇게 따라 하고 놀 만한 요소가 있을까요?
박은영 : 그런 면에서 흥행을 뒷받침할 만한 특별한 재미 요소는 없었던 것 같아요. 코로나19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 국내에서는 앞선 시리즈 성적의 1/3 이상을 못 넘지 않을까요. <스파이럴>도 12만 명 수준에서 관객 수가 멈췄던 걸 보면요.
‘사랑꾼’ 워렌 부부의 맹활약
박은영 : 기존 <컨저링> 시리즈에서는 악령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상황을 보여주고 후반부에 워렌 부부가 나타나 사건을 해결해주는 느낌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워렌 부부를 정면에 내세워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흐름이에요. 전반적으로 짜임새는 더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꽃 : 공포 영화의 고질적인 약점으로 꼽히는 게 서사잖아요.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공간에 왜 들어가냐는 식인 거죠. 전 말은 좀 안 돼도 공포와 긴장의 쾌감을 확실하게 전달해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영화를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약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이 신경 쓰일 수 있다고 봐요. <컨저링3: 악마가 시켰다>에서는 위험한 일을 함께해 나가는 워렌 부부의 애틋한 감정을 줄기로 서사를 강화하면서 심리적 설득력을 더 확보한 것 같아요.
박은영 : 뿐만 아니라 ‘어니’를 살리는 것도 결국 그의 여자 친구잖아요. 악마라는 초월적 존재를 사랑의 힘으로 이겨낸다는 거죠.
박꽃 : 근데 왜 전 그게 마치 히어로물에서 ‘우리는 결국 승리할 것이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 종류의 결말처럼 느껴지는 걸까요.(웃음) 마지막 장면에서 ‘로레인’이 남편 ‘에드’(패트릭 윌슨)가 두고 온 협심증 약을 자기 목걸이 안에서 꺼내어주는데, 이건 뭐…(웃음)
이금용 : 저는 마지막 장면까지 그런 식으로 돼버리니까 이 시리즈 특유의 재미가 감소하더라구요. 악령이 다른 타깃을 향해 이동하게끔 상상하게 하는 찜찜한 무언가가 남았으면 했는데 말이죠. 워렌 부부의 사랑으로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않았으면 관객의 공포감이 좀 더 오래 마음에 남아 있지 않았을까요.
박은영 : 아마 그런 찜찜함을 안 남긴 건, 일단 <컨저링3: 악마가 시켰다>가 흥행만 한다면 또 다른 에피소드를 쉽게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 아닐까요. 이미 한 편 안에서 마무리 지어버린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기보다는 새로운 에피소드를 설계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아요.
박꽃 : 그렇죠. 이야기는 만들기 나름이니까.(웃음) 영화 말미 워렌 부부의 ‘컬렉션’을 모아둔 공간이 잠시 등장하는데 <애나벨>의 인형과 <더 넌>의 수녀 그림에 <컨저링3: 악마가 시켰다>의 상징적 소품인 저주의 도구가 추가되더라고요. <컨저링4>, <컨저링5>가 나온다고 해도 그 공간 안에서 우리가 몰랐던 또 다른 이야기를 들고 나올 수 있을 거예요. ‘자, 이런 악령도 있었어!’ 하면서 말이죠. (웃음)
박은영 : 현재는 모두 돌아가셨지만 워렌 부부가 실존했던 인물들이고 다양한 행적도 있으니, 앞으로도 <컨저링>은 계속 나올 수 있을 겁니다.
2021년 6월 8일 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 (www.facebook.com/imov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