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 청룡으로 활짝 핀 '화려한 시대' |
스릴러 무비 소름, 삶에 찌든연기 진한 인상 |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시상식 당일 장진영은 '오버 더 레인보우'(안진우 감독-강제규필름 제작) 촬영을 하다가 부산에서 부랴부랴 올라왔다. 하루 전날 여우주연상 시상자로 결정됐다는 통보를 받은 순간 '혹시나' 싶었던 마음까지도 비웠다. 행사 당일 심사위원들의 투표를 거쳐 시상식 직전에야 수상자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수상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시상자로 결정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여섯시간 가까이 공 들여 메이크업을 했고 드레스도 골랐다. 누가 트로피를 거머쥐든지 축하해줄 생각으로 무대 위에 올랐다. 그런데 함께 시상자로 나선 이성재가 '소름'의 장진영을 외치는 것 아닌가. 장진영이란 세 글자가 귓가를 맴돌기만 하고, 마치 다른 사람의 이름을 듣는 것만 같았다. 수상 소감을 이야기해야 되는데, 아무 말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한줄기 눈물. 그때부터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리셉션이 끝날 때까지 그칠줄을 몰랐다.
96년 CF 모델로 연예계에 첫발을 내딛은 뒤 5년만에 정상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99년 '자귀모'를 거쳐 '싸이렌'(2000년), '반칙왕'(2000년), 그리고 '소름'까지 숨가쁘게 달려왔다.
"엄마 생각이 제일 먼저 났고 '소름'의 윤종찬 감독님 얼굴도 떠올랐어요. '소름'을 찍으면서 고생했던 순간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면서 저도 모르게 콧등이 찡해지더라구요."
그 추운 겨울, 서울 달동네에서 떨면서 밤샘 촬영을 하던 기억들. 6분이 넘는 롱테이크신도 힘들었지만 악다구니를 하며 삶의 상처를 표현해내는 장면들을 찍을 때는 가슴 밑바닥에 있는 그 무엇까지도 다 긁어내야 했다. 하나뿐인 아이의 실종과 남편의 잦은 폭력, 생활고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마지막처럼 사는 선영이란 인물은 장진영에겐 풀기 힘든 수학문제와도 같았다. 비참한 현실 속에 본능적인 삶의 의지를 지닌 강인하며 거친 선영의 캐릭터에 반해 덜컥 출연을 결정했던 것을 카메라 앞에 서면서 얼마나 후회했던가. 겪어본 적도 없고, 주위에서 본 적도 없는 거친 캐릭터를 온몸으로 소화해내느라 촬영 내내 몸살 감기에 시달렸다. 다이어트도 하지 않았는데, 3~4㎏이 쑥 빠져버렸다.
심사위원들이 쟁쟁한 스타 후보들을 물리치고 장진영에게 영예의 트로피를 안겨준 것도 이런 옹골찬 연기에 높은 점수를 준 것. "연기 열정이 돋보이는 배우"라고 심사위원들은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버 더 레인보우' 촬영 때문에 13일 오전 부산으로 다시 내려간 장진영은 "수상의 감격때문에 밤새 잠 한 숨 못잤다"며 "한국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지금까지도 믿어지지 않는다. 이게 꿈이라면 영원히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