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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여행의 특급 가이드, 우디 앨런과 떠나는 로마 투어
2013년 4월 12일 금요일 | 서정환 기자 이메일

장편연출을 시작한 1966년부터 줄곧 뉴요커의 삶을 영화화했던 우디 앨런이 유럽으로 눈을 돌린 건 2005년 <매치 포인트>부터다. 물론 1996년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에서 파리와 베니스를 낭만적으로 담은 적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뉴요커의 여행지였을 뿐이다. 런던(<매치 포인트> <스쿠프> <카산드라 드림> <환상의 그대>)에서의 연이은 작업 이후, 우디 앨런은 본격적으로 도시의 이름을 제목에 명기하며 바르셀로나(<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원제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파리(<미드나잇 인 파리>), 로마(<로마 위드 러브>)로 이어지는 유럽에서의 영화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제작 환경으로 인해 뉴욕을 떠나 유럽을 전전하는 듯 보였지만, 우디 앨런이 유럽의 도시들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방증이 아닐까.

온 도시가 문화 유적지와 영화 속 명소로 가득한 로마에서 우디 앨런은 특유의 캐릭터들을 풀어놓고 웃고 다투고 사랑하게 만든다. 여기에 이탈리아 고유의 특성들을 첨가하여 로마를 더욱 매혹적인 도시로 그려낸다. 에피소드별로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로마의 곳곳을 만나게 된다. 우디 앨런이 영화 속에서 안내하는 로마 투어가 아닐 수 없다.

첫 번째 에피소드
로마에서 휴가의 마지막 일정을 보내던 건축가 존(알렉 볼드윈)은 한때 청춘을 보냈던 추억을 찾아 트라스테베레(로마의 중심부 테베레강 좌안에 위치한 이곳은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서민지구다. 로마의 역사와 옛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는 지역으로 로마 중에서도 가장 로마스러운 곳이며, 저렴하고 양 많고 맛 좋은 음식을 만날 수 있다.)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젊은 건축학도 잭(제시 아이젠버그)를 만난다. 잡지에서 본 존을 만난 반가움에 잭은 여자 친구 샐리(그레타 거윅)의 집으로 잭을 초대하고, 그곳에서 샐리의 절친 모니카(엘렌 페이지)가 로마를 방문할 것이란 소식을 접한다.
마성의 매력으로 남자들을 흔들어 놓는다는 모니카와 만나게 된 잭은 샐리와 함께 나보나 광장(고대 로마의 전차경기장 유적이었던 곳을 트랙을 그대로 살려 조성한 광장. 차량 통행이 금지돼 있고 주변에 노천카페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즐긴다. 나보나 광장의 명물은 포세이돈의 분수, 무어인의 분수, 4대 강의 분수다.)을 안내하며 인사를 나누고, 캄포 데이 피오리 시장(캄페 데 피오리 광장에 자리하고 있는 재래시장. 일요일과 국경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꽃시장을 비롯해 재래시장이 서는 장소로, 과일, 치즈 등 다양한 먹을거리와 함께 로마의 전통적인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 노천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어 밤에도 많은 이들이 찾는다.)에서 모니카에게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다.
결국 잭의 충고와 훼방에도 불구하고 보르게세 공원(1605년 시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과 그의 조카 교황 바오로 5세가 당대 유명한 건축가들을 데려와 조성한 공원. 보르게세 미술관, 빌라 줄리아의 에트루리아 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이 모여 있다. 현재는 동물원, 극장 등이 있으며, 경기장 형태로 만들어진 시에나 광장에서는 오페라 공연을 하기도 한다. 공원을 빠져나가면 로마의 파노라마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핀치오 언덕이 명소다.)에서 두 사람은 사랑을 속삭이게 된다.

두 번째 에피소드
로마 여행 중이던 헤일리(알리슨 필)는 캄피돌리오 광장(르네상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도시 광장의 하나. 고대 로마의 발상지로 전해지는 7개 언덕의 하나인 캄피돌리오 언덕 한 모퉁이에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광장으로 지금은 로마 시청이 자리 잡고 있으며, 광장 한가운데에는 아우렐리우스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다.)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미켈란젤로(플라비오 파렌티)를 만나 길을 묻고, 미켈란젤로는 헤일리를 트레비 분수(분수의 도시 로마에서도 가장 유명한 분수. 개선문을 본뜬 벽화를 배경으로 거대한 1쌍의 반인반수 트리톤이 이끄는 전차 위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거대한 조개를 밟고 서 있으며, 주위의 거암거석 사이에서 끊임없이 물이 흘러나와 연못을 이룬다.
이 연못을 등지고 서서 오른손에 동전을 쥐고 왼쪽 어깨 너머로 던져 넣으면 다시 로마를 방문할 수 있다는 속신이 있다. 영화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헵번이 떠오르는 장소로도 유명하다.)까지 안내한다. 트레비 분수 앞에서 영화와 같은 사랑에 빠지게 된 두 사람은 결국 결혼을 약속한다. 한편, 딸의 약혼자를 만나기 위해 헤일리의 아빠 제리(우디 앨런)는 로마를 방문하게 된다. 은퇴한 오페라 기획자 제리는 그곳에서 미켈란젤로의 아버지(파비오 아르밀리아토)가 성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며 로마 오페라 극장(수준 높은 오페라와 콘서트, 발레 등이 연주, 상연되는 로마를 대표하는 3대 극장 중 하나. ‘카발레리아루스티카나’ ‘토스카’ 등 중요한 오페라 작품의 초연이 이루어진 역사 깊은 장소다. 오늘날에도 아폴로 극장, 발레 극장과 더불어 로마의 음악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에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색다르고 해괴망측한 오페라 무대를 선보이게 된다.

세 번째 에피소드
평범한 회사원인 로마 소시민 레오폴도(로베르토 베니니)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알람에 눈을 뜨고 세수를 하고 가족과 아침 식사를 하고 출근길에 나선다. 자동차 문을 여는 순간, 곳곳에서 튀어 나오는 기자들과 끊임없이 터지는 셔터소리. 영문도 모른 채 레오폴도는 기자들을 피해 가리발디 거리(붉은 궁전을 포함한 제노바의 다양한 명소들이 자리한 거리. 거리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이탈리아의 애국자 가리발디는 이탈리아의 통일에 기여한 인물로 정치보다 혁명 운동 및 군사 활동에 주력한 이탈리아의 국민적 영웅이다.)를 뛰어 도망치고 파파라치는 잠시라도 놓칠세라 그의 뒤를 쫓는다.
TV에서 일거수일투족을 중계할 정도로 하룻밤사이에 유명 스타가 된 레오폴도. 아라 파치스 박물관에서 패션쇼에 참석하고, 공화국 광장(19세기에 이탈리아의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광장. 광장 남쪽에는 오페라 극장이 있다. 광장 가운데의 나이아디 분수는 본래 공화국 광장 바깥에 있던 분수로 1885년 공화국 광장과 비아 나치오날레 거리(공화국 광장과 베네치아 광장 사이에 있는 대로)를 공사하면서 공화국 광장으로 옮겨졌다. 옮겨진 분수에는 알레산드로 궤리에리가 디자인한 네 개의 석고 사자상을 세웠는데, 이 사자상을 1901년 마리오 루텔리가 지금 있는 님프 조각상으로 교체했다.)에서 레드카펫을 밟으며 주목 받는 피곤한 삶이 시작된다. 피곤한 삶에 지쳐가던 어느 날, 레오폴도를 쫓던 기자들은 다른 행인에게 관심을 보이고, 레오폴도는 순식간에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진다.
다시 찾은 자유에 기쁨도 잠시, 레오폴도는 부인과 함께 베네토 거리(1950년대 미국 영화배급사들이 로마로 몰려들면서부터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달콤한 인생>을 비롯해 50~60년대 이탈리아영화에 자주 등장해 유명해진 거리. 영화 속에서는 주로 로마의 상류층이 많이 찾는 곳으로 등장한다. 온갖 화려함과 쾌락, 낭만과 예술이 어우러진 일종의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로마의 명동.)를 걸으며 아무도 자신을 거들떠보지 않자 혼란에 빠진다.

네 번째 에피소드
로마에 막 도착한 신혼부부 밀리(알레산드라 마스트로나르디)와 안토니오(알레산드로 티베리)는 로마에서의 삶을 꿈꾸며 정착을 준비한다. 안토니오의 친척 어른들과 인사를 앞두고 밀리는 미장원을 찾아 나섰다가 길을 잃고, 밀리를 기다리는 안토니오의 호텔방에 콜걸 안나(페넬로페 크루즈)가 나타난다.
포폴로 광장(이탈리아어로 민중의 광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광장 중앙의 오벨리스크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이집트 정복 후 가져온 것이고, 남쪽의 산타마리아 데이 미라콜리와 산타마리아 인 몬테산토는 교황 알렉산드르 7세의 명령으로 세워진 쌍둥이 교회다.)
에서 헤매던 밀리는 마테이 광장(마테이 광장의 분수는 트레비 분수처럼 국제적으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로마 시민들이 특별히 아끼는 공간이다.)에서 동경하던 영화배우를 만나 그의 유혹에 빠져든다. 한편, 갑자기 들이닥친 친척 어른들에게 안나를 밀리라 소개한 안토니오는 부부행세를 하며 친척들의 안내를 받아 바티칸 미술관(바티칸의 산 피에트르 대성당에 인접한 교황궁 내에 있는 미술관. 궁전, 미술관, 박물관을 전부 지칭한다. 역대 로마 교황이 수집한 방대한 미술품, 고문서, 자료를 수장하고 있고,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이 작업한 내부 벽화로도 유명하다. 현재 시스티나 성당에 보관 중인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천지창조’ 등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바티칸 미술관은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 런던의 대영 박물관과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일방통행으로 관람하도록 되어 있다.)을 방문한다. 낯선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게 된 부부는 자신도 모르게 본능에 눈 뜨고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에필로그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젤라토를 먹던 곳. 바로 스페인 계단이다(안타깝게도 지금은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젤라토를 먹을 수 없다). 피아차 디 스파냐에서 피아차 트리니타 데이 몬티로 이어지는 유명한 만남의 장소로 총 137개 계단으로 이뤄진 이곳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여행자들에게는 약속의 장소로 애용되는 곳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인연을 시작하고 이어가는 곳. 네 에피소드와 함께했던 로마 투어의 마지막 종착지로 여기만큼 적합한 곳이 또 있을까.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풍자와 유머를 곁들인, 삶의 페이소스가 가득한 예술 여행의 특급 가이드 우디 앨런의 로마 투어는 아쉽지만 여기까지다.
2013년 4월 12일 금요일 | 글_서정환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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