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차일드의 소설 <잭 리처>는 지금까지 17편의 시리즈가 출간될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얻은 스테디셀러다. 영화 <잭 리처>는 17편의 시리즈 중 9번째 편인 ‘원 샷’에 빚지고 있다. 이 말은 아직 영화화가 가능한 시리즈가 16편이나 남아 있다는 말이다. 잭 리처에게서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난다’는 홍반장 분위기가 느껴진다면, 이 때문일지 모른다.
한가로운 도심 한 복판. 탕!탕!탕!탕!탕!탕! 6발의 총성이 울린다. 빗나간 한발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발이 시민 5명의 생명을 앗아간다.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는 제임스 바. 경찰은 제임스 바의 유죄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자백을 거부한 제임스 바는 ‘잭 리처(톰 크루즈)를 데려오라’는 메모만을 남기고 묵비권을 행사하는데, 불행하게도 같은 차를 타고 이동하던 범죄자들로부터 폭행을 당한 후 의식불명이 된다. 이후 잭 리처 찾기에 골몰하는 형사 앞에 제임스 바의 소식을 뉴스를 통해 들은 잭 리처가 직접 찾아온다. 잭 리처는 제임스 바의 변호를 맡은 헬렌(로자문트 파이크)과 함께 사건을 역추적하기 시작한다.
소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소설은 캐릭터 자체가 소재이자 주제이자 핵심인 작품이다. 그러니 영화로 탄생한 <잭 리처>도 캐릭터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헌병대 장교 출신인 잭 리처는 거주지 및 신용정보, 이메일, 휴대폰 기록 등이 없는 유령이라는 점에서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국가에게 버림받고 도망치는 신세가 된 본과 달리, 잭 리처는 본인 스스로가 나라를 버리고 자유인이 된 몸이다. 자신의 인생을 타인이 결정하는 것과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잭 리처에게서 제이슨 본에게는 없는 유머와 자신감이 읽히는 이유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독고다이’로 적을 섬멸한다는 점에서는 과거 서부영화 속 마초주인공이 떠오르기도 한다. 실제로 맥쿼리 감독은 “셰인이라는 서부영화 캐릭터가 있는데 잭 리처 원작을 읽어보면 비슷하게 묘사된 장면이 많다”고 밝힌바 있다. 감독은 그 느낌을 영화에 담아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잭 리처>는 의외로 액션보다도 스릴러와 추리에 방점을 둔 영화다. 맥쿼리 감독의 이력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선택이란 생각도 든다. <유주얼 서스펙트>의 각본가로 명석한 두뇌를 자랑했던 감독이다. 액션보다 이야기에 재능이 있는 감독은 여섯 발의 총성이 남긴 퍼즐을 하나씩 맞춰가며 추리극 특유의 쾌감을 주조한다. 아날로그 방식을 이식하고 있는 액션의 경우 호불호가 나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중장년층들에게 향수를 선사할 수 있겠으나, 최신 디지털 액션에 입맛을 들인 관객에는 다소 심심하게 다가갈지 모른다.
<잭 리처>는 딱히 흠집이 있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큰 장점을 꼬집기에도 애매한 구석이 있는 영화다. 액션으로 따지면 <미션 임파서블>에 미치지 못하고, 수사물로 바라보기엔 <셜록홈즈> 등이 이미 이 분야를 점령하고 있어 개성적이지 못하다. 한마디로 캐릭터가 매력을 살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기존 영화들과의 차별화에는 미진한 모양새다. 악당 보스 캐스팅은 신의 한수다. 그가 뉴 저먼 시네마를 대표하는 베르너 헤어조크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에겐 말이다.
2013년 1월 20일 일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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