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다(켈리 맥도널드, 강소라)는 활쏘기와 말 타는 걸 좋아하는 스코틀랜드 왕국의 말괄량이 공주다. 그런 그를 왕비 엘리노어(엠마 톰슨)는 못마땅하게 여기며 ‘공주 수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메리다는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밖으로만 나돈다. 그러던 어느 날 결혼 문제로 엄마와 크게 다툰 그는 성 밖으로 뛰쳐나간다. 하염없이 달리다 도착한 곳은 마법의 숲. 그곳에서 마녀를 만나게 된 메리다는 엄마의 마음을 바꿔달라는 소원을 빈다. 그러나 정작 바뀐 건 엄마의 겉모습이다. 곰으로 변한 엄마를 본 메리다는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놓기 위해 다시 마법의 숲으로 향한다.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픽사 최초로 여성 주인공을 내세우고, 11세기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다. 디즈니의 <뮬란>이 떠오르지만 나라를 구하는 여장부 이야기는 아니다. 픽사는 액션 첩보 블록버스터 장르를 시도했던 <카 2>의 실패를 거울삼았는지, 다시 소박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영화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꿈을 이루겠다는 딸과 결혼을 하라는 엄마의 대립. 이들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화해하는 과정은 익숙하지만 공감대를 얻기에 충분하다. 이는 3D로 생생하게 구현된 활궁 액션보다 메리다와 엘리노어의 말싸움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부왕 퍼거스와 세 남동생 등 애니메이션이라면 빼놓지 않는 감초 캐릭터들의 코믹 연기도 잔재미를 준다.
그러나 <메리다와 마법의 숲>이 픽사의 장점을 제대로 계승했는지는 의문이다. 이번 영화에서 섬세한 스토리와 회화적 색채로 추억과 낭만을 선물했던 픽사의 매력 찾기란 고난이도의 숨은그림찾기 놀이와 같다. 보일 듯 하면서도 끝내 보이지 않는다. 보수적일 정도로 가족애를 중시하는 영화는 픽사보다 디즈니의 색채가 강하다. 비밀의 숲, 마녀, 도깨비 불 등 지브리의 느낌도 배어 있다. 이 요소들은 픽사의 골수팬에게 이질감으로 다가갈 공산이 크다. 가족 애니메이션으로 <메리다와 마법의 숲>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이지만 픽사의 로고에 짓눌린 듯한 느낌이 강하다. 이제 픽사는 관객들의 감성을 꿰뚫었던 과거의 흔적들을 살펴봐야 할 것 같다.
2012년 9월 27일 목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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