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블러바드>는 아일랜드 출신 작가 켄 브루언의 '런던 대로'를 원작으로 삼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원작소설이 빌리 와일더의 고전 <선셋 대로>를 모티브로 삼아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런던 블러바드>는 영화 <선셋 대로>를 소설로 거쳐 다시 영화로 리메이크된 케이스지만 원전의 아우라가 무색하게도 영화는 느와르의 향취만 남아있다. 줄거리는 한 마디로 하면 전직 암흑가 출신의 남자가 꾸는 일장춘몽이 어떻게 스러지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물론 장르는 범죄 느와르다. 보통 유사한 이야기 투르기를 가진 영화 속 남자들의 사랑은 화양연화로 끝나기 마련이고, 이 꿈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 공식이다.
<런던 블러바드>는 백 번쯤은 본 듯한 이야기지만, 장르영화에서 익숙한 이야기는 흠이 되지 않는다. 유사한 코드들이 모여 장르의 공식을 만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공식들을 탐구하는 태도다. 빗발치는 총탄과 혈흔이 낭자해도 차가운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느와르요, 뜨거운 피를 차가운 온도로 담아내는 것은 느와르의 묘미다. 영화는 그림과 스타일만 고스란히 가져온 형국이다. 감독을 맡은 윌리엄 모나한은 마틴 스콜세지의 <디파티드>, 리들리 스콧의 <바디 오브 라이즈>, <킹덤 오브 헤븐> 등 주로 대작 시나리오로 필모그래피를 채워온 각본가다. 그는 첫 감독 데뷔작으로 범죄 액션 스릴러를 택했지만 그간의 내공이 연출에 녹아나진 않는다.
시종일관 담백하고 차가운 스타일을 견지하는 영화는 겉은 차가울 지 언 정 영혼은 뜨거운 순정마초의 체온을 옮겨오지 못 했다. 자연히 예열되지 않은 로맨스는 폭력 느와르의 동기부여를 상실한다. 이야기가 익숙한 구도라면, 캐릭터가 빈 곳을 채워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피상적인 여배우 캐릭터는 로맨스의 화학작용 또한 불발시킨다. 1급 배우와 실력 있는 각본가, 검증된 원작의 조합이라기엔 못 미치는 결과물이다. 단 한 번의 파토스도 없는 느와르라니, 본연의 자세를 잃었다.
2012년 9월 19일 수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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