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드리워진 안개, 습기, 광포한 바람, 질척이는 땅. 영국 요크셔 지방의 외딴 저택은 연극의 무대로 느껴질 만큼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공간이 곧 이야기가 되는 방식이다. <폭풍의 언덕>에서 서사란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원작의 전편을 잘라내어 상처 입은 영혼 히스클리프가 나락에 빠지는 정점에서 영화는 끝난다. 일생에 한 번 도달하는 것조차 어려운 사랑의 원형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기 위해서다. 영국감독 안드레아 아놀드는 시대극에는 관심이 없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습기와 안개, 그 안에서 부유하면서 서로만을 붙잡는 두 영혼을 날 것 그대로 만져지게 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한다.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속도감이나 정경이 아니다. 말의 움직임, 바람에 날려 뺨에 와 닿는 머리카락의 감촉, 동시에 진동하는 진흙냄새다. <폭풍의 언덕>을 지배하는 것은 촉각과 청각이다.
영화의 톤 앤 매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충실하게 일관적이다. 유려한 드라마나 서사보다 바람과 숨소리, 공기를 잡아내는 것이다. 주인공을 둘러싼 모든 요소가 말보다는 이미지로 채워지면서 한 줄의 대사 대신, 바람소리와 침묵, 눈빛, 비어있는 행간으로 이야기를 쌓아올린다. 문학작품이 원작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도, 21세기의 <폭풍의 언덕>은 영화라기보다는 차라리 문학에 가깝다. 그리고 시대극보다는 지금 이 순간 그 공기를 재현하는데 주력하면서 가장 원작에 가까운 영화가 됐다. 소설에서 유년의 기억이 인생을 송두리째 삼켜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 또한 어린 화자가 놀랍게 그려진다. 비전문 배우들을 기용해 최초의 검은 히스클리프를 선사한 것은 고전을 현대적으로 변주하는 바즈 루어만(<로미오와 줄리엣> <위대한 개츠비>)과는 전혀 다른 재해석이다. 영화는 감독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21세기식 고전인 동시에 원작에 가장 가까운 영화라는 모순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폭풍의 언덕이라는 공간 속으로 보는 이를 걸어 들어가게 한다. 영화가 들숨과 날숨을 내쉬면서 평면부조의 화면이 물화된 생명력을 갖는 순간이다.
2012년 6월 26일 화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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