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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적인 촉각과 청각의 영화 (오락성6 작품성7)
폭풍의 언덕 | 2012년 6월 26일 화요일 | 양현주 이메일

눈앞을 가리는 안개 속으로 소년이 걸어간다. 영겁의 세월동안 바람의 지배를 받아온 폭풍의 언덕이다. 이방인 흑인 소년은 그 날부터 남매와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묶인다. 아들은 병적으로 이방인을 경멸하지만 딸은 소년을 어루만진다. 평생을 영혼에 아로새길 사랑의 근원이다. 에밀리 브론테의 고전 <폭풍의 언덕>은 짐승 같은 매력을 뿜어내는 작품이다. 이 열병과도 같은 소설은 윌리엄 와일러 감독작, 줄리엣 비노쉬 주연작, MTV버전 등 수없이 영상화됐다. 그만큼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텍스트다. 하지만 21세기의 <폭풍의 언덕>은 진부함이라는 단어를 소멸시키는 숨결을 불어넣었다.

사계절 드리워진 안개, 습기, 광포한 바람, 질척이는 땅. 영국 요크셔 지방의 외딴 저택은 연극의 무대로 느껴질 만큼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공간이 곧 이야기가 되는 방식이다. <폭풍의 언덕>에서 서사란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원작의 전편을 잘라내어 상처 입은 영혼 히스클리프가 나락에 빠지는 정점에서 영화는 끝난다. 일생에 한 번 도달하는 것조차 어려운 사랑의 원형을 표현하는 데 집중하기 위해서다. 영국감독 안드레아 아놀드는 시대극에는 관심이 없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습기와 안개, 그 안에서 부유하면서 서로만을 붙잡는 두 영혼을 날 것 그대로 만져지게 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한다.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속도감이나 정경이 아니다. 말의 움직임, 바람에 날려 뺨에 와 닿는 머리카락의 감촉, 동시에 진동하는 진흙냄새다. <폭풍의 언덕>을 지배하는 것은 촉각과 청각이다.

영화의 톤 앤 매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충실하게 일관적이다. 유려한 드라마나 서사보다 바람과 숨소리, 공기를 잡아내는 것이다. 주인공을 둘러싼 모든 요소가 말보다는 이미지로 채워지면서 한 줄의 대사 대신, 바람소리와 침묵, 눈빛, 비어있는 행간으로 이야기를 쌓아올린다. 문학작품이 원작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도, 21세기의 <폭풍의 언덕>은 영화라기보다는 차라리 문학에 가깝다. 그리고 시대극보다는 지금 이 순간 그 공기를 재현하는데 주력하면서 가장 원작에 가까운 영화가 됐다. 소설에서 유년의 기억이 인생을 송두리째 삼켜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 또한 어린 화자가 놀랍게 그려진다. 비전문 배우들을 기용해 최초의 검은 히스클리프를 선사한 것은 고전을 현대적으로 변주하는 바즈 루어만(<로미오와 줄리엣> <위대한 개츠비>)과는 전혀 다른 재해석이다. 영화는 감독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21세기식 고전인 동시에 원작에 가장 가까운 영화라는 모순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폭풍의 언덕이라는 공간 속으로 보는 이를 걸어 들어가게 한다. 영화가 들숨과 날숨을 내쉬면서 평면부조의 화면이 물화된 생명력을 갖는 순간이다.

2012년 6월 26일 화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영화 자체가 살아 숨 쉬는 생명체
-베니스영화제 촬영상을 가져간 고혹적인 카메라
-캐서린 언쇼의 아역 셰넌 비어, 기억해야 할 이름
-카야 스코델라리오의 캐시는 이미지 싱크로율만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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