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층이 두터운 영화를 다시금 스크린으로 불러오는 건 도박에 가깝다. 초반 리메이크로 가닥을 잡았던 <더 씽>이 프리퀄로 노선을 바꾼 데에는 이러한 부담이 작용했으리라. <괴물>은 남극의 노르웨이 기지를 탈출한 개 한 마리가 미군기지에 출몰하면서 이야기기 시작된다. 미군기지 대원들은 시체 잔해가 쌓인 노르웨이 기지를 발견하면서 원치 않는 공포와 접촉했었다. <더 씽>은 바로 그 지점, 노르웨이 기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를 쫓는다. 30여 년 동안 의문으로 남겨졌던 부분을 공략하겠다는 <더 씽>의 전략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컬트 대작의 프리퀄을 만드는 감독의 야심이 그리 대단해 보이진 않는다. 영화 속 괴물이 인간을 똑같이 복제해 내듯, 영화도 전작의 이야기를 큰 변형 없이 복제한다. 한마디로 <더 씽>은 독창적이라 평가받았던 원작의 독창성을 고대로 답습하는 함정에 빠져 있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프리퀄 보다 리메이크라 하는 게 나을 뻔 했다.
이야기보다 영화가 더 신경쓰는 건 원작의 그로테스크했던 괴물 이미지를 어떻게 더 매끈하게 구현할까에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미지적 성취 또한 평범한 수준에 머문다. CG에 의해 세공된 괴물은 분명 더 정교해지긴 했지만, 아날로그 괴물에 비해 날 것 그대로의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인간의 머리와 괴물의 다리가 결합된 괴물의 모습이 더 이상 새롭지 않다는 것도 <더 씽>으로서는 약점이다. 사실 <괴물>의 진정한 공포는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에 기인하는 바가 컸다. 요원들은 우리 중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 누구인지, 내가 혹시 괴물로 오해받는 건 아닌지 극도의 불신에 사로 잡혀있었고, 이는 당시 미국 사회를 휩쓴 매카시즘에 대한 공포와 맞물려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낳았다. 냉전시대의 풍부한 함의를 담고 있었던 <괴물>를 따르기엔 <더 씽>이 시기적으로 불리한 것도 사실이다.
결국 <더 씽>은 원작을 기억하는 팬들에겐 반갑지 않은 영화다. 원작의 향수를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면, 존 카펜터의 영화를 다시 꺼내 보는 게 나을지 모른다. 하지만 원작과의 연결을 끊고 작품 자체로만 바라보면 <더 씽>은 적어도 여름 오락 공포영화로의 기능은 수행해 낸다. 원작을 보지 못한 관객들(사실, 보지 못한 관객이 훨씬 많다)과 공포영화에서 철학 따윈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나쁘지 않은 선택지라는 얘기다. 만약 밀폐된 공간 안에서의 추리를 즐기고 싶다거나, 괴물과의 한바탕 소동을 원한다면 이 영화가 적당한 소스를 제공해 줄 거다. 물론 영화를 보고 난 후 이 영화를 다시 언급하는 일은 없을 테지만.
2012년 6월 17일 일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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