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꽤 유명한 실화에서 이야기를 가져왔다. 뉴멕시코에 사는 킴 카펜터와 아내 크리킷 카펜터 부부의 실화를 토대로 제작된 것. 교통사고가 난 아내는 기억을 잃었고 끝내 그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부부는 두 딸과 함께 18년째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이 믿기지 않는 실화를 영화공장 할리우드에서 가만 놔둘 리 없다. 감성적인 멜로로 재탄생시킨 <서약>은 발렌타인데이를 겨냥해 북미에서 1억불 매출을 올렸다. 줄거리는 이렇다. 교통사고를 당한 후 5년의 기억이 송두리째 사라진 여자 페이지(레이첼 맥아담스)는 남편 리오(채닝 테이텀)의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5년이라는 사라진 시간은 페이지에게는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잘 다니던 로우스쿨을 그만두고 가족을 떠나 예술대학에 입학했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영화는 이 모든 기억을 잃은 당사자 페이지보다 남겨진 남편에게 이야기를 할애한다.
실화에서 건질 수 없었던 갈등을 영화는 여러 가지 직조했다. 결혼 전 아내는 상류층 ‘된장녀’였다. 남자는 작은 녹음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수더분한 사람이다. 여자의 기억은 5년 전에 머물러 있고 남편이라는 처음 보는 남자보다 헤어진 옛 연인이 더 가깝다. 부유한 아내의 가족은 남편을 떨어뜨리려 한다. 돈 봉투를 안 쥐어줬으니 망정이지 막장드라마가 될 만한 요소가 가득하다. 하지만 감독은 이 요소들을 활용하는 데 관심이 없다. 절제된 분위기로 남겨진 남자의 상실감에 집중할 뿐이다. 그래서 뻔하지만 오히려 뻔하지 않은 로맨스가 되어버렸다. 로맨스에 양념으로 따라붙는 눈물이나 달달한 멜로 씬이 없는 건조한 멜로영화가 된 것이다.
사랑스러운 레이첼 맥아담스와 성난 근육의 채닝 테이텀의 멜로지수는 예상만큼 절절하지 않다. <노트북> <시간여행자의 아내> 등 유사 장르에서 익숙한 얼굴을 보여준 레이첼 맥아담스는 <서약>에서는 특유의 멜로 성향을 유감없이 발휘하지 못 한다. 남편에게 초점이 맞춰진 영화였기에 레이첼 맥아담스에게 영화는 비좁은 공간만을 할애한다. 채닝 테이텀은 <스텝 업>이나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과 같은 영화로 쌓은 근육질 액션 스타라는 이미지를 잠시 벗고 <디어 존>으로 확인시킨 로맨스 세포를 활성화한다. 극중 소통하지 못해 답답해하는 리오만의 절절한 사랑은 안타깝게도 스크린 밖으로까지 표출되지는 않는다.
2012년 3월 15일 목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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