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결혼생활을 불행하게 마감한 바니(폴 지아마티)는 친척의 부름으로 캐나다로 거처를 옮기고 ‘완전 쓸모없는 제작사’라는 회사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사랑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했던가. 운명의 장난처럼 자신의 두 번째 결혼식에서 한 여자에게 첫 눈에 반한다. 남자는 피로연을 뒤로 한 채 우박을 뚫고 기차역으로 달려간다. 영화에는 전혀 다른 색깔을 가진 세 명의 여자가 등장하고 국내 번역 제목이 말하듯 세 번째 여인과의 만남으로 진짜 사랑 이야기가 시작된다. 바니는 배가 나오고 머리는 벗겨졌으며 교양에는 별 관심이 없는 하키 광이다. 셈에 밝은 유대인이지만 그의 자유로운 예술가 친구들을 위해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 지인들이 말하는 그의 인생은 혹평과 호평으로 교차한다. 폴 지아마티는 이 멋없는 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바니의 모든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세번째 사랑>은 캐나다 작가 모데카이 리클러의 소설 ‘바니의 버전’을 원작으로 삼았다. 한 남자의 청춘부터 무덤까지의 여정을 구닥다리라 할 만큼 기교 없는 정직한 연출로 끝까지 밀고 나간다. 감독 리처드 J. 루이스는 드라마 <CSI>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 등 TV에서 잔뼈가 굵은 감독이지만, 영화에서는 ‘올디스 구디스’라는 조언을 온 몸으로 실행한다. 남자의 인생사라는 한 권의 책을 두 시간 안에 압축하기에는 로맨스와 서스펜스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서스펜스는 소재로만 등장한다는 것은 아쉽다.
무난한 연출, 평탄한 드라마다. 크게 흠잡을 것도 없지만 커다란 인상도 남기지 않는 이 영화가 남기는 한 가지는 폴 지아마티다. 자칫 지루할 뻔한 영화에 숨을 불어넣는다. 생명력 있는 자연스러움이 거기 있고, 한 지점에서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는데 성공한다. 이로써 폴 지아마티는 2011년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아들만큼 교양이나 지성과는 무관하지만 인간다운 형사 더스틴 호프만이나 우디 앨런의 뉴욕 시리즈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우아한 여인 로잘먼드 파이크 등 조연들의 호연이 화음을 이룬다. 알츠하이머로 인해 바니가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손가락 사이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장면에서는 한 순간 복받친다. 이내 평정심을 찾게 하지만, 그 한 순간이 길게 느껴지는 러닝타임을 보상한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 여전히 <사이드웨이>가 불변의 1위겠지만 <세번째 사랑> 또한 폴 지아마티다운 연기로 바니라는 인물의 인생 탑을 성실하게 구축한다. 이 첨탑은 견고하다.
2012년 1월 11일 수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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