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흔한 경우지만, 재난영화에서 남녀의 로맨스는 빠지지 않는 요소다. 파국으로 치닫는 세상은 인간의 숨겨진 잔인성과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끄집어내는 경연장이 되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로를 의지하는 게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감정적인 유대감과 결속력도 그만큼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재난영화에서 로맨스가 중추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대개는 주인공에게 행복을 안겨주거나, 혹은 비감을 증폭시키기 위한 인공적인 첨가물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퍼펙트 센스>는 일단 차별화된다. 이 영화는 디스토피아적 이미지가 가득한 재난영화이면서도 로맨스를 메인 테마로 삼고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재난’만큼 로맨스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없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차례로 감각을 잃는다는 이야기는, 그 설정만으로도 웬만한 공포영화 이상으로 끔찍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잿빛 하늘과 오싹한 도시의 풍경이 내내 이어지는 탓에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매우 어둡다. 영화는 도대체 바이러스가 왜 발생됐는지, 그 해결과정이 어떠한지를 추적하는 것에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다. 그 대신 감각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행동을 시각적으로 묘사하는데 집중한다. 청력을 잃은 상황에서는 모든 사운드를 없애고, 시력을 잃은 다음에는 화면을 아예 검게 덮어버린 후 내레이션으로 상황을 설명하는데, 이런 장치들은 관객들을 몰입시키는데 매우 효과적인 작용을 한다. 감각이 없어진 후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위화감과 충격을 관객들에게 인상 깊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별다른 조연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이완 맥그리거와 에바 그린이 영화를 거의 이끌어간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두 배우의 탁월한 표정연기는 만점에 가깝다.
사실 인간에게 감각의 상실이란 최소한의 생존에 있어서 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청각을 잃으면 시각이 극도로 발달하고, 시각을 잃으면 촉각이 활성화되는 예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얼핏 역설적으로 보이는 <퍼펙트 센스>라는 제목은 모든 감각을 잃고 나서야 진정한 감각에 눈을 뜰 수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감독이 주장하는 모든 감각의 완성은 사랑이다. 그것은 남녀 간의 플라토닉 러브라고 할 수도 있고, 좀 더 넓게 보면 이해심과 배려 등 인간세상의 보편적인 미덕을 포괄하기도 하며, 마지막에는 마음으로 귀결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감각을 잘라내 버려도 과연 마음이 유지될 수 있는가, 마음이란 어디에서 오는 것이며,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런 의문에 대해 <퍼펙트 센스>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답을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답은 좋게 말하면 순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지나치게 순진하고 비현실적인 믿음으로 보인다. 관객들이 이 의문에 각자 어떤 답을 내리느냐에 따라,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감상은 판이하게 달라질지도 모른다.
2011년 11월 22일 화요일 | 글_최승우 월간 PAPER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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