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 안, 동업자에게 범죄의 법칙을 지시하고 있는 남자(라이언 고슬링), 이 이름 없는 남자에게 드라이브는 삶의 이유이자 숙명처럼 보인다. 스피드는 필연적으로 범죄와 연루된다. 일탈을 동반하는 타고난 재능은 위험하다. 남자는 강탈도주범의 발이 되거나 액션영화 스턴트맨이 된다. 남자는 그저 돈을 받고 운전할 뿐이다. 남자는 말이 없다. 내레이션을 제외하고는 영화 시작 15분이 지나서야 이웃집 여자 아이린(캐리 멀리건)의 질문에 처음 입을 뗀다.
이러한 류의 영화 속 주인공이 가지는 특질은 대체로 유사하다. 이름이 없고 가족도 없으며 말이 없고,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순수라는 단어를 온 몸으로 표현하는 여자가 그 남자 곁에 찾아든다. <드라이브>의 남자도 이웃집 여자 아이린으로 인해 일상에 균열이 온다. 모든 사물에 시선을 두지 않고 지나치는 남자가 한 여자를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감정이 결여된 영웅이 보여주는 찰나 같은 감정 씬은 그래서 강렬한 훅을 날린다.
<드라이브>는 스릴을 과감히 뺀 범죄영화지만 폭발과 굉음이 난무하는 카 액션이 없어도 충분한 흡입력으로 빨아들인다. 부딪히고 충돌하기보다 유장한 흐름으로 슬로우 모션을 일삼는 자동차라니, 이 영화는 자동차가 등장하는 범죄영화라면 쉽게 취할 장점을 과감히 버리고 달리면서 목표한 바를 돌파한다. 순수를 지키려다 범죄로 물드는 청년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마카오나 뉴욕의 뒷골목에서 펼쳐지는 필름 누아르를 21세기 미국에서 보고 있는 듯한 정서를 환기한다. <드라이브>의 말 없는 추격전과 유연한 스타일은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으로 보상받았다. 21세기 CG가 난무하고 뭐든지 과잉인 시대에 나타난 필름 누아르는 그래서 신선하다.
2011년 11월 16일 수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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