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에는 12명의 배심원들이 등장한다. 안민호와 강성희는 한철민의 유무죄를 두고 배심원들을 설득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정작 설득해야 하는 건, (배심원의 시선에서) 이 영화를 관람할 잠정적 관객 모두다. 효과적인 설득을 위해 영화는 “왜?”라는 카드를 이야기 곳곳에 흩뿌린다. 여자의 시체는 왜 사라지고 없는지. 안민호의 아버지는 왜 아들 대신 강성희를 신뢰하는지, 안민호는 한철민 사건에 왜 저토록 집착하는지, 그리고 한철민의 아내는 죽기 며칠 전부터 왜 그리 예민하게 굴었는지. 이 중엔 뚜렷한 설명 없이 어물쩍 지나가는 아쉬운 패도 있지만, 대부분의 카드패가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적어도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추진력은 있다는 말이다.
핵심 아이디어만 놓고 보면, <의리인>은 그리 독창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냉혈한 검사와 인간미 넘치는 변호사라는 캐릭터는 다소 촌스럽고, 그들의 두뇌싸움도 생각보다 치밀하지 못하다. 정교한 트릭과 냉정한 구성보다 변호인의 언변 등 감성에 치우치는 부분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의뢰인>에는 풀어놓은 아이디어들을 아귀가 맞게 조립해내는 솜씨가 있다. 단순한 치정살인으로 시작한 영화는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았던 연쇄살인사건을 이어붙이고, 그 사건에 연류 된 인물들이 하나 둘씩 끌어들이면서 ‘폭로’와 ‘갈등’의 쾌감을 증폭시킨다. 결말을 위한 복선과 암시에 신경 쓴 덕분에, 퍼즐이 완성되는 순간 밝혀지는 진실에도 충분히 납득하게 된다.
하정우, 박희순, 장혁이라는 세 배우는 <의뢰인>의 조커 패다. 그들의 각기 다른 연기 스타일은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특히 하정우의 연기 본능은 이번에도 번뜩인다.) 다만 그 각각의 스타일들이 부딪치는 씬이 적은 관계로, 이들 배우가 말을 주고받을 때 발생하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 많지 많다. 무림의 고수들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 정작 싸움은 안 하고 각자의 필살기만 뽐내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들을 사각의 링 위로 조금 더 내몰 필요가 있었다.
2011년 9월 30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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