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의 허진호 감독이 돌아온다고 했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도 가슴 벅차게 설레이며 기다렸던 [봄날은 간다]. 영화가 끝나고 덤벙 나선 명동 거리에는 유난히 화사한 살구빛의 볕이 넘실댔다. 상우와 은수가 사랑을 예감하며 함께 귀기울였던, 대나무 잎새를 서성이던 바람소리처럼 그 거리를 오래도록 망연히 서성여야 했다. 햇살이 이마에 흠뻑 번져 송글송글 맺힐 무렵에야 우리는 겸연쩍게 웃어가며 분식집을 찾았다. 상우처럼, 하얗게 빈 마음을 빨간 라면국물로 메우려.
[8월의 크리스마스]의 허진호 감독이 돌아온다고 했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도 가슴 벅차게 설레이며 기다렸던 [봄날은 간다]. 영화가 끝나고 덤벙 나선 명동 거리에는 유난히 화사한 살구빛의 볕이 넘실댔다. 상우와 은수가 사랑을 예감하며 함께 귀기울였던, 대나무 잎새를 서성이던 바람소리처럼 그 거리를 오래도록 망연히 서성여야 했다. 햇살이 이마에 흠뻑 번져 송글송글 맺힐 무렵에야 우리는 겸연쩍게 웃어가며 분식집을 찾았다. 상우처럼, 하얗게 빈 마음을 빨간 라면국물로 메우려.
영화는 ‘할머니’의 존재를 통해 면면히 이어진, 고유한 한국인의 정서까지 포착해낸다. 떠나는 사랑은 편안히 보내주고, 정작 자신의 가슴에 맺힌 애절한 그리움을 길게 다독이는 배려가 바로 그것이다. ‘버스와 여자는 떠나면 잡는 게 아니란다’ 담담한 할머니의 한 마디에 사무치게 눈물을 쏟던 상우의 마음은 분명 우리네 정서였으리라. 이별을 겪어내는 상우와 은수의 감정은 큰 기복으로 오르내리는데 카메라는 고운 발걸음으로 길을 떠나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조명한다. 하얀 양산을 사붓 받쳐든 그녀의 슬몃 나풀대는 연분홍 치마자락처럼 카메라의 구도는 시종 잔잔하다. 그리고 할머니가 여생을 사뿐히 떨궈낼 무렵, 상우의 서거운 가슴앓이도 끝을 맺는다.
그리고 [봄날은 간다]에는 모든 이야기를 아우르는 ‘소리’가 있다. 노부부의 구성진 아라리 가락부터 은은한 바람소리, 물소리까지. ‘강화순 할머니가 대숲에 부는 서-솨 소리에 심난한 마음을 씻듯’ 영화의 소리는 신선한 떨림으로 관객의 마음을 훑어 내려간다. 그렇게 귀 기울이다 보면 여행이라도 떠나온 것처럼 흐뭇한 기분이 된다. 그리고 그 소담스런 소리들을 담아 극장까지 데려오느라 공들였을 사람들에게 고맙기까지 하다.
이영애가 ‘이 영화를 통해 연기 생활의 매듭을 풀었다’고 했던가. 이영애는 ‘뭘 간절히 바래도 다 잊고 마는’ 은수의 역할을 깔끔하고 똑 부러지게 소화해낸다. 유지태는 [바이준], [동감] 등의 이전작에서 보였던 딱딱한 대사와 서먹한 행동을 벗고, 상우의 가슴에 타들어가는 그리움을 농밀하게 뿜어낸다. 뭇 여성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던 특유의 ‘성근’ 미소 또한 여전하지만.
사랑은, 변하는 것일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금새 터질 듯이 여문 상우의 말 마디가 또각 잘린다. 사랑은, 변할 것이다. 상우가 마지막으로 돌아다 본 은수의 실루엣이 아스라이 번져 가듯. 할머니가 그녀를 사랑하던 젊은 시절의 할아버지만을 기억 속에 남겨두듯. 또렷한 사랑은 뭉클뭉클 무디어 갈 것이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봄날이 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