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판문점에서 발생한 ‘한발의 총성’에서 <JSA>는 시작됐다. <고지전>은 악어부대 중대장의 시신에서 발견된 ‘아군의 총알’에서 시작한다. 사건의 의문을 밝히고자 파견된 <JSA> 소피 소령(이영애)의 역할은 방첩대 중위 강은표에게로 이식된다. 지루한 휴전 협상이 2년 2개월째 이어지고 있던 1953년. 강은표는 사건 진상 파악을 위해 악어부대가 있는 애록고지로 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죽은 줄 알았던 친구 김수혁(작가 의도였을까. <JSA>에서 이병헌 극 중 이름은 ‘이수혁’이었다)을 만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내가 알고 있는 수혁. 그 수혁이 맞는 거야?
은표의 눈을 통해 사건을 바라보는 <고지전>은 <JSA>와 마찬가지로 회상 형식을 빌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순수했던 수혁은 왜, 전 저토록 차갑게 변했을까. 새파랗게 어린 신일영(이제훈)은 어떻게 악어부대를 이끄는 대위가 됐을까. 포항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기막힌 사격솜씨를 지닌 북한의 저격수 ‘2초’는 누구인가. 영화는 미스터리 장르의 관습을 적절히 이용하며 기존 전쟁영화들이 즐겨 쓰는 판에 박힌 문법과 거기를 둔다.
영화에서 관객은 (11년 전 그랬듯) 아군 적군을 떠나 정서를 공유하는 남북 군인들의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애록고지 14벙커’를 통해 그들은 술과 편지를 주고받고, 음식을 주고받고, 때론 노래도 주고받는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이 지나친 감성에 젖는 것을 묵인하지 않는다. 영화는 악어부대 대원들의 비극적인 과거를 하나씩 까발리며, 그들 피에 흐르는 ‘전쟁의 광기’를 낚아챈다. 그들에겐 적과 한가로이 우정을 나눌 여력조차 남아 있지 않음을, 냉소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어설픈 영웅주의에 함몰되지 않는 다는 점. 끝까지 전쟁을 냉정하게 직시한다는 점. 이는 <고지전>이 획득한 의미 있는 성취다.
기다리던 휴전 소식과 함께, ‘전쟁이 끝난다’는 기쁨을 만끽하려던 찰나, 탁상공론을 벌여오던 상부는 악어부대 대원들을 다시 전투로 내 몬다. 마지막 12시간 동안 고지를 탈환하라는 지시를 받은 악어부대 대원들이 느꼈을 허탈감. 2002 월드컵 때, 안정환에게 골든골를 허용하고 연장전에 치러야 했던 이탈리아 선수들의 허탈감은 비할 바가 못 된다. 축구 연장전에 해당하는 이 라스트 씬이 <고지전>의 긴장을 휘발시킨다는 일부의 비판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병사들이 느끼는 절망과 전쟁의 지리멸렬함을 극대화 시키고 있음은 확실하다. <영화는 영화다>로 주목받고, <의형제>로 인정받은 장훈은 관객을 절정의 고지에 올려놓는데 또 한 번 성공했다.
2011년 7월 21일 목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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