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제목만 보면 여느 부르주아 중년 남녀의 멜로영화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영화는 다양한 층위로 갈라진다. 영화제가 사랑하는 배우, 줄리엣 비노쉬와 오페라 배우 출신으로 극영화에 처음 도전하는 윌리엄 쉬멜, 이 두 사람의 로맨틱한 얼굴을 통해 영화는 완벽한 멜로 영화의 탈을 쓴다. 유명 배우를 기용해 멜로적인 극영화를 찍는다는 것 자체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일종의 혁명처럼 느껴진다.
배경은 햇살이 유난히 아름답다는 이탈리아의 투스카니. 제임스(윌리엄 쉬멜)라는 남자가 예술의 복제에 관한 신간 발간을 기념해 강연 중이다. 그리고 그의 책을 읽고 매료된 한 여자(줄리엣 비노쉬)가 자신의 골동품 샵으로 남자를 초대한다. 직접 가이드를 자처한 여자와 남자는 그 길로 여행길에 오르고, 어느새 부부를 연기하게 된다. 이상한 건 역할놀이에 심취한 나머지 관객마저 이들이 진짜 부부인지, 팬과 작가의 관계인지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내러티브를 수단으로 형식미를 직조한다. 애초에 팬과 작가라는 타인의 관계라고 습득하고 영화를 대하던 관객은 이들의 익숙한 대화에 혼란을 겪는다.
감독은 원본과 복제라는 주효한 테마를 두고 배우들의 대화를 엮고, 적극적으로 기존 영화들을 모방하기 시작한다. 인생과 예술, 일상적인 철학, 사랑을 주제로 난무하는 대화를 보고 있노라면 쉽사리 <비포 선셋>을 떠올릴 수 있다. 감독이 영감을 얻었다고 언급했던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두 남녀의 기본 내러티브가 기반 된다. 또 비노쉬를 클로즈업하는 거울 씬에서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원색적인 빨간 색채가 끼어든다. 이렇게 원형성과 복제에 대한 탐구가 안과 밖에서 동시에 대립하면서 흥미롭게 전개된다.
과연 다빈치의 그 유명한 모나리자는 과연 원조라고 할 수 있는가, 실제 모델이 되는 여인을 원조로 본다면 그림 또한 복제의 일환이 아닐까. 질문에 대한 대답을 영화는 강요하지 않는다. 단순히 투스카니의 시골 마을을 비추는 햇살에 매료되어도 좋고, 칸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줄리엣 비노쉬의 연기에 빠져들어도 좋다. 혹은 감독들이 나이가 지긋해지면 천착하기 마련인 인생과 철학, 복제와 원형에 대한 탐구에 골몰해도 좋을 것이다. 엄연히 작가주의영화에 속하지만 즐겁게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경험이 될 테니 말이다.
2011년 5월 3일 화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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