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으르렁 거리는 몬태규씨와 캐플릿씨. 두 사람의 심리전은 이들 정원에 사는 정원 인형들에게까지 이어진다. 빨강 모자를 쓰는 점원 인형 레드가(家)와 파랑 모자를 쓰는 정원 인형 블루가(家)가 편을 나뉘어 대립하는 것. 그러던 어느 날 밤. 블루가의 상속자 노미오(이준)와 레드가의 줄리엣(지연)이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집안 어른들의 눈을 피해 몰래 데이트를 즐기던 두 사람은 노미오가 레드가의 행동대장 티볼트를 우발적으로 살해하면서 위기를 맞는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이야기를 건져내는 건, 더 이상 화젯거리가 못된다. 이를 간파해서인지 <노미오와 줄리엣>이 오리지널에서 가져온 것은 기본 뼈대일 뿐, 캐릭터와 결말, 분위기 등 많은 것들이 발칙하게 뒤집혔다. 이 중 주인공을 인간이 아닌 3등신 정원 인형으로 탈바꿈 한 건, <노미오와 줄리엣>에서 가장 신선한 부분. 고뇌하는 청년 로미오와 청순가련의 대명사 줄리엣이 3등신이라니. 캐릭터의 독창적인 변주가 유쾌하다. 셰익스피어를 실제로 등장시킨 후, 결말을 바꾸는 노골적인 비틀기도 제법 흥미롭다. <노미오와 줄리엣>에서 드림웍스의 그림자가 발견된다면, 이러한 풍자와 패러디가 적절하게 빛을 발한 덕일 게다.
드림웍스의 장기를 취한 <노미오와 줄리엣>의 전략은 하나 더 있다. 픽사의 특징도 가져오기. 인간들이 외출하거나 잠잘 때를 기다렸다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인형들. 게다가 인간이 지닌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느끼는 인형들. <토이 스토리>가 떠오른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비록 <토이 스토리>가 보여준 ‘인생에 대한 성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자칫하다간 산산조각 깨질(죽을) 수 있는 인형들을 통해 꽤나 가슴 조이는 비극성을 그려낸다. 인간에 의해 사랑하는 짝과 이별해야 했던 ‘플라밍고 페더스톤’의 슬픈 사랑 이야기 역시, (픽사에 비하면 모자람이 크지만) 감성적이게 살았다.
3D 효과는 기대만큼 인상적이지 못하다. 기본은 충분히 하지만, <드래곤 길들이기>의 낙하 장면이나, <라푼젤>의 머릿결 흩날리는 장면처럼 3D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장면이 없는 게 아쉽다. 더빙에 참여한 엠블랙의 이준, 티아라의 지연과 개그우먼 정주리의 연기는 좋거나 나쁘거나다. 제임스 맥어보이와 에밀리 블런트, 제이슨 스타뎀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는 오리지널 버전도 상영되니, 선택은 취향 따라.
2011년 4월 16일 토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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