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싱>은 등장인물이 적고, 한정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스릴러의 모양새를 띤다. 공포의 근원인 어둠은 극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며,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있는 인물들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스릴러는 외피일 뿐, 영화는 윌 스미스의 <나는 전설이다>와 니콜라스 케이지의 <노잉>처럼 인류 종말에 대한 이야기가 핵심이다. 사람들이 사라지고, 폐허로 변해버린 생기 잃은 도시는 자연스럽게 묵시록적인 느낌을 들게 한다.
<머시니스트>에서 범죄를 저지른 한 인간의 죄의식과 구원의 과정을 면밀히 보여줬던 브래드 앤더슨 감독은 이번에도 죽음과 삶의 기로에 선 인물들에게 집중한다. 그는 네 인물들을 통해 인류 종말로 치닫는 광경을 묵묵히 담아내고, 인류 종말이 또 다른 생명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드러낸다. 하지만 차별화된 묵시록을 만들기 이전에 감독의 아니한 선택이 큰 화를 부른다. 그 화의 근원은, 실체가 불분명한 ‘어둠’이라는 존재. <베니싱>은 주인공을 추격하는 존재가 외계인이라는 것을 밝힌 <노잉>과 다르게, 원인불명의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 설명 하지 않는다. 그것이 어디에서 왔고, 왜 사람들을 사라지게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없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니, 허망함이 밀려올 뿐이다. 행여나 추상적인 의미만 던지는 감독의 불친절한 연출력에 관객들의 얼굴이 흑빛으로 변하지 않을까 걱정 된다.
2011년 4월 1일 금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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